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과 질의 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의 100일간 점수는 ‘평균 이상’이다. 신구 정권과의 어색한 동거 체제는 갈등 없이 연착륙했다. 딱 여기까지다. 경기 지배력은 증명했지만, 골은 2% 부족했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그 첫걸음은 여론정치의 의존성 벗기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역대급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문 대통령 지지도를 처음 조사한 6월 1주차(5월 30일∼6월 1일 양일간 조사, 2일 발표)부터 100일 직전인 8월 2주차(8∼10일 이틀간 조사, 11일 발표)까지 조사 결과를 보면, 최대치(84%)와 최소치(74%)의 편차는 10%포인트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 취임 직전인 8월 11일 발표된 8월 2주차 지지도는 78%였다. 이는 87년 체제 이후 역대 2번째로 높은 수치다.
<한국갤럽>이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직전인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조사한 취임 100일 지지도는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83%로 가장 높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62%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57%), 박근혜 전 대통령(52%)이 중위권을 형성했고, 과반에도 못 미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40%), 이명박 전 대통령(21%)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 대통령 고공행진 지지도의 비밀은 ▲탄핵 정국의 장기화 ▲파격 행보로 대표되는 이미지 정치 ▲보수야당 및 호남 대안세력의 부재 등이 맞물린 결과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기저효과와 메시지는 있지만 메신저가 약한 야권의 고립이 문 대통령에게 반대급부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초반 행보는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판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지 정치로 그의 업적이 과대평가됐을 뿐, 미화된 베일을 벗기면 실상 특별한 성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많은 정치·역사학자들이 케네디를 가리켜서 꿈을 준 대통령으로 평가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다”며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이미지 정치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중요한 것은 100일 이후 성과”라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가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공개한 업적을 보면, 국민 소통 분야에서 대통령 연설 총 24회를 비롯해 대통령 브리핑 3회, 국민소통수석 브리핑 35회(순방 3회 포함), 대변인 브리핑 82회(순방 9회 포함) 등을 기록했다. 청와대 및 정부 회의 주재는 3.6일에 1번꼴로 총 28회, 대면보고는 1일에 2.6회꼴로 총 267회나 했다. 소셜네트워크(SNS) 활용도도 높다. 페이스북 148건, 트위터 239건, 인스타그램 22건, 카카오플러스 12건 등이다. 도달 수는 페이스북 1961만 5600, 트위터 5557만 6497, 인스타그램 424만 6720, 카카오플러스 177만 6780 등이다.
청와대 관계자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각각 “열린 소통을 보여줬다”, “준비된 대통령의 약속 지켜온 100일”이라고 자평했지만, 문 대통령의 사소한 일상을 담은 페이스북 내용이 보도자료 형식으로 기자단 모임방에 올라오자 “우리는 관보 기자가 아니다”라며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문 대통령식 소통 정치의 명암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일각에선 소통 정치에 치중한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가 오히려 여야 관계를 꼬이게 한다고 주장한다.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 고공행진과는 달리, 자유한국당을 포함해 야 4당이 10% 초반대거나 한 자릿수에 그치면서 힘의 불균형이 증폭, 당·정·청이 ‘야권 패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야의 힘이 균형점을 향해 수렴해야만, 여야 영수회담 등의 담판 정치를 통해 꼬인 정국을 풀 수 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정무라인 약화’도 내우외환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국민 설득형’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문 대통령은 ‘참모 의존형’ 스타일이다. 정무라인 약화는 곧 내부 시스템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야권 관계자들은 전병헌 정무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정무라인과의 소통 부재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처럼 여야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막후 조정자’ 기능이 약하다는 얘기다.
실제 ‘허주’ 고 김윤환 전 의원은 87년 직선제로 태동한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김영삼 정부 때까지 막후 실력자로 통했다. 허주는 두 정권 출범의 핵심 개국공신이다. 언론인 출신인 김 전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고, 5선 국회의원 동안 원내총무 2번·정무 장관 3번·여당 대표 2번을 각각 지냈다.
또 YS는 킹메이커로 ‘좌동영(김동영)·우형우(최형우)’까지 겸비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뿐만 아니라 ‘박관용·한승수·김광일·김용태’ 비서실장 체제를 꾸린 YS는 이원종 정무수석 등에게 물밑 막후 역할론을 부여하는 등 비선 의존성이 컸던 대통령으로 꼽힌다. DJ 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을 비롯해 한광옥 전 의원 등이 움직였다. 햇볕정책을 편 DJ의 대북관계 막후 조정자는 서훈 현 국정원장이 담당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당시에 김우식 비서실장 등이 표면적인 조정자 역할을 했지만, 막후에는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이 있었다. 당에서는 친노(친노무현)계 중진이었던 유인태 전 의원 등이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MB정부에서는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 대표적인 막후 실력자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막후 조정은커녕 ‘그림자 권력’으로 전락하면서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위기론도 막후 조정자 부재론과 무관치 않다. 당 안팎에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김수현 사회수석 등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이 제 기능을 못 하면서 ‘정치적 판단’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분석한다. ‘황우석 사태’ 책임론에 휘말린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자진 사퇴가 대표적 사례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박기영 사퇴’는 정치그룹의 실패다. 임 실장 등 청와대 참모그룹이 대통령 눈치 보기를 하면서 관조적 및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정부 실세로 등장한 86그룹이 책임정치를 구현하지 않는다면, 국민들도 기다리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어시스트 키맨이 정부 신 실세로 격상한 ‘86그룹’이라면, 당내에서는 단연 추미애 대표와 친문(친문재인)그룹이다. 정부 출범 초반부터 불거졌던 추 대표와 임 실장의 갈등이 또다시 발발한다면, 문 대통령에게 최대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자기 정치’에 나섰던 추 대표가 지방선거 국면에서 당·청 갈등의 완충재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할 경우 추 대표와 친문 핵심 간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 평론가는 “결국 어시스트 키맨은 86그룹과 민주당”이라며 “이들이 전면에 나서서 협치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정책이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측근 참모그룹, 민주당의 삼각편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