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공헌은 1954년 일본 최초로 민간병원에 건강검진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일본인의 장수 건강에 초석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같은 질환에 ‘생활습관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방의학의 발전도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환자 중심적 의료’를 강조한 일본 의료계의 거목이었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 뉴욕타임스 등 여러 외신들은 히노하라 박사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105세까지 평생 현역으로 일한, 멋진 생애였다”고 칭송했다. 아울러 그의 백세 장수법에 관해서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생전 히노하라 박사가 실천했던 건강 비법을 상세히 알아본다.
일본 의료계의 거목 히노하라 시게아키 성루카병원 명예원장이 7월 18일 향년 105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10년 10월 방한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히노하라 박사가 94세 때 혈액을 제공한 적이 있는데, 호르몬 수치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인슐린, 아디포넥틴, 부신피질호르몬(DHEA-S) 수치가 40대 초중반 장년기 수준이었어요.”
오차노미즈 건강장수클리닉의 시라사와 다쿠지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와 히노하라 박사는 장수의학 연구를 통해 오랜 교류를 쌓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시라사와 원장은 “곁에서 지켜본 히노하라 박사의 건강법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첫째 올리브오일을 섞은 주스를 마시는 것이다. 콜레스테롤이 높았던 히노하라 박사는 올리브오일에 함유되어 있는 올레인산에 주목. 매일 아침 한 스푼 분량의 올리브오일을 넣은 주스를 마셨다. 올리브오일은 혈관 건강뿐만 아니라 세포 노화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아침에는 음료 중심으로, 점심은 우유와 쿠키 몇 개, 식사다운 식사는 저녁 한 끼였다. 저녁엔 밥 반공기와 야채 듬뿍, 그리고 생선이나 소고기 등심을 곁들였다.
시라사와 원장에 따르면 “히노하라 박사는 하루 식사량을 1300kcal로 제한했다”고 한다. 이는 ‘기초대사량 1200kcal에 두뇌생활과 운동으로 100kcal를 쓴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참고로 칼로리 섭취량은 70세 이상의 경우 1600kcal가 권장되고 있으나 히노하라 박사는 90대부터 1300kcal를 섭취했다. 다만 적절한 칼로리 섭취량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며,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무작정 박사의 수치를 모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는 규칙적인 운동이다. 히노하라 박사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절대 이용하지 않았다.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계단으로 오르내렸고, 걸을 땐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덧붙여 틈이 생기면 목운동을 수시로 했다. 목을 앞뒤, 좌우로 천천히 스트레칭해 평소 목 관절을 부드럽게 유지했다.
셋째 히노하라 박사는 엎드려 잤다. 85살 때부터 실천한 이 방법은 “엎드려 잔 후부터 기상 시 가래가 나오지 않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배꼽 부위에 넓은 베개를 놓고, 그 위에 엎드린 자세로 잠을 잔다. 얇은 베개를 2중으로 놓아 머리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돌린 다음 귀가 베개에 닿도록 한다. 그러면 배가 자연히 아래쪽을 향하게 되고 두 다리는 약간 굽힌 자세가 된다. 이런 자세로 잠을 자면 복식호흡이 수면 중에도 반복되어 위장운동이 활발해지고, 배뇨에 좋다고 한다.
생전에 히노하라 박사는 “꿈을 가지고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장수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85세가 되던 해, 노인의 정의를 ‘기존 65세에서 7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고령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인생에는 은퇴가 없다. 75세가 지나면 제3의 인생이 펼쳐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해보라”고 거듭 강조했다.
1911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히노하라 박사는 교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그리고 1970년 일본 ‘적군파’ 비행기 납치사건 때 인질로 갇히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사건으로 히노하라 박사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 이후 노인을 위한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아래는 2009년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한 10가지 팁’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1. 일정한 체중을 유지하라
국적,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오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과체중이 없다는 것. 나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허기가 지지 않는다. 저녁에는 밥 반공기에 채소를 듬뿍 먹고, 생선을 곁들인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은 기름기 적은 고기를 약 100g 먹는다.
2. 빨리 은퇴하지 마라
꼭 해야 된다면 65세가 넘어서 은퇴하라. 일본에서 65세로 정해진 현행 정년퇴직 나이는 기대수명이 68세였던 5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 당시 100세를 넘었던 일본인은 12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여성이 86세, 남성이 80세까지 살고 100세를 넘은 인구도 3만 6000명에 달한다. 앞으로 20년 후 100세 인구는 5만 명을 웃돌 것이다.
3.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라
나는 1년에 약 150회 강의를 한다. 주로 초등학교 100곳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나머지는 회사원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강의는 60~90분 정도로 앉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진행한다. 이를 통해 다리 근육이 튼튼해지는 효과도 있다.
4. 의사를 지나치게 믿지 마라
의사에게 수술 권고 받았을 때 ‘당신의 배우자나 자녀에게도 같은 치료 절차를 추천할 것인지’를 물어라.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의사는 모두를 치료할 수 없다. 때로는 음악과 동물치료가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5. 계단을 이용하라
건강을 유지하려면 계단을 직접 오르고, 자신의 짐을 챙겨서 들고 다녀라. 그리고 약간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 운동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들은 틈나는 대로 많이 걷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6. 인생의 롤모델을 정해 생활하라
굳이 유명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의 롤모델 중 한 명은 아버지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내 아버지라면 어떻게 문제점을 풀어 나갔을까’를 자문하면서 극복해왔다.
7. 좋은 생각이 나를 건강하게 바꾼다
에너지는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정에서 나온다. 재미있게 놀다가 모든 걸 잊고, 먹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어른들도 어린이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게 건강에 좋다.
8. 물건을 모으는 데 집착하지 마라
일반적으로 숫자가 많아지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쌓아둘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른 세상으로 갈 때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9. 재미는 고통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치통을 앓고 있는 아이가 게임에 열중하면 즉시 통증을 잊는다. 병원은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해줘야 한다. 우리 모두는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원한다.
10. 인생은 각종 사고로 차득 차 있다
1970년 3월 31일, 59세였을 때 나는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날따라 햇살이 매우 따뜻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이륙할 땐 후지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날 그 비행기는 적군파에 의해 납치됐다. 이른바 ‘요도호 공중 납치 사건’이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