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오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서울 중림사무소에서 임원들이 임시이사회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 모여 있다. 이날 하성용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KAI에 대한 방산 비리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당시 최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은 책임론에 직면했다. 불과 얼마 전 분식회계 논란이 일었던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KAI까지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산은의 자회사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분식회계가 벌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시기, 공교롭게도 산은 고위급 인사가 KAI 감사업무를 맡은 것으로 전해져 의혹은 더 증폭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산업은행 창조성장금융부문 담당인 L 부행장은 기업금융1실장으로 근무하던 2015년 KAI의 비상근 이사 겸 감사위원을 겸직했다. 당시 상당수 다른 주주들이 L 부행장의 감사위원 겸직을 반대했음에도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이를 강행했다.
2015년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자들은 L 부행장의 이사 선임에는 찬성했지만 감사위원 겸임에는 반대했다. 네덜란드연기금(APG), 캐나다연금(CPP),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등 의결에 참여한 국내·외 기관 37곳 중 11곳이 L 부행장의 독립적 감사 업무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산은은 L 부행장에게 감사위원을 맡겼다.
2006년 출자전환으로 KAI 대주주가 된 산은은 2007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자사 출신 비상근 이사를 기용하고, KAI를 직·간접적으로 관리했다. 하성용 KAI 사장이 임명된 2013년~2014년에는 N 부장이 상근 감사로 직접 경영에 개입했다. N 부장은 하 사장이 경영지원본부장(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던 2010년부터 KAI 비상근 이사를 맡았다. 이외에도 L 전 실장과 G 선임심사역(SCO), J 실장 역시 각각 2007~2008년과 2012년~2014년, 2016년 비상근 이사를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2014년 KAI 자산총액이 2조 원을 넘으면서 산은(당시 정책금융공사) 몫인 상근감사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번 수사 범위는 박근혜 정부 때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미 검찰은 산은이 KAI 최대주주로서 관리·감독을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현재 산은이 맞닥뜨린 분식회계 의혹의 핵심은 KAI가 2013년 이라크 경공격기 수출 등 총 3조 원대 사업을 수주하면서 이익을 회계기준에 맞지 않게 선반영한 데 있다. 산은이 지난해와 올해 KAI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면 파장은 일파만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수은에 KAI 주식을 현물출자한 이유는 대우조선 부실로 악화된 수은의 자본건전성을 확충하는 데 있었다.
KAI를 둘러싸고 산은이 받고 있는 의혹은 또 있다. 하 사장의 전임자인 김홍경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3월 진영욱 당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부터 사임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때문에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처럼 KAI를 청와대의 뜻에 따라 관리해 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번 수사 배경에 전 정권 유력 인사들이 개입돼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는 가운데 검찰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수출입은행은 이번 KAI 수사로 불똥이 튄 또 다른 국책은행이다. 수은은 최근 KAI 주가 하락으로 60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등 구조조정 지원으로 막대한 자금을 출연한 수은은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악재로 손해를 보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수은은 KAI 주식 2574만 5964주(26.41%)를 갖고 있다. 수은은 지난해 5월 31일 산은으로부터 KAI 주식 754만 1479주를 1주당 6만 6300원(5000억 원 규모)의 가격으로 현물 출자를 받았다.
이어 정부는 올해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수은에 재무구조 개선 명목으로 1조 1000억 원 상당의 자본 확충을 약속했다. 산은은 지난 6월 30일 수은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KAI 주식 1820만 4485주를 1주당 6만 4100원(1조 1669억 원 규모)에 넘겼다. 이로써 수은이 두 차례에 걸쳐 산은으로부터 넘겨받은 주식 취득금액은 모두 1조 6669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KAI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한때 7만 원을 바라보던 주가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방산비리 의혹이 터지기 전인 지난달 13일, 6만 1000원이었던 KAI 주가는 지난 2일과 3일 이틀 동안 36.36%가 폭락했다. 다음날인 4일에는 1.6%가 상승하면서 3만 9000원선을 간신히 회복했지만, 수은이 매매한 당시 주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반토막인 셈이다. 수은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현재 1조 원 안팎으로 거래 당시와 비교하면 6600억 원이 줄었다.
특히, 수은은 지난해 1조 4692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첫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이번 주가 하락이 겹치면서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KAI 지분을 내년 초까지 매각하려던 계획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은행은 내년 바젤Ⅲ(BIS 자기자본비율의 새 국제금융협정) 도입으로 상장사 보유주식 위험가중치를 100%에서 300%로 높여야 한다. BIS 비율 산정시 분모에 들어가는 위험가중치 자산이 확대되면 자본건전성은 그만큼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은행의 15% 이상 비금융 출자사 지분 매각 계획, 기업은행의 KT&G 지분 매각 계획 등은 이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수은으로서는 산은이 경영을 이끈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에 참여한 대가로 KAI란 애물단지를 넘겨받은 꼴이 됐다. 매각 계획마저 꼬이면 추가적인 자본 확충안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올해 말 KAI 주가 추이를 살펴야겠지만 당장의 흐름만 봤을 때는 당분간 회복세를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