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사장이 지난 1월 9일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는 모습.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문자가 공개된 후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장 전 사장이 왜 이런 민감한 문자들을 파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장 전 사장은 삼성그룹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했던 인물로 보안에 관해서는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장 전 사장이 보안을 위해 휴대폰 8~9대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장 전 사장이 그 중의 일부를 특검 측에 넘겨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문자를 삭제한다고 해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구할 수 있고 문자를 삭제하거나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하면 증거인멸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문자에서 이재용 재판과 관련한 중요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별다른 저항 없이 특검 측에 제공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 전 사장은 피고인 신문에서 “임원들은 매년 휴대폰을 바꿔주는데 특별히 감출 것도 없어서 수년간 쓰던 폰을 그대로 썼다”고 했다.
누가, 왜 문자를 외부에 유출했는가도 의문이다. 형법 제127조(공무상 비밀의 누설)에 따르면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할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공개된 문자는 이재용 재판과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는 내용들이다. 일각에선 최근 언론들이 이재용 재판 과정에서 삼성에 유리한 기사들을 쏟아내자 특검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외부로 유출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공개된 문자 상당수가 언론인과 연관된 내용이다. <시사인>도 기사에서 ‘언론이 일방적으로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면서 언론과 삼성의 유착관계를 조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지만 특검은 유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특검 핵심 관계자는 “공소 유지 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우리가 뭐가 답답해서 흘리겠나. 보도가 나갈 때까지 특검 내부에서도 모르고 있더라. 아침 회의에서도 이런 문제는 논의되지도 않았다. 회의 시작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네요’하고 넘어간 사안이다. (공개된 문자가) 우리 공판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자료를 제출받은 것”이라며 “특검이 아니더라도 유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영수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편법이나 꼼수를 쓴다면 피의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매번 강조한다. 수사하다 무죄 증거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인정하고 덮자고 했다”면서 “외부에서 볼 땐 특검이 문재인 정권하고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박 특검이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면서 편향된 사고를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특검 이력을 발판 삼아서 이득을 취하거나 인기를 누리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박 특검이 이규철 전 특검보를 다시는 안 보기로 했다. 대변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 그렇게 가볍게 행동할 수 있느냐고 질책했다”고 말했다. 이규철 전 특검보는 특검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변호사로 선임돼 논란을 일으켰다.
공개된 것 외에 실제로 청탁이 이뤄진 문자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특검은 국정농단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건은 조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살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장 전 사장에게 정보보고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에 대해서도 비난 목소리가 높다. 언론인들의 경우 광고 협찬, 취업 청탁, 사외 이사 등으로 원하는 바가 뚜렷했지만 고위 공직자들이 삼성을 돕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과거 삼성 X파일 사건(삼성이 전현직 검사들과 검찰 고위층에 정기적으로 ‘떡값’을 전달했다는 녹취파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여전히 물밑에서 각종 청탁과 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사무처장은 “그런 노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고 삼성과 가깝게 지내면 내부 인사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퇴직 후 사외이사, 법무팀 등 갈 수 있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 의원실 보좌관도 “국정감사 때 삼성과 관련한 질의를 준비하면 온갖 통로로 회유와 압박이 들어온다. 삼성의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보좌관은 “삼성과 관련한 질의나 법안 등을 준비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삼성에서 의원에게 직접 연락해 압박하더라. 특히 재벌 지배구조 개선 등 삼성 경영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법안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장 전 사장 문자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는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하해와 같은 배려 간절히 앙망하오며…’ 언론인은 청탁, 공직자는 정보보고 언론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청탁문자를 살펴보면 삼성 공화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한 대법관 후보자는 장 전 사장에게 “하OO 대한변협 회장이 거품을 물고 저를 비토하여 두 시간 이상 격론을 벌이다가 저와 진보 측 김OO 변호사를 패키지로 같이 낙마시키는 걸로 봉합되었다 한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장 전 사장은 이헌수 국정원 전 기획조정실장과 각종 정보를 문자로 주고 받았다. 이 전 실장은 장 전 사장에게 “사장님 지원으로 우리나라가 안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료는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청와대 인사로 추정되는 인사는 장 전 사장에게 “장 선배님 불쑥 죄송합니다. 오늘 11시 BH(청와대) 회동 관련 참고하세요.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미국 대기업 17곳 10만 개 청년 일자리 창출. 아무래도 지금 VIP(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게 노동 개혁인데 그에 대한 협조의 뜻을 밝히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언론인들도 장 전 사장에게 바짝 엎드렸다. 한 기자는 “존경하는 실차장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면세점 관련해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OOO 기자 올림”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언론사의 한 간부는 “사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OOOO이라는 중책을 맡은 지 4개월. 저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죄송스런 부탁드릴 게 있어 염치 불구하고 문자 드립니다. 제가 OOOO 맡으면서 OOO OOOO에서 당부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OOOO으로서 신문 잘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발 저한테는 영업 관련된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주는 듯 싶더니 이번에는 정말 심각한지 어제부터 제 목만 조르고 있습니다. 올 들어 삼성의 협찬+광고지원액이 작년 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 대비 1억 플러스(8억)할 수 있도록 장 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 게 요지입니다.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 갖고 챙겨봐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 언론인 출신 초빙교수는 “별고 없으신지요? 염치불구 사외이사 한 자리 부탁드립니다. 부족합니다만 기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년에 서울경제 OOO 그만두고 OOO 초빙교수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OOO 드림”이라면서 사외이사 자리를 청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언론사 간부는 “존경하옵는 장충기 사장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몇 번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문자를 드립니다. 제 아들아이 OOO이 삼성전자 OO 부문에 지원을 했는데 결과 발표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떨어졌는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하반기에 다시 도전을 하겠다고 합니다만 올 하반기부터는 시험 과정과 방법도 바뀐다고 해서 이번에도 실패를 할까 봐 온 집안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OOO 수험번호 1OOOOOOO 번이고 OOO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 같은 부탁이 무례한 줄 알면서도 부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문자를 드립니다. 사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면서까지 폐를 끼쳐드린 데 대해 용서를 빕니다. 모쪼록 더욱 건강하시고 섬기시는 일들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라며 아들의 수험번호까지 불러주며 취업을 청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장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거 같습니다. 누워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구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갑니다”라며 이건희 동영상 보도를 비판하는 듯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장 전 사장은 청와대 내부 인사 정보도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 전 사장은 2015년 2월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 인사와 관련해 “BH기류(일부)입니다. 신세돈 교수는 과거 오랫동안 공부모임을 같이해 인연은 있으나, 김광두 교수 계열로 최근 청와대 비판을 많이해 주변에선 글쎄라는 반응입니다. 실장 문제와 관련해 VIP가 지금까지도 아무 언급이 없어 시기조차 가늠하기 어렵답니다. BH실무자들도 답답해 한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전달받았다. 신임 민정수석 인사와 관련해서는 “민정수석 후보자 검증 동향 정보 수집. 극비-보안유지요망. 민정수석 후보자로 박상옥(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11기, 경기고, 서울대, 전북부지검장)에 대해 세평 정리 등 특감반에서 진행 중임”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전직 검찰총장이 장 전 사장에게 직접 청탁을 한 일도 있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임채진이네. 그동안 건강하게 잘 계셨는가. 이번 토요일 미팅 계획은 예정대로 시행되겠지? 내공을 좀 더 깊이 갈고 닦아 그날 보세. 그리고. 내 사위 OOO이 수원공장 OO실에 근무 중인데, 이번에 인도 근무를 지원했네. 본인의 능력과 적성에 대해 오랜 고민 끝에 해외근무를 신청한 것이라 하네. 조그만 방송사 기자를 하고 있는 내 딸 OO이도 무언가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인도에서 몇 년간 공부하고 오면 좋겠다면서 날더러 꼭 좀 갈 수 있도록 자네에게 부탁해달라 하네 그려. 부적격자라면 안 되겠지만, 혹시 같은 조건이면 가급적 OOO이 인도로 나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는가. 쓸데없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네. 이번 토요일날 보세~~~!!”라는 문자를 남겼다.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