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투구(Illegally Pitch)는 투수가 야구 규칙이 금지하는 방법으로 공을 던지거나 부정한 공을 사용해 투구하는 반칙 행위를 말한다. 투구 방법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면 ‘보크’가 선언된다. 투수가 투수판에 중심발을 대지 않고 투구하는 경우, 타자에게 타격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공을 던지는 경우, 그리고 와인드업 포지션이나 세트 포지션 자세가 규칙에 어긋났을 경우가 포함된다.
부정한 공을 사용하는 것 역시 엄격하게 금지된다. 투수가 공의 회전에 인위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정해진 공인구에 이물질을 묻히는 행위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혹여 오해를 살 만한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공인 야구 규칙 8.02 ‘투수 금지사항’에 상세하게 명시돼 있다.
# 야구 규칙에 명시된 투수 금지사항
‘투수 금지사항’ a조 1항은 ‘투수가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의 둥근 원 안에서 공을 던지는 맨손을 입 또는 입술에 대는 행위’다. 침을 묻힌 손으로 공을 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예외가 있다면 날씨가 추울 때다. 추위에 곱은 손을 입김으로 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심판이 경기 전 양 팀 감독의 동의를 얻어 허가한다.
만약 평상시에 이 조항을 어기면 심판은 즉각 투수에게 경고를 하고 공을 교환시킨다. 또 던지려던 다음 공에 대해 무조건 볼을 선언한다. 풀카운트에서 부정 투구를 지적받는다면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투수가 같은 위반 행위를 반복하면 그때마다 공을 교환해야 하고, 추후 KBO 총재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부정투구 사과하는 배영수. 연합뉴스
2항은 ‘공에 이물질을 붙이는 것’, 3항은 ‘공, 손 또는 글러브에 침을 바르는 것’, 4항은 ‘공을 글러브, 몸 또는 유니폼에 문지르는 것’, 5항은 ‘어떤 방법으로든 공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또 6항에는 ‘이른바 샤인볼(Shine Ball), 스핏볼(Spit Ball), 머드볼(Mud Ball), 에머리볼(Emery Ball)을 던지는 것’도 금지사항으로 적시했다.
6항에 나열된 샤인볼, 스핏볼, 머드볼, 에머리볼은 모두 투수의 ‘꼼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인볼은 투수가 글러브나 유니폼에 야구공을 문질러 공의 표면을 미끄럽게 만든 뒤 던지는 공을 말한다. 머드볼은 말 그대로 진흙을 묻힌 공, 에머리볼은 투수가 샌드페이퍼로 표면을 문질러 까칠까칠하게 만든 공이다. 가장 유명한 스핏볼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손가락에 침이나 바셀린처럼 미끌거리는 점액질을 발라 공을 꽉 움켜쥔 뒤 던지는 투구를 말한다. ‘침을 뱉는다’는 의미의 ‘스핏’에서 유래됐다.
이 금지조항들은 모두 투수가 자신의 능력 이외의 요소를 투구에 개입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유가 있다. 일례로 스핏볼은 직구와 똑같은 그립으로 던지면서도 점액질로 인해 공에 회전이 더 잘 걸려 궤적에 효과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에 예상치 못한 회전이 생기면서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구처럼 날아오다가 마지막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기 때문에 타자에게 큰 혼란을 준다. 투수가 맨손을 입가에 댈 수 없도록 한 첫 번째 금지사항 자체가 스핏볼을 막기 위한 예방 장치다. 공에 입김을 쏘이는 것이 금지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공의 표면은 오직 맨손으로만 문지를 수 있고, 그 외에 다른 물체를 사용하면 반칙 투구가 된다는 얘기다.
투수가 2항부터 6항까지 가운데 하나를 위반하면 심판은 투구에 대해 볼을 선고한 뒤 투수에게 경고 조치를 한다. 이어 그 투수가 부정 투구를 했다는 사실을 다른 선수들과 관중에게 장내 방송으로 설명해야 한다. 또 한 투수가 같은 경기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 즉각 퇴장시킨다.
이외에도 투수 금지사항 b조는 ‘투수가 이물질을 신체에 붙이거나 지니고 있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2005년 여름 벌어진 두산 박명환의 ‘양배추 사건’도 이 규정과 관련이 있다. 박명환은 모자 속에 양배추 잎을 넣고 마운드에 오른 게 드러나 논란이 됐다. 투구 도중 모자가 벗겨져 양배추가 떨어진 것. 갑상선 기능 항진증 탓에 유독 더위에 약했던 박명환이 머리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택했던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아무런 추가 조치 없이 해프닝으로 웃어 넘겼다. 그러나 KBO는 다음 날 규칙위원회를 열고 “경기력 향상과 관계없는 이물질이라 해도 경기 중 부착은 금지된다. 다음부터는 유사 상황에서 즉각 퇴장 조치를 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그 후로는 부상 부위에 감는 테이핑과 일부 건강 목걸이 정도만 허용되고 있다.
# 배영수 부정투구 논란은 왜 벌어졌나
배영수는 이 많은 금지조항 가운데 a조 4항을 어겼다. 8월 20일 대전 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3회 2사 2루 나경민 타석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로진(송진) 가루를 묻힌 뒤 그 위에 공을 문질렀다. 당시 현장 심판진은 이 동작을 문제 삼지 않았다. 롯데 벤치도 어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투수를 클로즈업한 방송 중계 화면에 이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배영수가 공을 잡은 글러브에 직접 로진을 털어 내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문제가 된 배영수의 부정투구 당시 모습. SBS 스포르 중계 화면 캡처.
경기가 끝난 뒤 야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의문이 제기됐다. 롯데팬들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배영수가 4월 27일 롯데전 이대호 타석에서도 와인드업 자세에서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린 뒤 다리나 발목을 흔드는 동작을 했다. 이 역시 부정투구”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조원우 감독이 항의했지만 심판진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백한 증거가 캡처 사진으로 남았다.
이날 대전에는 비가 내렸다. 공이 미끄러워 투수가 투구에 방해를 받기 쉬운 날씨다. 로진은 공을 던질 때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공 표면에 상처를 내거나 이물질을 묻히는 행위와 달리, 공의 움직임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야구규칙에 엄연히 ‘투수는 공을 글러브, 몸 또는 유니폼에 문지르면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또 ‘투수들은 오직 공식 로진 백(송진 주머니)을 사용해서 맨손에 로진을 묻힐 수 있다. 그러나 로진 백으로 공이나 글러브, 유니폼의 일부에 로진을 묻히거나 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내용도 상세히 설명돼 있다.
문제가 공론화됐다. KBO와 해당 경기 심판진은 배영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부정 투구가 맞다”고 인정했다. KBO는 배영수에게 엄중하게 경고했다. 다만 별도의 징계는 불가능했다. 이미 경기 도중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경기 중 벌어진 상황을 KBO가 사후에 판정해 징계하는 규정도 없다.
대신 배영수는 ‘사회적 징계’를 받았다. 그는 프로 16년간 통산 134승을 쌓아 올린 베테랑 투수다. 현역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승리를 올렸다. 삼성의 오른손 에이스로 한 시절을 풍미했고,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이겨 내고 돌아와 재기에 성공했다. 재능과 노력을 마운드에서 모두 보여 줬다. 하지만 부정 투구 사건으로 야구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결국 8월 23일 수원 kt전에 앞서 부정투구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투수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규칙이다. 많이 반성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의도적인 반칙이 아니라 습관적인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18년간 마운드에서 비겁하게 공을 던진 적이 없다. 모든 게 내 잘못이지만, 부정 투구가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답답했다”고 털어 놓았다. 또 “더 얘기하면 핑계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거듭 부탁하면서 “변명을 하고 싶지 않다. 모두 내 잘못이다. 앞으로의 등판에선 불필요한 동작 없이 투구 준비를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배영수의 부정 투구 논란을 바라보는 전문가들 역시 착잡한 심정이다. 베테랑 A 해설위원은 “선수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야구 인생에 상당한 오점을 남기게 됐다. 스스로의 기록을 깎아내리는 행동이었다”며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치지 말라’고 하지 않나. 투수는 ‘실수였다’고 해도 타자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위일 것이다. 앞으로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투수 출신인 B 해설위원 역시 “스포츠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러나 부정 투구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며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스포츠에는 분명히 따라야 할 규칙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한국 야구와 팀에 많이 기여해 온 투수인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돼 안타깝다”고 했다.
물론 현장에서 곧바로 부정 투구 장면을 지적하지 못한 심판진을 향해서도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황 하나가 경기 후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일이 더 커졌다. A 위원은 “선수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심판진이 먼저 컨트롤해 주는 게 옳다. 애매하다고 그냥 넘어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그래야 앞으로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고 서로 더 큰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B 위원 역시 “팬들 사이에서 얘기가 나오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다. 그 전에 경기를 이끌어 가는 심판진이 먼저 발견하고 제지하는 게 당연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이번 일로 투수들에게는 경각심이 생기고 심판진에게는 숙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사포·손톱줄 뒷주머니에 숨겨 망신’ 메이저리그 부정투구 사례 부정 투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왔다. 특히 부정 투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스핏볼’은 메이저리그가 시작되기 전인 1868년부터 존재했다. 당시 투수들은 언더핸드로만 공을 던졌기 때문에 공에 변칙적인 움직임이 생기는 스핏 볼을 대부분 사용하곤 했다. 메이저리그가 출범한 뒤에도 1920년까지는 합법적인 투구였다. 그해 클리블랜드 소속 내야수 레이 채프먼이 뉴욕 양키스 소속 투수 칼 메이슨이 던진 스핏볼에 얼굴을 맞고 사망한 뒤에야 금지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핏볼 전문 투수 17명이 거세게 반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 17명의 투수가 은퇴할 때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1934년 마지막 스핏볼 투수 벌레이 그라임스가 은퇴하면서 스핏볼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공에 이물질을 묻혀 좀 더 효과적인 변화구를 던지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정당하지 못한 공을 몰래 던져야 하는 상황이니 상대 팀과 심판을 속이려는 꼼수도 더 교묘해졌다. 조 니크로는 ‘에머리볼’을 던지다 발각된 선수다. 미네소타 소속이던 1987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전에서 유니폼 하의 뒷주머니에 사포 조각과 손톱을 다듬는 줄을 넣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는 공이 계속 들어오자 심판이 의문을 제기했다. 글러브와 몸을 수색하기 위해 니크로에게 다가갔다. 니크로는 심판의 시선을 피해 사포 조각과 손톱 줄을 그라운드로 몰래 버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 행동까지 적발돼 더 망신을 샀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0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다. 그러나 실질적 징계보다 통산 221승의 명예에 먹칠한 대가가 더 컸다. 양키스 투수 마이클 피네다는 2014년 4월 24일 보스턴전에서 오른쪽 목에 파인 타르를 바른 뒤 공을 던졌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스스로 커리어에 흠집을 낸 선수는 더 있다. 통산 314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게일로드 페리도 끊임없이 스핏볼 의혹을 받았다. 그는 클리블랜드 소속이던 197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13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도 기록한 명투수다. 샌프란시스코는 그의 등번호 3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시애틀 소속이던 8월 23일 보스턴전에서 부정 투구가 적발돼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300승을 넘게 올리고도 명예의 전당 입성 전 두 차례 고배를 마신 이유다. 페리는 늘 이런 논란을 “상대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고, 은퇴 후 바셀린 광고에 출연하는 대담함도 과시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기록을 폄하하는 시선은 존재한다. 이외에 1961년 사이영상을 수상한 뉴욕 양키스 투수 화이티 포드도 부정 투구를 애용했다. 포드는 전담포수인 엘스틴 하워드가 몰래 정강이 보호대에 긁어서 건네 준 공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 중계가 점점 세밀화되면서 부정 투구도 예전에 비해 많이 자취를 감췄다. 가장 최근에 적발된 선수는 2014년 양키스 투수 마이클 피네다였다. 4월 24일 보스턴전에서 오른쪽 목에 파인 타르를 바른 뒤 공을 던졌다. 땀이 많이 흐르는 부위에 이물질을 발라 착시를 일으키려 했다. 이미 4월 11일 등판에서도 같은 의혹을 샀지만, 당시엔 “땀과 흙이 엉겨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변명을 했다. 같은 핑계가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망신을 당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