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예능에도 항상 짝짓기가 존재했다. 어찌 보면 짝짓기 예능은 ‘TV에는 유명한 사람만 나오는 것’이라는 편견을 깼다. 방송과는 거리가 먼 선남선녀가 TV에 얼굴을 비치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고르는 과정은 리얼리티 예능의 효시가 되며 대중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 시작은 ‘오작교형’
<사랑의 스튜디오>가 그 출발점이었다. 출신 학교, 직업까지 공개하고 남녀 출연자의 장기자랑까지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나도 한번 나가볼까?”라는 묘한 경쟁 심리와 환상까지 심어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남녀 각각 동수의 출연자가 나와서 서로의 매력을 발산한다. 외모가 무기가 될 수도 있고, 학벌이나 직업이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남녀 출연자들은 마치 퀴즈쇼에 나온 것처럼 마주 서서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질문에 답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탐색했다.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의 작대기’였다. 마지막 순서에 남녀 출연자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향해 화살표를 날린다. 이 화살표를 받은 이성 역시 같은 이성에게 화살표를 보내면 커플이 이어지는 것이다. 1명의 여성이 여러 남성의 구애를 동시에 받거나 반대 상황도 있었다.
<사랑의 스튜디오>가 장수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따로 출연진만의 모임이 꾸려지기도 했다. 녹화가 끝난 후 뒤풀이 장소에서 추가 커플이 탄생했다는 얘기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렸다.
이와 유사한 <좋은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역시 등장했다. 비슷한 포맷이었음에도 일반인 남녀가 TV에 출연해 매력을 발산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 인기가 높았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MC를 맡았던 방송인 박경림이 출연진 남성과 결혼에 골인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11년 혜성처럼 등장한 짝짓기 예능 ‘짝’.
# 연예인이 참여한 ‘서바이벌형’
<사랑의 스튜디오> 이후 짝짓기 프로그램은 스튜디오를 벗어났다. 외부로 나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더 친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예능적 요소가 강화됐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 출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존 짝짓기 예능은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연예인 MC가 있어도 다소 밋밋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연예인이 투입되며 상황은 달라졌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산장미팅-장미의 전쟁>과 <천생연분>, <애정만세>, <리얼로망스-연애편지> 등이다. <애정만세>에는 한 대학생 여성을 두고 여러 남자 연예인들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천생연분>은 연예인 출연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결이 달랐다. 이를 적절히 다듬어 장수한 프로그램이 바로 <산장미팅>이다.
특정 공간 안에서 장시간 녹화하며 다양한 장면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 남성과 일반인 여성의 만남이 주된 축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윤정희, 이윤지, 서지혜 등은 <산장미팅> 출연 후 뛰어난 외모로 주목받으며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스캔들을 두려워하는 연예인들의 특성상 실제 커플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워 진정성 논란도 나왔다.
그 후 2011년 <짝>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서로의 이름을 배제한 후 ‘남자 1호’, ‘여자 2호’로 서로를 부르며 ‘애정촌’이라는 공간에서 합숙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 프로그램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파트너를 찾지 못하면 밥도 혼자 먹어야 하고, 사랑을 어필해도 거절당하는 일이 빈번한 이 프로그램은 보다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했다. 하지만 출연진이 촬영 중 자살을 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며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짝짓기라는 소재를 방송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채널A ‘하트시그널’은 일반인 남녀가 한 달 동안 동거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진=채널A ‘하트시그널’ 공식 페이스북
# 요즘은 ‘썸’이 대세
<짝> 이후 잠잠하던 짝짓기 예능은 지난 6월 방송을 시작한 채널A <하트시그널>과 함께 돌아왔다. 이 프로그램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랑와 우정 사이’다. 일반인 남녀 6명이 한 달 동안 한 공간에서 동거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들의 언행을 지켜보며 그들이 누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지 연예인 판정단이 보고 코멘트하는 식이다.
8일 첫 방송된 Mnet <내 사람친구의 연애>의 기본 구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를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이라고 부를 수 있는 4쌍의 남녀를 관찰하며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지켜본다.
이런 사랑을 요즘 젊은이들은 ‘썸’이라 부른다. 분명 남들이 볼 때는 서로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성 관계인데, 정작 본인들은 명확히 상대방을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썸을 타는’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사랑의 스튜디오> 시대에는 남녀가 조건에 맞춰 맞선을 본 후 결혼이나 연애 상대를 찾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요즘은 사랑인지, 우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한 단계를 장기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짝짓기 예능 역시 각 시대상을 반영하는 셈이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