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계에선 베드신 촬영에 대한 확실한 사전 협의가 이뤄진다. 노출 수위는 물론이고 명확한 콘티를 바탕으로 화면의 앵글과 조명까지 모두 논의를 거친다. 여전히 독립영화계에선 이런 사전협약보다는 현장에서의 감독의 연출 권한이 더 중시되고 있어 김기덕 논란이 불거졌지만 일반 상업 영화계에선 이제 흔치 않은 풍경이다.
그렇지만 배우의 파워가 크게 형성되기 전인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이런 상황이 흔했다. 이미 그 당시에도 몇몇 톱스타급 여배우들은 노출 장면에 대한 세세한 사전 협의가 이뤄졌지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감독 A의 영화에선 늘 유명 여배우의 노출 장면이 담겼다. A가 워낙 뛰어난 연출력을 가진 감독이기에 스타급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전까지 전혀 노출 연기를 하지 않던 여배우들도 A와 작업을 하면 꼭 벗었다. 노출 연기 경험이 A의 영화가 유일한 여배우들도 꽤 될 정도다. 그렇다고 사전 협의를 거쳐 노출을 조율하진 않았다고 한다. 배우 역시 베드신의 존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신체 주요 부위 노출은 마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촬영에 들어간 여배우들도 하나같이 노출 연기에 응했다.
당시 A와 함께 자주 작업을 했던 한 영화 스태프는 “A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여배우와 노출 수위를 조율하곤 했다”라며 “그는 절대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토론하는 상황에서 왜 노출 장면이 필요한지를 조곤조곤 설명했고 결국 배우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곤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장 조율로 이뤄진 노출 연기에 대해 나중에 문제제기를 한 여배우는 거의 없다. A가 자신이 언급한 노출의 당위성을 제대로 영화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 ‘화장’ 홍보 스틸 컷.
거장 임권택 감독 역시 현장에서 여배우의 노출 수위를 조율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여배우의 음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격적인 수위다. 영화 <화장>에서 김호정의 화장실 장면으로 베드신은 아니고 뇌종양을 앓다 쓰러져 점점 피폐해지는 아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장면이었다. 시나리오에선 노출 수위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임 감독은 “남편을 향한 수치심과 미안함, 그리고 여러 감정의 편린들을 담고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다소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김호정이 들어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호정 역시 “처음에는 상체나 이런 것들을 이미지화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풀샷으로 연결해보니 그 장면이 훨씬 아름답다며 감독님이 주문하셨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노출이 담긴 장면이긴 하지만 성적인 묘사를 위한 장면이 아니었던 데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감독과 배우의 열정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으로 이해가 된다.
반면 사전 협의 없이 감독의 연출 의지와 현장 분위기로 인해 파격 노출 장면이 촬영된 경우도 있다. 바로 영화 <테러리스트>에서의 염정아의 노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단 한 번 노출 연기를 선보인 염정아는 15년여가 흐른 뒤에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시의 일을 언급했다. 염정아는 “촬영을 하려고 한 게 아니다. 당시 매니저도 없었고 엄마도 같이 안갔는데 하라고 하니 얼떨결에 했다”라며 “극장에서 보고 기절할 뻔했다. 내가 해놓고도 노출수위가 높았다”고 밝혔다. 역시 시나리오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지만 촬영 직전 현장에서 노출 수위가 바뀐 것이었다. 염정아는 “그때 22세였는데 어린 마음에 상당한 상처였다”라며 “차라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했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화 ‘미인도’ 홍보 스틸 컷.
노출에 대한 사전 협의와 현장에서의 감독 요구가 엇갈리면서 모호한 영화가 완성되기도 했다. 여배우 B는 신인 시절 파격적인 노출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신인이지만 탄탄한 소속사의 지원을 받던 B는 잦은 베드신과 파격 노출이 불가피한 영화에 출연했다. 그렇지만 사전 조율 과정에서 신체 주요 부위의 노출 수위에 대해한 협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실제 촬영에 돌입한 뒤 감독은 점차 베드신의 비중을 키워갔고 거듭 노출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B와 소속사에선 사전 협의에 충실한 베드신과 노출 연기를 주장했다. 그 결과 이 영화에는 잦은 베드신이 등장하고 파격적인 성관계 장면도 많았음에도 노출 수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다. 베드신마다 B는 매우 부자연스러울 만큼 노출을 자제한 것. 팔 등을 이용해 계속 가슴 부위를 가리며 연기를 했기 때문으로 아무리 파격적인 성관계 장면일지라도 그의 팔은 다양한 카메라 앵글에도 불구하고 늘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노출 수위는 크게 낮고 여배우의 연기도 많이 어색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