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8·27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에 출마한 안철수 전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박은숙 기자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700만 표를 획득, 21.42%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이 아닌 ‘안철수’라는 인물 브랜드가 만들어낸 수치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선다면 현재로서는 브랜드 경쟁력이 가장 앞선다고 많은 정치 평론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민의당과 지지층이 상당 부분 겹치는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대비책 마련에 초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장을 붙잡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자유한국당도 지방선거 셈법이 복잡해졌다.
# 안철수, 쿠션 전략으로 선회?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천정배 전 대표는 8월 13일 ‘뉴스거리’를 하나 만들어냈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경쟁력 있는 당의 자산들이 전략 승부처에서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요청하고 설득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천 전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의 패키지 선거로 당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천 전 대표 발언에 대한 구체적 해석이 뒤따라 나오면서 큰 파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천 후보 측은 “당원과 국민이 원한다면 안철수 후보가 지방선거에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당 대표로서 천 후보도 요청이 있다면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당을 살리기 위해서 서울시장 선거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때마다 후보군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 왔었다.
“대선 후보가 시장으로 격을 낮춰서야…”라며 손사래를 강하게 치고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안 전 대표 역시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나서면서 정치권은 귀를 쫑긋 세우기 시작했다. ‘서울시장 차출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안 전 대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겠다”고 했다. 그는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여건이 될 때 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 그 당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전 대표 발언은 긍정 신호가 아니라 원칙론적인 답변이라는 평가도 있다.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쟁 후보인 천정배 전 대표가 차출론을 제기한 것에 대한 일반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안 전 대표 역시 “솔직히 지금 5% 정도의 당 지지율이면 당장은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우선 해야 할 일은 혁신과 인재 영입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그때 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판단해 보겠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 전 대표 스스로는 물론, 측근들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안 전 대표를 잘 아는 한 현역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의 700만 표는 적은 표가 아니다. 국민의당을 보고 찍었다기보다 안철수라는 정치인을 보고 선택한 유권자들이다. 더욱이 그는 중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역량도 갖고 있는 만큼 표의 확장성 측면에서 차기 서울시장으로 가장 유력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대선에 재도전할 것이라는 ‘쿠션 전략’을 세웠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일단 ‘장기 계획’은 아직 못 세웠다는 입장이다. 그는 16일 라디오에 나와 차기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제 머릿속에 없다. 내년 지방선거까지만 계획이 있다”고 했다.
# 민주당 서울시장 구도 요동
안철수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지 않자 가장 신경을 쓰는 쪽은 역시 더불어민주당이다.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다 이와 더불어 당 지지율도 모든 정당을 통틀어 가장 높은 상황. 이런 판국에서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싹쓸이’까지 기대하고 있는데 복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정부·여당 지지율이 높고 후보군도 워낙 ‘빵빵해’ 지방선거 핵심인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데 안 전 대표가 출마할 경우 지금까지 예상했던 상황과는 전혀 딴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사람들은 겉으로는 안철수 서울시장 등판론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가설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놓는다. 대선 후보의 하향 지원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정치인의 최종 목표는 국가경영이다. 이를 위해 차곡차곡 올라오는데 그 꿈을 제쳐두고 시장으로 나간다는 것은 정치의 세계를 잘 모르는 얘기다. 안 전 대표가 거꾸로 도전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계속 정당’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서울시장 후보가 마땅하지 않은 국면에서 결국 안 전 대표가 짐을 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아올 만한 인물이 없는데 안 전 대표가 아닌 엉뚱한 인물을 후보로 낼 수 없다는 논리가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울시장을 국민의당이 차지한다면 순식간에 당의 지위가 급상승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실제 서울시장 선거에 등판한다면 민주당의 서울시장 경쟁 구도는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단 3선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는 최근 한 TV방송에 나와 추석 즈음에 결심을 밝힐 것이라고 했는데 측근들은 3선 도전을 확정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시장 외에는 추미애 대표, 박영선 우상호 이인영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민주당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거론된다.
지금 현재로서는 당내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박 시장의 경우, 변수도 안고 있다. 과거 안 전 대표와의 관계 때문이다. 여론 조사상 지지율이 앞섰던 안 전 대표는 2011년 보궐선거 때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전례가 있다. 이 덕분에 당시 박 시장이 당선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과거’가 있는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박 시장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박 시장 측은 ‘빚이 있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안 전 대표가 조건 없이 양보한 것은 누가 서울시정을 더 잘 이끌 것인가의 차원이었을 뿐, 정략적 약속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 시장은 민주당 당원으로서 당의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지, 국민의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 행보를 결정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는 반론을 민주당 측도 펴고 있다.
하지만 안 전 대표 출마가 현실화되면 결국 다른 논의가 나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안 전 대표에게 빚 있는 사람은 안된다”는 의견이 쇄도할 수 있고, 안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새 인물론’도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아직 국민의당 대표가 누가 될지도 모른다. 안 전 대표가 되지 못하면 서울시장에도 나오기 힘들다. 변수가 너무 많아 지금의 예측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안 전 대표가 새 대표가 되고, 서울시장에도 나온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솔직히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털어놨다.
# 서울시장, 별들 몰리는 까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32대 서울시장 자리를 통해 청와대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2002년 민선3기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재임 중 청계천 복원, 버스 교통체계 개편 등을 성공시키면서 당내 강력한 경쟁자였던 박근혜 의원을 경선에서 꺾은 뒤 대선에서 승리했다.
서울시 사업은 전국적 이목을 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표 청계천 복원이다. 당시 이 시장은 쇄도하는 민원을 직접 나서 돌려세우며 청계천 복원에 성공했고,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를 만들었다. 덕분에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서 큰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
서울은 큰 규모답게 시장직을 수행하다보면 국가 경영에 버금가는 역량을 쌓을 수 있다. 1000만 시민 수장으로서 재임 기간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데다, 연간 27조 원대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예비 국가 경영자로서 공부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서울시장은 ‘서울시 행정에 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국무위원급으로 지위가 격상돼 지자체장 중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배석한다.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권은 가지면서 지자체를 뛰어넘어 중앙행정을 경험하게 된다. 서울시장의 높은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이명박 전 시장이 청와대로 들어갔고 고건 전 시장 역시 중도 포기하기는 했지만 한때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편,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서울시민들은 집권 정당과는 엇갈리는 ‘크로스 선택’을 통해 시장을 뽑았다. 견제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이명박 시장(2002년)이 나왔고, 노무현 정부 때는 오세훈 시장(2006년)이 당선되면서 또다시 야당 시장이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야당인 박원순 시장(2011·2014년)이 당선되면서 이 전통은 깨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아직 서울시장 후보군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모습이다. 아직은 조용하다. 지난 대선 당시 대권 후보로 거론됐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일단 자유한국당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몸 풀기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 시장에게 패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재도전 가능성도 있다. 소설 수준의 예측이지만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연대, ‘서울시장=안철수(국민의당), 경기도지사=남경필(바른정당)’ 이야기도 떠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