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워너원 데뷔앨범 발매 기자간담회. 이종현 기자
지난 7일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가히 중견급 아이돌의 대우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11인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팬덤은 가수 이상의 영향력을 자랑한다. ‘국민이 직접 선택하고 투표해 완성한 아이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답게 팬덤의 자부심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내가 직접 투표해 아이돌로 데뷔시켰기 때문에 소속사의 독선적인 결정에 결코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워너원의 팬덤은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너원은 활동이 약 2년으로 한정된 프로젝트 그룹이기 때문이다. 기한 만료 뒤에 각 멤버들이 다시 개인 소속사로 돌아가 활동하게 되므로 워너원 전체도 중요하지만 개인 멤버의 향후 활동 서포트도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는다. 여기에 <프로듀스 101>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에게만 투표해 아이돌로 데뷔시켰다는 이유가 덧붙여져 워너원이라는 하나의 그룹보다 개인 멤버에게 애정이 쏠릴 수밖에 없다.
최근 불거진 ‘센터 논란’도 이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압도적인 투표 수 차이로 당당히 1위에 오른 강다니엘의 팬덤이 가장 먼저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워너원의 타이틀곡 ‘에너제틱’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지난 8월 7일 고척돔 공연에서 강다니엘이 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분량이 적었다는 이유였다.
사진=YMC 엔터테인먼트
강다니엘의 팬덤 측은 “<프로듀스 101>에서 최종 1위로 선택됐다는 것은 센터 자리는 물론, 데뷔곡의 분량도 보장되는 것”이라며 “팬덤이 강다니엘을 선택해 1위 자리에 올렸는데 정작 분량은 다른 멤버들과 비슷하거나 도리어 적어 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팬덤 측은 단순히 워너원의 위탁 매니지먼트를 맡은 YMC엔터테인먼트나 CJ E&M에 민원을 넣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강다니엘을 1위로 만든 <프로듀스 101> 대국민투표가 유료였다는 점에서 착안, 투표 결과에 따라 1위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현재 전무하다는 것을 지적해 법적 대응 방안까지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강다니엘 팬덤의 단체 행동을 기존 아이돌 팬덤에서 그랬듯 단순한 개인 팬덤의 불만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애초 워너원은 <프로듀스 101>에서 구축한 멤버들의 이미지와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강다니엘의 팬덤은 프로그램 초반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한 연습생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최종 1위의 자리에 오른 드라마틱한 분위기에 몰입해 있던 시청자이기도 하다. 그것도 드라마의 결말에 직접 참여한 적극적인 시청자다. 그런 터라 워너원에서 분량이 다소 축소된 강다니엘이 조연으로 격하됐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국민이 프로듀스에 참여한 만큼, 이후의 방향에까지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강다니엘 센터 분량 관련 청원.
1년에만 십수 개의 그룹이 데뷔하고 사라지는 현재 아이돌 시장에서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워너원에는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에는 팬덤이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활동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소속사의 일방적인 결정이 이뤄지면 팬덤의 항의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워너원은 소속사와 프로그램 제작사가 애초부터 “국민을 프로듀서로 모신다”라며 대중에게 권력을 분배했다.
여기에 소속사로서는 워너원 활동 종료 후 개인 활동으로 복귀하는 멤버들을 위해 개인 팬덤의 지속적인 서포트가 간절한 상황이다. 단순하게 갑을 관계였던 지난날을 믿고 팬덤을 무시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한 연예전문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최근까지도 팬덤이 보이콧을 하든, 성명서를 내든 소속사에서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잘 없다. 사안이 좀 크다 싶으면 ‘오해가 있었다’라며 대충 해결해주는 척하면서 사건을 덮는 식”이라고 지적하면서 “워너원의 경우는 그룹 자체의 활동만 본다면 모르겠지만 각 멤버의 소속사들이 소속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위해서라도 팬덤 화력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한 쪽의 이야기를 듣고 분량을 늘리거나 무대 동선을 바꾼다면 다른 팬덤에서 다시 항의가 들어올 수 있어 CJ나 YMC 측도 섣불리 대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방안을 내놓더라도 개인 팬덤 전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활동하는 내내 이런 논란에 불만 붙이지 않겠나”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