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유약한 이미지가 강했던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대선 패배를 딛고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 여부다. 특히 그의 출마를 둘러싸고 당내 세력이 친(親)안과 반(反)안으로 나뉘어 극렬한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 결말이 어떻게 날지 호기심의 대상이다. 국민의당 대표 경선은 당 이름답게 ‘국민적 관심’을 담아내고 있다.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혁신의길 2 : 정치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 치밀한 분석 후 출마
대선 때 기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에게 물었다. “반기문 중도 사퇴설 등 예측이 잘 들어맞고 있다. 비결이 있나.” 그러자 안 전 대표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내가 국민의당이 35~40석 얻을 것이라고 했는데 맞았다. 반기문 사퇴설도 맞았다. 황교안 총리 못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도 틀리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고 대다수 정치인들의 예측이 자주 틀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정확한 예측을 하지 않고 자기 희망사항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객관적 사실만 보고 이를 얘기한다.”
안 전 대표는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분석적인 사람이다. 의대를 나왔지만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를 해 국내외적으로 독보적 위치에 올랐고, 공부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와튼 스쿨(펜실베이니아 경영대) 경영자 MBA과정도 졸업했다. 꼼꼼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의사요, 과학자요, 경영자다. 이런 그가 무턱대고 이번 전대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정치적 효과, 이미지 개선 여부, 당선 가능성 등을 철저하게 따져본 뒤 ‘해도 될 만한 게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얘기다.
우선 대선 패배자의 이미지를 벗고 다시 한 번 유력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그가 나오면서 김빠진 맥주처럼 돌아보던 이가 없던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민의당도 그렇지만 안철수라는 정치인도 정치권 이슈의 한복판에 섰다. 귀공자 이미지를 벗어던지는데도 성공했다. 박지원 전 대표 등 동교동계 등의 든든한 지원 사격 속에 과거 정치를 했다면 이번엔 호남 전통 정치세력의 ‘비토’에도 불구하고 경선 후보 ‘철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사실상 창당을 주도한 국민의당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감도 그를 경선으로 끌어들였다. 국민의당이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봤다는 것이 안 전 대표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또 천정배·정동영이라는 ‘노장 정치인’의 당권 장악도 그가 감내하기 힘든 당의 모습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그를 잘 아는 한 정당인은 귀띔했다.
#국민의당 내분 격화, 그 결말은?
안 전 대표 출마 후 국민의당은 친안철수계와 반안철수계로 쪼개져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친안계는 당 재건을 위해 당의 간판인 안 전 대표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안계는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도 없이 당 대표가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안 전 대표와 겨루게 된 반안계의 천정배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은 연일 공세를 가하고 있다. 천 전 대표는 “안 전 대표 출마는 당에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최악의 결정”이라며 “더 자숙하고 반성할 시간을 가지라”고 요구했다. 정 의원 역시 “국민의당이 특정인의 사당(私黨)화보다는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며 안 전 대표의 출마를 겨냥했다.
반안 진영에선 천정배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의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안 전 대표 출마에 반대하는 조배숙·장병완·황주홍·박준영·이상돈·장정숙 의원은 8일 여의도 모처에서 정동영 의원과 함께 조찬 모임을 하고 정 의원에게 천 전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표 선거에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서 안 전 대표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하려면 선제적으로 두 후보간 세력을 규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천 전 대표와 정 의원 측은 모두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자칫 조기에 단일화를 언급했다가 안 전 대표의 우위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 탓이다.
#호남 민심이 판가름
이번 경선은 호남 대 비호남 당원들의 표 대결로도 볼 수 있다. 호남 지역신문의 한 정치부장은 “이번 경선에서 호남 당원 표가 51%를 차지한다. 나머지 지역이 49%인데 결국 적극 투표층인 호남 당원의 투표 참여가 압도적으로 높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호남 표 획득이 관건이다. 안 전 대표가 국민의당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보면 호남 이외의 다른 지역 표는 안 전 대표에게 쏠릴 수 있지만 적극 투표층이 많은 호남이 결국 대표 당선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호남 표는 특정 후보로의 집중세는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호남 정가의 판단이다. 전북은 정동영 의원, 전남은 천정배 전 대표의 근거지인데 표 나뉨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남의 또 다른 언론인은 “일단 최근까지 호남 표심은 안 전 대표에게 싸늘했다. 그러나 아직 시일이 조금 남았고 안 전 대표가 호남을 중심으로 열성적 표심 호소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호남 표심의 방향성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호남 표심이 새 대표의 당락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경선에 나온 후보들의 메시지, 그리고 앞으로 몇 주간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문재인정부 행보도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야권 정계개편 변수로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 전당대회 이후 야권이 다양한 방식으로 헤쳐모여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안 전 대표가 당권을 쥐면 야권의 정계개편 바람은 잦아들 전망이다. 유력 대선 주자가 당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열쇠를 질 수밖에 없는데 그는 국민의당 독자생존을 부르짖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자신에게 부여된 힘을 바탕으로 ‘나를 따르라’고 외칠 경우 딴죽을 걸 명분이 부족하다. 당내 비주류 가운데 일부가 호남에서의 지지율 부진을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복귀 등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시도할 수 있겠지만 당 전체를 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긴 힘들 전망이다. 안 전 대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다당구도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반대로 결선투표를 통해 호남 중심의 반안계가 당을 장악할 경우, 안 전 대표는 정치의 뒤안길, 끝내는 사실상의 정치적 은퇴로까지 몰려갈 공산이 크다. 당의 중심이 급격하게 호남으로 기울면서 야권의 정계개편 가능성도 커진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호남)가 당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새 국민의당 지도부가 호남여론을 장악한 여당을 상대로 무작정 ‘타도’만 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8월 첫 주 여론조사(호남)에서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각각 8%와 67%를 기록했다. 두 당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새 지도부는 통합으로 나선다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다. 비록 천정배·정동영 두 사람 모두 다당제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이기는 선거를 위해서는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밀릴 기색이 나타나면 통합론자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보수당도‘국민의당 전대’ 주목하는 까닭은? 바른정당 진로에 ‘영향’ 야권의 정계개편은 바른정당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바른정당의 존재 여부는 수도권 보수표 및 충청과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강원권의 보수표 표심을 새로이 흔들 수 있다. 향후 지방선거 구도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반안 후보가 국민의당을 장악, 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 통합의 기운이 무르익을 경우 바른정당 역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통합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과 충청권 등 접전지역에선 보수진영이 분열할 경우 타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이후 총선으로까지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한 지붕 아래’로 모여들면 보수진영도 통합 또는 선거연대 등을 모색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합당 압박’을 받는다면 현재 두 당이 비슷한 정당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통합의 주체와 방식을 둘러싼 공방도 불가피하다. 때문에 보수층이 두터운 대구경북 등 전통적 보수층 밀집지역에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기싸움이 국민의당 전당 대회 이후 더 격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가 국민의당 당권을 장악하면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다당체제를 바탕으로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를 하면 바른정당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고 이 부분에서 한국당의 입지는 더 좁아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런 판이 만들어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등지의 바른정당 돌풍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한국당은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국당 한 현역의원은 “국민의당 당권을 누가 쥐느냐는 보수정당에도 굉장히 큰 충격파를 줄 전망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큰 폭풍우를 몰고 올 수밖에 없어 모든 정치권이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