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부영이 지은 주택은 사유재산이며, 정부 지원은 특혜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항변했다. 그러나 공공주택특별법상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는 주택은 ‘공공주택’으로 분류되며,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통해 공공주택 사업자에게 원가 대비 60~80% 가격에 부지를 공급하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사진)이 지난해 조세포탈 등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당한 데 이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영이 제출한 계열사 지분 현황이 허위 신고된 정황을 포착해 고발하면서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이종현 기자
또 부영은 차입한 주택도시기금에 대한 이자(연 2~3%)를 임차인이 내는 임대료로 충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부영은 지난해 주택도시기금 3조 1718억 원에 대한 이자 476억 원을 임차인이 낸 임대료(연 486억 원)로 지급했다. 주택도시기금은 10년 거치 20년 분할 상환으로 금융권 대출과 비교해 원금 회수 압박이 덜하다. 부영 전직 고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저리인 주택도시기금을 부영이 사실상 무상으로 빌려 쓰는 구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부영은 주택 시공 단계에서 차입한 주택도시기금 외에 임차인으로부터 5조 8044억 원의 임차보증금을 받고 있다. 임대 주택 사업 명목으로 부영이 확보한 자금(주택도시기금+임차보증금)은 9조 1312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부영이 시공한 주택 총 원가 5조 1886억 원보다 3조 9426억 원 많은 액수다. 즉 부영은 임대주택 사업으로 4조 원에 가까운 ‘유휴자금’을 쥐게 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부영은 전주 하가지구에서 59m²(18평) 아파트 1호에 대해 9200만 원의 임차보증금을 책정했다. 그러나 59m² 1호당 원가는 1억 2000만 원으로 앞의 보증금과 부영이 빌린 주택도시기금 8000만 원을 더한 값보다 5200만 원이 적었다.
남양주 월산A1단지의 경우는 아파트 1호당 원가(59m² 기준)가 7500만 원인데 반해 부영이 챙긴 보증금과 주택도시기금의 합이 2억 원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원가 대비 보증금 비율이 낮은 화성 향남7단지에서도 부영은 60m² 아파트 기준 1호당 3300만 원의 유휴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분양가(혹은 임대료) 관리 등 현안에서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금을 ‘눈먼 돈’처럼 쓰는 것”이라며 “현행 사업 구조에서 피해자는 결국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막대한 유휴자금을 조성한 부영은 전국 60여 곳의 공공주택 임대료를 법정 상한선인 연 5%까지 인상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7월 11일 전주시 등 전국 22개 지자체는 공동 성명을 통해 “(부영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희망을 발판삼아 매년 임대료를 법적 상한선까지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부영의 임대료 인상을 직권조사 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석동 전국세입자협회 사무국장은 “임대료 인상폭을 연 5%로 제한한 법률 취지를 악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공정위는 부영의 위장회사 설립과 오너 일가 차명주식 보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중근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공정위 고발건을 국세청이 고발한 역외탈세 사건과 병합해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부영이 임대 사업으로 거둔 수익 중 상당액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회장 사익을 위해 전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부영 국내 계열사 감사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이 회장은 ㈜부영에서 2012~2017년 배당금으로 693억여 원을 받았다. 부영파이낸스라는 회사에서도 2011~2017년 27억여 원을 챙겼다. 이 회장은 ㈜부영 지분 93.79%, 부영파이낸스 지분 87.5%를 갖고 있다.
부영 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사) 전경. 고성준 기자
수상한 해외 법인들은 이 회장의 해외 재산 유출 의혹과 관련이 있다. 2007년께 미국에 설립된 법인인 BOOYOUNG AMERICA, LLC(부영 아메리카)는 부영 소유 지분이 10%에 불과했지만 2011년 ‘제3자’로부터 부영이 남은 지분 89%를 사들이면서 회사 지분율은 99%까지 상승했다. 부영 아메리카는 부영이 미국에 설립한 또 다른 법인인 BOOYOUNG Investment & Management INC(부영 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증손자회사인 BOOYOUNG TEXAS, LLC(부영 텍사스)를 지배하고 있다.
앞의 부영 전직 관계자는 “부영 미국 법인의 실소유주는 이 회장의 옛 동업자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전 아무개 씨”라며 “텍사스에 거주하는 전 씨가 이 회장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데 그 돈의 정산에 미국 법인이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부영 미국 법인의 ‘멤버’(이사)로 등재돼 있다. 부영 측은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회사가 대응할 이유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부영 아메리카는 설립 이래 매년 수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1억 4500만 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현지 실적과 관계없이 국내 자금은 미국에 유입됐다. 지난해 ㈜부영은 부영 아메리카에 15억 3400만 원을 대여했고, 페이퍼컴퍼니인 부영 인베스트먼트에도 27억 4800만 원을 대여했다.
이 같은 자금 흐름은 부영의 해외 골프장에서도 발견된다. 라오스 골프장(BOOYOUNG LAO)의 초기 자산은 174억 원, 부채는 170억 원인데 라오스는 외국인 토지 소유가 금지된 나라로 자산 대부분은 골프장 시설 및 현금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10년 이후 라오스 골프장에는 100억 원 이상의 현금이 유입됐다. ㈜부영은 총 291억 원을 라오스 골프장에 대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라오스 골프장은 2010년 이후 자본잠식에 빠졌고, 매년 적자를 기록해 누적 당기순손실은 130억 원에 육박했다.
캄보디아 골프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부영은 2015년까지 캄보디아 골프장 운영사인 BOOYOUNG KHMER2(KHMER2)에 장부상 4398억 원을 대여했는데 2016년 기준 캄보디아 법인 자산은 4954억 원, 부채는 5147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KHMER2는 같은 해 19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대여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는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부영이 KHMER2를 통해 캄보디아에 매입했다는 토지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수사의 관건”이라며 “명목 외 현금이 빠져나갔다면 횡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은 “내가 법을 위반했다면 벌써 무슨 물고(결딴)가 났을 것”이라며 “(정부가) 특혜를 우리만 누리게 놔두고 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사정당국, 임차인들까지 부영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