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피프로닐이 검출된 남양주 산란계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계란 5만 3000개를 전량 폐기처분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 농장 49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고 이중 31곳이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가였다. 기준치를 넘지 않았지만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친환경 농가도 37곳에 달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농피아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친환경 인증을 농관원에서 직접 했으나 현재는 민간 인증기관들에게 대부분 이관되어 있다. 대신 농관원은 민간 인증기관들이 규정대로 친환경 인증을 발급하고 관리하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에 친환경인증을 해준 민간기관 13곳 중 9곳에 농관원 퇴직자가 재취업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64곳의 민간 친환경 인증기관이 있는데 이중 농관원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31곳이다. 전관예우로 인해 관리 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적지 않다.
또 양계농가가 인증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증기관은 1년에 한 번 심사를 해주는 대가로 30만∼70만 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인증 심사를 많이 할수록 많은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인증 심사를 까다롭게 하면 닭 사육농가 사이에 소문이 돌아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농피아들이 꼼꼼하게 검사하기보다는 농관원을 비롯한 상급기관 감사를 무마하는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양계농가 관계자는 “규정대로 하면 거의 다 인증이 취소될 것”이라며 “친환경인증을 위해서는 석회가루 같은 것을 써서 진드기를 없애야 하는데 요새는 살충제를 써도 진드기가 잘 안 죽는다. 현실적으로 봐주고 넘어가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도 양주의 한 농장은 8월 15일 농관원 경기지원이 시행한 잔류농약검사에서 비펜트린이 검출됐음에도 무항생제 인증 적합 판정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검사를 시행했던 농관원 경기지원 의정부사무소 측은 “원래는 농약을 쓰면 안 되지만 기준치 이하로 나와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간 인증기관의 부실인증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을 받아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문제가 반복되자 2013년 민간 인증기관 ‘삼진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인증관리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 후 이낙연 국무총리는 “친환경 인증을 둘러싼 모종의 유착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유착까지 용납해선 안 된다”며 농피아 척결을 약속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농관원 직원들이 퇴임 이후 일정 기간 친환경인증 민간 기관에 재취업을 못 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피아로 지목된 농관원 출신 퇴직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농관원 출신 퇴직자는 “농관원 출신이라 봐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람이니까 선배라고 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 상급기관에서 감사를 또 받는다. 그때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난다. 선배라고 봐줄 수가 없다. 우리도 후배들에게 괜히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농관원 출신들을 대거 채용해 농피아로 지목된 한 민간 인증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인증한 농장 중 농약 검출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농관원 출신이 많다고 무작정 농피아로 지목된 것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업체들은 농관원 출신보다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데 젊은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도 급여 수준이 낮아 이런 일 하려는 사람이 없다. 아무나 쓸 수 없고 자격증이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농관원 출신 퇴직자를 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충제 계란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관원 관계자는 “심사를 1년에 한 번만 받기 때문에 심사가 끝난 후 살충제를 쓰면 알 수가 없다. 이번에 적발된 농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에 살충제를 쓴 농가는 안 걸리고 최근에 살충제를 쓴 농가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인식까지 있다. 밀집식 사육환경에서 살충제를 쓰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미 살충제 계란 문제를 지적했던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양계농민들이 찾아와 “진드기를 잡기 위해 독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잔류농약 허용치를 넘기는지, 안전한지 검사받는 절차가 어렵다”고 민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살충제 문제는 양계 농가 스스로 보기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가 방치했다는 것이다.
전직 농관원 출신 관계자는 “계란의 경우 (축산물이기 때문에) 살충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었고 항생제를 얼마나 썼느냐에 중점을 뒀다. 그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앞으로 양계 농가가 인증기관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장관께서 농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현재 부처 차원에서 농피아 사례를 수집해놓은 것은 없다. 살충제 계란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