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 외에도 토크쇼 등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현실 연예인 부부나 커플이 동반 출연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거나, 유부남이나 유부녀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채널을 돌리면 가상 커플보다 실제 커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워너비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 커플이 살아가는 모습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중 심리인 ‘엿보기’를 적절히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사진=JTBC ‘효리네 민박’ 공식 인스타그램
4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한 가수 이효리는 요즘 본업인 앨범 활동보다 예능프로그램으로 더 각광받고 있다. 그와 남편인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출연하는 종합편성채널 JTBC <효리네 민박>은 8월 21일 방송 분량이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1세대 아이돌 출신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효리 부부의 실제 삶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효리네 민박>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 중 하나는 요즘 사회적 트렌드인 ‘욜로(You Only Live Once)’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서울과 연예계를 떠나 제주도에 터를 잡은 이효리는 넓은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에서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알콩달콩 삶을 꾸린다. 게다가 요가에 심취한 그가 자연을 벗삼아 고난도 요가 동작을 시연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전한다.
이효리의 삶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달리 해석했다는 점에서 요즘 신세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수많은 하객을 초대하는 일반적인 결혼식을 마다하고 제주도 집에서 스몰 웨딩을 택했다. 또한 “꼭 아기를 낳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이효리의 소신은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땅에서 출산을 꺼리는 딩크족에게 어필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서도 이효리는 이렇게 결혼하려면 하객들 비행기 티켓 구입 등 돈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스몰 웨딩이라 할 수 없다”는 특유의 너스레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요즘 실제 부부를 등장시킨 예능으로 가장 큰 재미를 보고 있는 방송사는 SBS다. 지난달 새로 문을 연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은 대표적인 부부 관찰 예능이다. 시즌1이 부모와 자식 간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들어보고 해법을 제시했던 반면 시즌2는 부부 관계에 집중한다. 출연진의 구성도 다양하다. 최근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에 발맞춰 배우 추자현-중국인 우효광 부부를 비롯해 정치인인 이재명 성남시장 부부가 출연한다.
특히 추자현-우효광 부부는 요즘 ‘대세 부부’로 불린다. 추자현을 챙기는 애틋한 모습과 서툰 한국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 덕분에 우효광은 ‘우블리’(우효광+러블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두며 당초 8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정규 편성 프로그램으로 승격됐다. 이재명 시장은 대한민국 중년 부부의 표본을 보여주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외식을 하자는 아내와 집밥을 고집하는 남편, 남편의 옷차림이 못마땅한 아내, 재산의 명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부부의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20년 안팎의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추자현 우효광 부부.
이 여세를 몰아 SBS는 8월 초 새 부부 예능 <싱글 와이프>를 선보였다. 개그맨 박명수, 남희석 부부, 가수 김창렬 부부 등이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은 남편보다는 아내에 무게 중심을 둔다. 연예인 남편을 둔 아내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부부 예능과는 차별화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평소 프로그램 속에서는 ‘호통 개그’가 큰소리 뻥뻥 치던 박명수가 아내 한수민 씨 앞에서는 순한 양으로 변하고, 바쁜 스케줄 때문에 아내를 많이 챙기지 못하던 남편들이 스튜디오에 둘러앉아 관찰 카메라에 담긴 아내들의 언행을 지켜보며 놀라는 모습은 큰 웃음을 준다.
연출을 맡은 장석진 PD는 “<싱글 와이프>의 아내들은 연예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아니다”며 “자연스러운 아내들의 모습, 그녀들을 지켜보는 남편들의 이야기 등 상반된 부부의 스토리를 담아내 우리 프로그램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 커플도 여전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은 윤정수-김숙 커플을 내세워 전성기를 맞았고, 최근 하차한 유민상-이수지 커플 역시 인기를 모았다. 절친한 사이인 김영철-송은이 커플 역시 꾸준히 대중의 관심 안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설정이 부여되기 때문에 실제 커플에 비하면 긴장도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실제 부부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 역시 100% 현실 속 모습이라 보기는 어렵다.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상 ‘돈을 버는 구조’를 갖춰야 하고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설정을 비롯해 장소 협찬 및 PPL이 존재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물품과 입는 의상, 찾아가는 장소 등 적잖은 곳이 미리 제작진과 사전 조율된 산물일 수 있다.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대중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TV 안에서 일어나는 일 중 ‘100% 리얼’은 없다고 봐야 한다. 또한 100% 현실을 보여준다면 대중 역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며 “물론 실제 부부가 등장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어느 정도 제작진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