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에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서울 진입 좌절된 서민?
정부는 8·2 부동산조치와 함께 서울 11개구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남은 서울 전역과 과천 등은 투기과열지구가 됐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40% 이하로 조여졌고, 양도세는 중과됐다. 서울 시내 평균 아파트 가격이 6억 3000만 원임을 감안할 때 최대 대출한도는 2억 5000만 원이다. 나머지 3억 8000만 원은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
2014년 ‘서울서베이’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월소득 500만 원 이상 가구비중은 22.7%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2016년 3월 기준)를 보면 전체 가구를 연간 소득별 5개 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4분위(상위 20~40%구간) 평균 순자산은 3억 2249만 원으로 나타났다. 연간 소득은 5953만 원으로 집계됐다. 앞의 통계를 살피면 전국 상위 20%, 서울 상위 25%만이 서울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투기세력은 ‘서민의 서울 진입이 좌절됐다’고 주장한다.
#중상층, 신용대출로 길을 찾다
LTV가 강화됐지만 소득이 많거나 안정성이 높은 직장에서 일하는 ‘중상층’들은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신용대출 가중평균금리는 연 4.41%로 같은 시기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인 연 3.22%보다 높다. 그러나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 1·2등급’ 고신용자 대상 대출 금리는 연 3%대 초반으로 같은 신용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오히려 낮다. 이들 연체율은 1%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영업을 개시한 카카오뱅크의 신용대출도 우량 직장인이라면 3% 초반 금리로 최대 1억 안팎의 돈을 빌릴 수 있다.
또 은행들이 직장 별로 우대금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KB국민은행이 유치한 경찰 대상 ‘무궁화 대출(’참수리‘에서 명칭 변경)’은 연 금리가 2% 미만이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판매 중인 공무원이나 우량기업 신용대출 상품 금리도 연 3% 미만이 대부분이다. 주택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 8·2 부동산 대책 이후 시중은행들의 신용대출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NH농협)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후 1주일도 안 돼 2000억여 원이 늘었다. 이달 2일 잔액은 92조 5899억 원, 같은 달 8일에는 92조 7916억 원의 대출 잔액이 집계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부족한 LTV를 신용대출로 메우는 건 금지돼 있지만, 각각 다른 은행에서 대출하거나 동일 은행이라도 오랜 시차를 두고 대출하면 적발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투기와 전쟁 중인 정부에게도 ‘여론’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은 여전히 국민 자산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며, 초강력 규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경우 그 부담은 집권여당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 전경. 고성준 기자
문재인 정부는 8·2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5%대이던 다주택자들의 주택 추가 구매 비중이 2014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부동산 및 관련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했는데 이후 다주택자들의 주택 추가 구매 비중은 14%까지 증가했다. 다시 말해 주택 가격을 급등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가 다주택자의 투기성 부동산 매매라고 정부는 진단했다. 지난 9일 국세청이 다주택자에 대한 세무조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다주택’ 자산가들은 여전히 관망하는 분위기다. 자산이 많은 만큼 금융규제를 해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양도세 중과를 해도 실제 매도가 이뤄지지 않는 한 세금을 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종용하고 있지만 8·2 부동산대책에는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따라서 자산가들은 정부가 9월 내놓을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을 보고 움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강남의 한 은행 PB는 “임대사업등록은 1993년 제도 도입 후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주택자의 4.5%만 등록 중”이라며 “절세에 민감한 부자들은 소득이 드러난다는 부담이 큰 만큼 등록 여부는 정부가 얼마나 혜택을 주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등록 유도를 위해 양도세 중과 면제 외에도 임대주택 매입 비용 지원이나 건강보험료 인하 등의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노림수’ vs. 시장의 ‘전략적 인내’
정부는 양도세 중과로 주택매매 차익을 통한 불로소득을 제한하고,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로 주택임대시장의 양성화를 노리고 있다. 반면 ’시장‘(투기세력)의 셈법은 좀 다르다. 내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양도세 중과 방침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계산이 들어서다. 또 다주택자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더라도 세 부담만큼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에 이를 반영해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
정부는 투기세력의 이 같은 속내를 읽고 있다. 때문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양도세 중과 같은 임시조치 외에 보유세 도입과 같은 영구적인 대책을 검토하는 한편 ’임전무퇴‘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임대사업자의 전월세 가격 인상에 맞서 전월세상한제와 전세계약갱신청구권 제도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동산 투기와 전쟁 중인 정부에게도 ‘여론’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은 여전히 국민 자산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며, 초강력 규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경우 그 부담은 집권여당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강남이야 보수 텃밭이지만 강북 등은 현재 여당이 우세한 지역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남 외 지역에서 이번 8·2대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수도권 민심도 중요한데, 부동산 규제 여파로 실수요자들의 자금줄이 막혀 수도권 미분양이 늘어나면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상한제 초읽기…긴장하는 건설업계
정부와 투기세력의 팽팽한 대치 속에 긴장하는 곳은 건설업계다. 국제유가 급락 이후 해외부문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국내 건설사는 2014년 이후 재건축 붐을 타고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와 주택부문 매출총이익률은 이미 16%를 넘어섰다.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분양가도 덩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3.3㎡당 분양가격은 2055만 원으로, 같은 기간 매매가격(2467만 원)보다 낮았다. 그러나 분양가 상한제가 없어진 2015년 단숨에 40% 이상 급등하며 2885만 원을 기록, 매매가격(2635만 원)을 훌쩍 넘었다.
2014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은 서초 푸르지오 써밋의 분양가 3200만 원 가운데 건축비는 680만 원이었지만 1년 뒤 선보인 반포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은 건축비가 무려 1488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 기간 건축비 차이(808만 원)는 공교롭게도 분양가 차이(840만 원)와 거의 일치한다. 건설사들은 고급 마감재 사용, 조경 비용 증가, 단지내 편의시설 확충 등을 이유로 꼽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인 것을 감안하면 1년새 건축비만 두 배 넘게 올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가 높아질수록 조합원들에게 이익이다. 또 실제 건축비 부담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분양가가 오르면 건설사가 이익을 얻게 된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투기세력과 건설사는 더는 이 같은 개발 차익을 누리기 어렵게 된다. 초읽기에 들어간 분양가상한제는 급변하는 부동산 시장의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