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잇단 자사주 소각에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율이 문제가 된 것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24조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현행 금산법은 금융사의 타회사 주식소유한도를 1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일반계정 기준)은 각각 7.55%, 1.32%로 총 8.87%였다. 하지만 지난 4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자사주 1차 소각(4월 28일~7월 27일)에 따라 시장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이 각각 8.1%, 1.4%로 올라갈 것으로 봤다.
2018년 예정된 자사주 2차 소각이 완료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보유 지분율은 또 다시 상승해 각각 8.7%, 1.5%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가적인 지분 매입 없이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 합계가 8.87%에서 10.2%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는 법정 한도를 0.2% 초과한다.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받지 못할 경우 0.2%를 매각해야 한다. 게다가 금융위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법 규정을 초과할 경우 제재할 것이라고 밝혀둔 상태여서 두 회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금융위가 제재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배경에는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25일 국무회의를 열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금융지주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금융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수술대에 올려 과도하게 쏠린 경제력을 완화하는 내용의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삼성과 현대차, 한화, 동부 등 금융과 산업이 결합한 재벌 계열 금융회사에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을 적용할 방침이다. 당국은 조만간 공청회를 열어 금융감독 통합시스템의 적용 대상과 기준 등을 구체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시스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처음 진행됐을 당시엔 ▲금융자산 5조 원 이상 ▲그룹 내 금융자산 비중 40% 이상 ▲금융업권별 자산 비중 10% 이상인 그룹이 적용 대상으로 거론됐다.
금융계열사의 자본 적정성을 평가할 때 계열사 간 출자지분을 제외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감독 대상 그룹에 속한 금융계열사들은 자기자본을 추가로 확충해야만 한다. 이런 정부 기조를 감안할 때 삼성그룹 보험 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 초과 보유 문제와 관련해 금융위의 승인 절차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발단은 올해 4월 삼성전자가 1분기 실적 발표 후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총 49조 3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전체 발행 주식 수의 13.3%(보통주 12.9%, 우선주 15.9%)에 해당한다. 올해 50% 물량을 소각하고 내년 이사회를 거쳐 나머지 50% 물량을 소각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함에 따라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진은 삼성생명 서초사옥. 고성준 기자.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대주주 및 자회사 채권·주식 합계는 6조 7850억 원으로 이는 일반계정 총자산의 2.94% 수준이다. 보험사는 대주주 및 자회사 채권·주식 합계가 일반계정 총자산의 3%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자산운용 규제에서 사용된 삼성생명 주식 가치는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 기준으로, 주당 평균 취득가는 5만 원을 조금 넘는다.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220만 원대로 차이가 크다. 삼성생명이 만약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 영향으로 주식을 팔고, 향후 똑같은 규모로 삼성전자 주식을 산다면 새로 산 삼성전자의 주당 취득가는 220만 원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대주주 및 자회사 채권·주식 합계는 일반계정 총자산의 3%를 넘어 보험업법을 위반한다.
그렇다고 그대로 갖고 있을 수만도 없는 처지다. 금융위원회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은행·증권 기준과 같게 시가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감독규정은 금융위원장이 직권으로 개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삼성생명은 현재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약 20조 원을 1년 내 처분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삼성 지배구조가 흔들릴 우려가 있고, 주식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생명이 주식을 모두 팔면 주인이 바뀔 우려가 생기고, 20조 원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당국을 중심으로 삼성생명이 20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 혼란 없이 매각할 수 있는 방법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13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 자사주를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에게서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에서 상장법인은 거래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만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데, 박 의원은 법률이나 규정 제·개정으로 지분 매각이 강제되는 상황에서 매수자를 찾을 수 없는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특정주주로부터 이를 모두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그룹은 2012년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 해소 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당시 금산법 위반으로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에버랜드가 해당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한 것이다. 상법에서 비상장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개정돼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주식은 삼성전자가 모두 사들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장 충격을 줄이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급격히 흔들리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는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삼성의 수뇌부가 묘안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이라면서 “1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