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감독 장훈·제작 더 램프)는 1980년 5월 서울에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간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눈에 비친 ‘5월 광주’를 그린 영화다. 실제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온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 분)의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8월 2일 개봉해 상영 19일 만인 20일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여느 1000만 영화보다 빠른 속도다. 개봉하고 하루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저력을 보이면서 관객몰이에 성공한 결과다. 같은 시기 맞붙은 220억 대작 <군함도>도 결과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군함도>가 스크린 독과점 등 여러 논란에 휘말리는 과정에서 상대적인 후광효과을 누렸다는 분석도 따른다.
영화 ‘택시운전사’ 홍보 스틸 컷
# 1000만의 힘…다양한 연령대의 선호·정권교체 분위기 영향
<택시운전사>의 흥행은 관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여름에,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로 승부해 얻은 성과다.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라면 흥행은 더 수월하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10대부터 50~60대까지 어느 연령대가 봐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는 어김없이 1000만 관객 성과를 거뒀다. <암살>, <베테랑>은 물론 송강호의 앞선 영화 <변호인>이 그 맥을 잇는 영화들.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다.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GV 리서치센터가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2일부터 광복절인 15일까지 분석한 관람객 연령대별 분포에 따르면 10대 이하 3.6%, 20대 31.4%, 30대 24.8%, 40대 28.2%, 50대 이상 12.0%로 나타났다. 극장의 주요 관객층으로 꼽히는 20~30대는 물론이고 40대 이상 관객까지 선호도가 골고루 분포돼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도 흥행을 견인한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그동안 <화려한 휴가>, <26년> 등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종종 나왔지만 <택시운전사>는 소시민의 눈으로 보는 당시 상황을 그려내 관객의 몰입을 높였다는 평가다. 영화를 본 관객 사이에서는 5·18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다양한 의견도 오가고 있다.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은 “아직도 그 기억을 현재로 두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 5·18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 혹시라도 누가 될까 영화를 만들면서 큰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많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 뜻 깊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권교체에 따라 형성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향한 관심이 <택시운전사>로 직결됐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5·18의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5월 18일에는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런 분위기로 형성된 관심은 영화 <택시운전사>로 이어졌다.
영화 ‘택시운전사’ 홍보 스틸 컷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관람 영화 역시 <택시운전사>였다. 문 대통령은 13일 영화의 주인공인 고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와 서울의 한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했고 보는 동안 눈물까지 흘려 화제가 됐다.
<택시운전사>의 1000만 돌파는 앞으로 나올 현대사 소재 영화를 향한 기대감까지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김윤석·하정우 주연의 <1987>이다.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루는 영화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그에 맞선 이들의 이야기다. 관객의 신뢰가 높은 배우가 주연으로 나서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다, 100억 원대 제작 규모란 사실에서 <택시운전사>의 분위기를 잇는다.
# 송강호…압도적인 ‘티켓파워’ 증명
<택시운전사>의 흥행은 곧 송강호의 저력을 다시 확인케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영화의 성공 배경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꼽히지만 결정적인 힘은 송강호에 있다는 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송강호는 앞서 <괴물>과 <변호인>으로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운 데 이어 한 편을 추가하면서 주연 배우로는 유일하게 3편이나 ‘1000만 클럽’에 진입시킨 스타로 기록됐다.
동시에 폭넓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탁월한 선구안도 입증했다. 2013년 <설국열차>(935만)로 시작해 <관상>(913만), <변호인>(1137만), <사도>(624만), <밀정>(750만)으로 이어진 흥행불패의 성과를 올해도 잇게 됐다.
사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를 제안 받고 처음엔 거절했다. 역사적 사실이 주는 무게감과 자신이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한 뒤에도 시나리오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제작진에 연락해 결국 출연을 수락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홍보 스틸 컷
영화계 한 관계자는 “제작을 준비하는 웬만한 한국영화 시나리오는 송강호에게 가장 먼저 도착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여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며 “하지만 최근 이어가는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최적화된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은 인정할 만하다”고 밝혔다.
<택시운전사>의 흥행을 이야기할 때 유해진의 공도 간과하기 어렵다.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렇다고 활약까지 저조한 것은 아니다. 유해진은 광주의 택시운전사 역을 맡아, 당대 광주의 정서를 대변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돕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유해진 역시 <택시운전사>의 1000만 돌파로 인해 독보적인 흥행 성적을 내고 있다.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흥행 1, 2위의 영화에 모두 출연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유해진은 올해 초 현빈과 함께 주연한 <공조>로 781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택시운전사>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