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채탕감정책은 장기 연체자들에게 채무불이행의 오명을 씻고 재기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부작용이 크다. 우선 성실하게 빚을 갚는 일반 채무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금융회사의 빚을 갚는 사람만 손해라는 불만이 확산될 수 있다. 더욱 문제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도 장기간 갚지 않으면 탕감해주는 모순이 발생하여 금융거래와 경제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확실한 담보가 없으면 금융거래를 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부업체나 사채시장으로 내몰려 더욱 고통스러운 부채의 덫에 걸릴 수 있다.
역대 정부들도 예외 없이 장기 채무자들에 대한 부채탕감 정책을 폈다. 노무현 정부는 개인 워크아웃제도를 시행했다. 개인 채무자가 부채의 상환능력이 없어 파산위기에 처할 경우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서 신용회복의 기회를 열어줬다. 이명박 정부는 신용불량자들을 대거 사면하고 국민연금에서 빚의 최대 절반까지 대출을 받게 했다. 박근혜 정부도 채무조정 정책을 펴 상환능력이 부족한 채무자들에게 원금감면을 해주고 상환기간도 연장했다. 그러나 부채를 탕감해줘도 상당수 채무자들이 다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그리고 추가적인 채무불이행자도 대규모로 발생했다. 그리하여 경제가 수시로 부채탕감정책을 펴야 하는 악순환에 걸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 5명 중에서 1명은 벌써 채무불이행자가 되었다.
과거 정부의 부채탕감 정책은 무조건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구노력을 전제조건으로 했다.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의 부채탕감 정책은 부채의 완전탕감이고 탕감규모도 역대 최대이다. 무엇보다도 채무기록을 삭제하여 채무자의 신용회복이 가능하다. 채무탕감 효과가 크지만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가 성장 동력을 상실하여 고용이 불안한 상태라 신규 채무탕감 대상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부채탕감을 계기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여 채권시효가 끝난 채무자들의 신용을 회복해주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철저히 막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장기 연체자에게 무조건 빚을 탕감하고 채무기록을 삭제해 줄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동시에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채무자들이 주홍글씨를 완전하게 지울 수 있다. 정부는 채무탕감을 하기에 앞서 고용창출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금융회사들도 대출심사기능을 강화하여 부실대출을 막고 채무불이행자의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정책은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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