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 음악학교 버클리 음대를 다니다 악기 관련 도구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품질에는 자신 있었는데 마케팅, 경영에는 경험이 없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적인 순간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휴대전화 뒤에 붙이는 작은 고리가 전부였다. 이 고리가 ‘아이링’이다. 아이링은 그의 인생을 바꿔준다.
아이링으로 인생이 바뀐 그는 장진태 억스코리아 대표다. 아이링으로 수천만 대 휴대전화 뒤편을 장악했다. 시판되는 휴대전화에 붙여 사용하는 고리는 대부분 장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억스코리아는 아이링 고리 관련 특허를 전 세계에 출원 중이다.
처음부터 반응이 좋진 않았다. 유통업자를 만나도 퇴짜 맞기 일쑤였다. 초기에는 전시장에 직접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 손가락에 일일이 끼워주면서 설명해 팔았다. 지금은 입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링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팔리고 있다. 8월 21일 장 대표를 가산동 억스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이링을 만든 장진태 억스코리아 대표.
―버클리 음대를 나와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을 창업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2002년도에 미국 버클리 음대 진학을 해서 베이스 기타를 공부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공부하다보니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캐셔나 식당 웨이터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했는데 학비는커녕 생활비 벌기도 벅찼다. ‘어떻게 이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봤다. 아이디어 머리핀 하나만 잘 만들어도 미국에서 대박나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막상 만들려고 하니 미국 제조업은 아시아로 공장을 옮긴 뒤였다. 귀국을 결심했고 험난한 창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악기 연주자가 사용하는 제품을 7가지 정도 개발했다. 물론 사업적으로는 다 실패했다.”
―왜 실패했나.
“제품에는 자신 있었는데 음악, 미술만 하다 보니 사업 경험이 없었다. 실패만 하진 않았다. 2009년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곤 했다. 당시 스마트폰을 보호하는 케이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다. 아이링은 ‘보호가 아니라 아예 안 떨어뜨리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이때 썼던 접착제가 먼저 개발한 악기 제품에도 썼던 제품이다.”
―2009년에 생각한 아이디어가 한참 뒤에 빛을 봤다.
“2012년 악기 관련 제품 사업이 한창 어려워져 열심히 투자자를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생소한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이링’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무척 관심을 보였다. 그는 투자하겠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동업을 진행하는데 투자유치에 필요하다고 디자인과 설계 자료를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의심스러워 혹시 문제가 생기면 권리 주장을 위해 넘기기 전에 디자인 출원을 했다. 얼마 뒤 내가 보낸 설계 도면을 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특허 낸 사실을 알았다. 투자는 못 받고 특허만 뺏길 위기에 처했다. 억스코리아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다.”
―어떻게 헤쳐나갔나.
“그 이후 제품을 개발은 했는데 돈도 없고 너무나 어려웠다. 그때 마침 좋은 투자자를 만나 시드머니를 엔젤 투자 받았다. 그 돈으로 샘플, 금형을 만들고 2013년 억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아이링을 제대로 론칭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그쪽이 특허를, 억스가 디자인 출원을 보유했다. 당시 초기의 설계는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억스코리아 설립 이후 최초의 설계를 과감히 버리고 수차례의 설계변경 끝에 현재의 아이링의 구조를 개발했다. 다른 유사제품들은 아이링의 특허를 피해 초기의 설계대로 만들다보니 금방 헐거워진다. 전화위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억스라는 뜻은 무엇인가.
“차 오디오 보면 AUX라는 단어가 있다. 그게 영어의 Auxiliary라는 단어의 줄임말인데 서브, 보조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개발하는 제품들이 대부분 메인 제품이 아니고 액세서리 개념이다. 우리의 삶을 돕는 주변기기라는 뜻으로 그 이름으로 정했다. 또 아마존이 ‘A to Z’ 모든 걸 판다는 의미인데 억스는 ‘A to X’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새로운 무엇이 계속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실패를 맛 본 상태에서 다시 창업하는 데 반대는 없었나.
“귀국 후 오랫동안 이어오던 사업이 보기 좋게 실패하면서 어려움도 많았고 빚도 많이 졌다. 그럼에도 가족이나 지인들이 새로운 일에 반대보다는 격려를 많이 해줬다. 특히 가족의 도움이 컸다. 제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사업 초기에 손이 달릴 때 온 가족이 같이 밤새 조립하고 검수하기도 했다.”
아이링은 출시 초기 싸늘한 반응을 맛봐야 했다. 아이폰7에 붙인 아이링의 모습.
―아이링이 시장에 나왔을 때 반응은 어땠나.
“초기 시장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유통업자를 만나도 퇴짜 맞기 일쑤였다. 팔 곳이 없어 IT제품 전시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일일이 끼워주면서 시장에서 양말 팔듯이 팔았다. 한두 해 지나니 작년에 사갔던 사람이 전시회에 다시 찾아와서 선물용으로 10개, 20개씩 사가더라. 결국 제품이 좋으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게 된다.”
“또 다른 판로로 아이링을 B2B 프로모션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억스코리아는 스타트업이서 소비자를 상대로 마케팅하거나 제품을 홍보할 여력이 부족했다. 그때 기업 홍보 담당자가 마음에 들어 하면 대량으로 납품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링에 무작정 기업 로고를 인쇄해서 기업의 행사, 구매 담당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샘플을 전달하고 홍보하기 시작했고 담당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 수천 개를 한 번에 팔 수 있었다.”
―표절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아이링이 성공한 이후에 많은 업체들이 ‘링’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짝퉁’을 나눠주다가 단속되기도 했다. 구조가 간단해서 특허가 있다고 예상을 못한다. 2016년에는 짝퉁 때문에 미국, 일본 시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매출이 급격하게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말에 미국과 일본, 러시아 등에 특허가 등록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아이링은 대한민국,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러시아, 유럽 등 16개국에 특허 출원 및 등록된 제품이다.
―아이링과 ‘짝퉁’ 제품이 다른 점이 뭔가.
“아이링은 안에 힌지가 특허다. 그 기술로 인해 아이링은 자체 테스트에서 10만 회 왕복을 해도 95~96% 정도 제품이 초기 팽팽함을 유지한다. 다른 제품은 대략 1만 회 정도 왕복하면 60% 이상 제품의 팽팽함이 떨어진다.”
―스타트업이 겪는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가 자주 보도되곤 한다.
“대기업을 상대로 법적인 소송에서 스타트업이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 그쪽은 자본도 있고, 최고의 로펌과 이때를 위해 고용된 사내 변호사가 갖춰져 있다. 변호사를 쓰면 돈 수천만 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다. 인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제품 개발하고 영업 뛰기도 바쁜데 소송까지 신경 쓰기가 어렵다. 지난 2년간 지식재산권 침해로 인한 법무적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느라 내가 제품 개발에 신경을 못 썼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법정 소송에 가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되는 이유다. 스타트업이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약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군다나 소송을 시작하면 3년 넘게 가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하다 스타트업 망하면 그만이고 보상해봐야 돈도 얼마 안 된다. 미국의 경우 의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베끼면 징벌적 배상제로 손해가 얼마든지 수천만 달러 배상 판결이 날 수 있다. 그게 무서워서 베끼느니 돈 주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 계약을 해서 사용한다. 그게 합리적인 사회다.”
―본인이 직접 제품 개발과 연구를 한다.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존의 제품과의 차별화를 가장 많이 고민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 없는 유일한 제품을 만들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잘 만들어도 알릴 방법이 없다. 첫 번째 사업이 망한 이유다. 요즘은 제품 카테고리를 정하고, 기존 경쟁자들과 어떻게 경쟁하고 기능적으로 차별화할지를 더 많이 고민한다. 경쟁자보다 더 나은 가치, 참신한 아이디어, 디자인 차별화 등이 대부분의 고민이다.
―누군가 제조 기반 스타트업에 뛰어든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제조업을 스타트업이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흔히 좋은 제품을 만들면 잘 팔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개발은 전체 스타트업 사업 영역에서 15% 정도다. 나머지는 생산, 관리, 마케팅, 영업, 금융, 인사 등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당장 창업하면 안 된다. 기존 하드웨어 스타트업 필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먼저 경험해야 한다. 만약 그 회사의 영업을 한다면 현실적인 니즈와 시장흐름과 가격구조를 알 수 있다. 시장 환경을 먼저 알고 그 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보통 반대다. 나는 분명히 세모라고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시장에 가보니 네모인 경우가 많다. 가격도 마찬가지다. 만약 해외에 20달러에 팔려면 납품 가격이 3, 4달러여야 한다. 이런 구조를 모르고, 10달러에 만들면 팔수가 없다.”
―스마트폰 주변기기 분야에서는 트렌드가 빠르게 바뀐다. 트렌드를 읽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스타트업은 트렌드를 따라가면 오히려 성공확률이 낮다고 생각한다. 웨어러블, IOT, 인공지능 등 트렌드가 떠오를 때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탄생하고 사라진다. 물론 트렌드를 따라가면 주목받기도, 투자받기도 쉽다. 하지만 작게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트렌드에 덜 민감한 영역을 공략하는 게 전략이다. 아이링은 트렌디한 제품이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스마트폰은 계속 진화하고 모델이 바뀌었지만 아이링은 큰 변화가 없었다. 아직도 거의 모든 스마트폰과 호환되는 단순한 부착방식, 심플하고 무난한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도전하는 케이스 시장은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재고 부담과 판매 부진을 겪는 경우가 많다.”
―억스코리아의 계획은 무엇인가.
“미국과 유럽 시장 개척에 집중하려고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선진 시장을 타깃으로 차근차근 유통망을 넓혀 가고 있다. 앞으로 나올 신제품, 그 제품을 잘 유통할 있는 채널 확보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다.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도 어렵고 경쟁도 치열하지만 한국의 스타트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하드웨어 전문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창업을 돕는 전문기관 혹은 기업)가 돼 후배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돕고 싶다.”
―꿈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요즘 꿈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기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링은 지난 10년 동안 7번의 실패와 도전 끝에 8번째 만든 제품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실패로 끝나지 않고 다시 도전하려는 마음만은 잃지 말자.”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