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가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위상이 약화된 상황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진=박은숙·이종현 기자
이처럼 가깝고도 먼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가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달 사이 두 번 회동했다. 다행히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주열 한은 총재의 만남에서는 과거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 회동 전후로 있었던 불협화음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 리스크나 가계부채 등과 관련해 두 번의 모임 모두에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 역대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의 만남이 엇박자를 봉합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나 회동 뒤 엇박자가 터져 나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2005년 3월 한덕수 전 부총리와 박승 전 총재는 명동 은행회관에서 만난 데 이어 4월에는 저녁 식사자리를 하며 폭탄주를 나눠 마셨다. 한 전 부총리 임명을 축하하고, 경제정책에서 협력을 다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러한 회동은 5개월 만에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버렸다. 9월 박 전 총재는 “현재 세계적인 저물가는 중국이 값싼 공산품을 공급하는데 따른 위장된 저물가”라며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며칠 뒤 한 전 부총리는 “현재 물가가 대단히 안정돼 있으며 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뒤 다른 요소들을 감안해 통화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며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강만수 전 장관과 이성태 전 총재의 갈등도 유명하다. 747(연 7% 성장, 1인당 GDP 4만 달러, 경제 7대 강국) 정책 입안자인 강 전 장관은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지속적으로 넣었다.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이 전 총재는 한은 독립성을 내세워 맞섰다. 강 전 장관과 이 전 총재는 2008년 3월 서울 강남에서 식사를 하며 갈등 가라앉히기에 나섰지만 엇박자는 이 전 총재 임기 내내 계속됐다.
김중수 전 총재와 현오석 전 부총리는 경기고·서울대·펜실베이니아 대학원 직속 선후배 사이였으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현 전 부총리는 취임 직후 경기부양을 위해 한은에 공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했지만 김 전 총재는 이를 거부했다. 김 전 총재가 정치권과 청와대의 압박에 2013년 5월 기준금리를 내리고 한 달 뒤 명동 곰탕집에서 현 부총리와 조찬회동을 했지만 양측의 골을 메워지지 않았다.
이주열 총재는 취임 당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최경환 전 부총리와 유일호 전 부총리의 압박, 세계 경기하락 등으로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인하했다. 이 총재와 최 전 부총리, 유 전 부총리는 몇 차례 식사를 같이 했지만 한은 통화정책과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은 가시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임명 정부가 다르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경제 책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보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전 총재(2006년 4월~2010년 3월)는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됐지만 임기의 절반은 이명박 정부에서 보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김 전 총재(2010년 4월~2014년 3월)는 마지막 1년을 박근혜 정부에서 지내면서 통화 정책을 놓고 많은 갈등을 빚었다.
박근혜 정부 때 자리를 차지한 이주열 총재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김동연 부총리와 아직 갈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김 부총리가 임명된 지 나흘 뒤인 6월 13일 한은에서 만나 경제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에 대한 시중의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두 달이 흐른 8월 16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오찬회동을 갖고 북핵 리스크와 가계부채 관리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청와대 일각에서 제기된 기준금리 인상 주장을 비판하고 한은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이 총재를 엄호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가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위상이 약화된 상황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김 부총리는 증세 문제나 부동산 대책에서 소외되면서 ‘김동연 패싱’이라는 말을 듣고 있고, 이 총재는 임기가 이제 7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