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올 초 자체 회계감사에서 모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을 포함한 직원 세 명이 출장비를 상습적으로 횡령한 혐의를 포착했지만 반년 가까이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국회 측은 “순차적으로 징계를 진행하다보니 현재까지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3월 초에는 회식 자리에서 다른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이 여직원 이마에 입을 맞추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지만 역시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 오히려 피해 여직원이 다른 부서로 옮겨가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국회 사무처 직원 A 씨는 국회 내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입법고시 카르텔(담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입법고시는 국회 사무처에서 실시하는 일반직 5급 공무원 채용시험이다. 각종 고시들 중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다. 19명을 선발한 올해 입법고시에는 4624명이 지원해 24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A 씨는 “일반 직장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국회 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면서 “특히 성추행 사건의 경우는 그런 일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문제 삼기 힘들다.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다는 것을 가해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A 씨는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도 입법고시 출신이었고 피해자도 입법고시 출신이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오히려 주변 입법고시 출신들이 그냥 참고 넘어가라고 회유를 한다”면서 “공무원 조직 중 국회 사무처처럼 폐쇄적인 조직도 없다. 한번 들어오면 평생 한 곳에서만 근무해야 한다. 같은 건물 내에서 계속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문제를 제기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일반 직장 같으면 그만두기라도 할 텐데 엄청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들어온 입장에서 그럴 수도 없다”면서 “이번 사건도 피해자가 외부에 알린 것이 아니라 회식 자리에서 발생한 일이라 다른 직원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 국회 내에서는 성추문과 관련해 온갖 소문이 있지만 처벌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회 직원 B 씨도 “어떤 간부는 마음에 드는 여자 직원이 있으면 그 부서와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노골적으로 그 여자 직원을 꼭 데리고 나오라고 말한다. 또 다른 간부는 회식자리에서 여직원 엉덩이를 만졌다는 소문도 있었고, 어떤 간부는 술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어깨를 껴안거나 뽀뽀를 한다고 한다. 남자 직원들한테까지 그러니 성추행인지 단순한 술버릇인지 애매해 문제 삼기가 어렵긴 하다”고 말했다.
B 씨는 “A 씨가 언급한 것처럼 가해자들이 어느 정도 선까지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성희롱 경계를 넘나들며 피해자를 농락하고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너무 예민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이제는 회계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있지만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는 여러 뒷말들이 무성하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면서 “주요 보직 대부분을 입법고시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 제기를 해봤자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는 입법고시 카르텔을 견제할 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과 국회 사무총장은 정치인으로 외부 인사다. 이들이 입법고시 카르텔을 견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회의장은 보통 5~6선 국회의원 출신이고 국회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지만 사무처 조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회의장 임기가 고작 2년이다.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에는 임기가 너무 짧다. 개혁을 하려고 해도 기존 직원들은 ‘버티면 곧 바뀐다’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답했다.
A 씨는 “일례로 최소한 감사관실은 외부에 개방해 외부 인사를 임명하자는 주장이 수년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관철되지 않았다”면서 “국회의장 주변을 둘러싼 의사결정권자 대부분이 입법고시 출신이다보니 개혁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A 씨는 “국회 사무총장이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출장비 횡령 건의 경우는 내용을 이미 보고 받았을 텐데 그동안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언론에서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하니까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면피용 행동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A 씨는 “가장 먼저 재발 방지 대책으로 나온 것이 성희롱 예방 교육인데 이미 국회에서는 매년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한 번 더 실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회 직원은 “출장비 횡령 사건을 일으킨 수석 전문위원은 올해 정기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대로 유임시켜놓고는 마치 전혀 몰랐던 일이라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정기인사에서 그대로 유임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진상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폐쇄적인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궁극적으로는 감사관실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도 외부 전문가를 채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방위에 배정되면 무기 이름 외우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면 국회 사무처의 전문성도 높아지고 끼리끼리 문화를 희석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언론에서 문제 제기된 사람만 본보기로 처벌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국회의장이나 사무총장이 내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직원들의 주장에 대해 국회 사무처 측은 “이번 사건이 입법고시 카르텔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후속 대책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