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준필 기자
후이즈(whois.co.kr)는 일정 비용을 내고 등록을 신청하면 도메인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다. 청와대 비서실은 후이즈에 2014년 5월 16일 닭그네.kr, 닭그네.net, 닭그네.com 등 한글 도메인 3개를 등록했다 (일요신문 제1282호 “청와대가 ‘닭’ 도메인을 사들인 이유는?”보도 참고).
‘닭그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단어인 ‘닭’과 ‘그네’가 결합된 은어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통한다. 2013년 박 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청와대는 ‘닭그네’라는 은어를 활용해 만든 닭그네.kr 등 안티성 도메인 수십 개를 구매해왔다.
청와대 비서실이 주도해 안티성 도메인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정치권에선 온갖 뒷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부정적인 사이트 개설을 차단하기 위해 국민들의 혈세로 안티성 도메인을 구입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누진제 폭탄 등으로 민심이 요동칠 때마다 안티성 도메인을 모조리 사들였다. 이명박 정부가 쥐박이.com, 명박이.kr 등 이 전 대통령 안티성 도메인을 구입한 행태를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일요신문>은 박 전 대통령 관련 안티성 도메인들의 ‘현재’를 추적했다. 청와대는 2014년 5월 16일 닭그네.kr을 구입했다. 세월호 참사로 민심이 들끓었을 때다. 후이즈에 따르면 닭그네.kr의 등록 만료일은 2017년 5월 16일. 닭그네.kr는 이제 누구나 구입 가능한 도메인이 됐다. 도메인 닭그네.net와 닭그네.com의 등록기간도 만료된 것으로 확인된다.
취재 결과 청와대는 최근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8월 12일에 구입한 도메인 닭그네.닷컴과 닭그네.닷넷의 갱신을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후이즈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이즈 관계자는 “청와대가 보유했던 닭그네.닷컴과 닭그네.닷넷은 지난 8월 12일에 계약 만료됐다. 청와대가 이번에 연장을 안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라며 ”지금은 도메인 ‘등록불가’ 상태이지만 곧 등록이 가능한 상태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8월 16일 현재 닭그네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는 도메인 중 등록 가능한 도메인은 모두 17개다. 개인이 소유한 도메인 닭그네.한국을 제외하면 이른 시일 내에 박 전 대통령의 안티성 도메인 19개가 시장에 풀릴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가 수년간 독점한 ‘닭그네’ 봉인이 해제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또한 안티성 영문 도메인의 경우 알파벳 철자 하나하나마다 도메인으로 등록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는 antibakgeunhye, antigeunhyepark, antiparkgh 등의 표현이 들어간 영문 도메인들을 모조리 구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후이즈에서 ‘등록가능’한 도메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메인 antiparkgeunhye.net의 등록자가 여전히 청와대라는 점이다. ‘antiparkgeunhye’ 역시 박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영문 표현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의 안티성 영문 도메인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취임일(2013년 2월 25일) 직후인 2013년 3월 11일 대통령 비서실은 도메인 antiparkgeunhye.net을 구입했다. 8월 17일 현재 antiparkgeunhye.net의 등록자는 Office of the President, 등록자의 주소는 ‘종로구 청와대로 1’이다.
antiparkgeunhye.net은 2017년 2월 20일 ‘업데이트’됐다. 만료기한은 2018년 3월 11일이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당시 청와대는 antiparkgeunhye.net의 만료기간을 1년 더 갱신한 셈이다.
도메인 구매 사이트 후이즈에 나타난 닭그네.kr 관련 정보(위)와 도메인 antiparkgeunhye.net 관련 설명
후이즈의 다른 관계자는 “올해 1월 청와대 측에서 도메인을 연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었기 때문에 연장이 가능했다“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직 삭제 요청을 안 했다. 어차피 청와대에서 삭제 요청을 해도 비용이 환불되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면 그때 연장을 안 하겠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antiparkgeunhye.net뿐만이 아니다. antiparkgeunhye.com, ghpark.net 등 다른 영문 도메인의 등록자도 청와대다. 정권이 바뀌었는 데도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의 안티성 도메인인 antiparkgeunhye.net을 보유하고 있는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민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 아무개 씨(32)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여론조작용 도메인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조 아무개 씨(32)는 “청와대 안주인이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 도메인을 왜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밝히며 새 정부의 처분을 주문했다.
실제로 후이즈에선 도메인에 대한 ‘중도 포기’가 가능하다. 등록자가 삭제 신청서와 인감증명서를 후이즈에 보내면 도메인을 포기할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박 전 대통령의 안티성 도메인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서 탄핵 대통령 색채를 지워야 한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후이즈 관계자는 “도메인 권리를 중도에 포기한다고 해도 비용을 환불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통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 두는 편이다. 만기가 가까운 도메인 리스트를 다달이 청와대에 보고하는데, 그럴 때마다 청와대가 필요없는 도메인을 걸러내는 방식이다. 대기업들도 그렇게 한다”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