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다.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을 몇 개쯤은 먹어도 괜찮다”는 발표를 했다가 “그렇다면 문제가 된 계란을 왜 폐기하느냐” “독성 안전 여부는 함부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 와중에 식품 안전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장의 처신은 더욱 논란을 부추겼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미흡한 정부 대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지지율 고공행진 중인 문재인 정부. 국민들 사이에서 “이 정부도 결국 별로 다를 게 없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8월 16일 피프로닐이 검출된 남양주 산란계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계란 5만 3000개를 전량 폐기처분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믿기 힘든 정부 조사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14일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되자 전국 농장의 계란에 대해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모두 살펴서 가려내겠다는 것이었다. 전수조사 결과,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개(친환경 농가 683개·일반농가 556개)의 약 4%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살충제 성분이 나온 농가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이들 농장에서 나온 계란은 전량 회수·폐기됐다고 관계 당국은 설명했다.
김영록 농축식품부 장관은 8월 18일 전수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오늘부터 농장에서 출하되는 모든 계란은 안전성이 확보됐으니 문제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는 이내 부실 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하루 만에 검사항목을 2∼8개 빠뜨린 부실검사 농장 420곳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전수조사 과정에서 말이 많았다. 빠듯한 일정에 맞추느라 원칙대로 무작위 샘플을 가져다 조사하지 않고 농장에서 골라 준비해 둔 계란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닭에 살충제를 뿌린 농장 주인이, 자신의 농장이 아니라 살충제를 쓰지 않은 농가의 계란을 가져다줘도 조사 당국이 이를 알 수 없다는 요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결국 농림축산식품부는 부실조사 논란이 일었던 농장에 대해 보완검사를 했다. 전수조사에서 일부 검사항목이 누락된 농장을 대상으로 다시 검사한 결과 전북의 1개 농장과 충남의 2개 농장의 계란에서 나오면 안 되는 ‘플루페녹수론’이 검출됐다.
# 불안한 소비자들
정부는 살충제 계란에 대해 “먹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표 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전문가 단체와 학계 등이 이에 대해 반론 제기에 나서면서 국민들은 또다시 혼란스러워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관련 부서에는 “안전한데 정부가 나서 계란을 왜 폐기하느냐”고 되묻는 문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식약처는 8월 21일 국내에서 발견된 살충제 계란이 인체에 해를 가할 정도의 독성을 함유한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검출된 살충제 5종 가운데 독성이 가장 강한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이라도 국민 평균 평생 매일 2.6개씩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발견된 계란 중 오염도가 최고인 계란을 먹었을 경우를 가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허용섭취량을 감안해 나온 결과라고 식약처는 덧붙였다. 또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급성독성에 대해서도 위해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곧바로 반박이 쏟아져 나왔다. 의사협회는 식약처 발표 직후인 22일 “식약처 발표대로 살충제 계란이 인체에 심각한 유해를 가할 정도로 독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안심하고 섭취해도 될 상황은 아니다. 더 정확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도 “계란은 매일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1회 섭취나 급성 노출에 의한 독성이 문제가 아니다. 우려되는 건강피해는 만성독성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고려해 소비자의 오염된 계란 노출과 건강영향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성독성 영향을 간과했다’는 식의 반론이 나오자 식약처는 22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평가는 급성뿐 아니라 만성 위해도까지 모두 분석한 것으로 그 결과, 건강에 위해를 미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재반박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시도는 좋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사태 진화에 너무 초조해한다.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가 과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겠지만 외국에서도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만큼 지금은 안전하다는 자료를 내도 국민이 믿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이 우선인데 정부 관계자들은 너무 서둘러 사태를 무마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 자질 의심 주무부처 수장 뭇매
8월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류영진 식약처장 사퇴를 요구한 가운데 여당 의원들도 이 같은 공세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계란 파동 수습 책임자인 류 처장이 공신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은 이날 “어제 이낙연 국무총리는 류 식약처장이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 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까지 업무 파악을 못한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이 질타하자 류 식약처장은 “15일부터 식약처 전 직원이 사태 수습을 위해 충실히 업무 수행을 해왔다. 식약처가 오락가락한다고 하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항변하고 나섰다. 류 식약처장은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가 17일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자신을 질책한 것을 두고 “총리께서 짜증을 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류 처장 답변이 나오자 여야를 막론하고 성토가 쏟아졌다.
정인화 국민의당 의원은 “류 식약처장이 업무 파악이 안 되고 분간을 못해 국민의 엄청난 불신을 받고 있으면서도 답변 태도가 정말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농해수위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식약처장이 총리께서 짜증을 냈다고 했는데, 짜증이 아니라 질책한 것 아니냐”며 “성실하고 정중하게, 신중을 기해서 답변하라”고 경고했다. 류 식약처장은 “죄송하다”면서도 “짜증과 질책은 같은 부분이다. 약간 억울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굽히지 않았다.
업무 역량에 대해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통 단계에서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곳이 몇 군데인가”라는 물음에 류 식약처장이 즉시 대답하지 못하자 “아직도 업무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류 처장은 17일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로부터 식약처의 현안 파악과 향후 준비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상당 시간 머뭇거리며 답하지 못한 바 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이런 질문은 국민이 할 수도 있고 브리핑에서 나올 수도 있는데 제대로 답변 못할 거면 브리핑하지 말라”고 질책했다.
식약처 수장으로서 보인 섣부른 태도 역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류 처장은 10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산 계란에서는 피프로닐이 전혀 검출된 바 없다”고 강조하면서 국내 소비자를 안심시켰지만, 닷새 만에 국내산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일제 잔류 농약 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류 처장 발언은 식약처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60건의 실험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나 식품안전 수장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르게 안전을 강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 고개 숙인 문재인 정부
“계란도 마음 놓고 못 먹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문재인정부가 국민지지도에 환호하는 동안 무대 아래서는 정부 주연의 살충제 계란 참사가 벌어졌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에그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국민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엉터리 조사와 뒷북 대응을 해놓고 이제 와서 ‘문제없으니 먹어도 된다’는 정부는 안이하고 무능하다. 현 정부 들어 제대로 대응 못 한 것을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국민 불안에 야당 공세가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사과했다. 8월 21일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국민께 불안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살충제 계란 파동 1주일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UFG) 첫날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국무회의에서 “계란 파동으로 소비자뿐 아니라 선량한 농업인, 음식업계, 식품 제조업계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파동에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해나가고 정보를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기관 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 있었고 또 발표에도 착오가 있었던 것이 국민의 불안을 더 심화시킨 면이 있다”며 정부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국민 여러분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응급조치 과정에서 일부 부정확한 발표와 혼선이 빚어져 국민 여러분의 우려와 분노를 키웠고 몇 곳 농장에 선의의 피해를 드렸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과드린다. 선의의 피해를 겪으신 농민들께도 사과드린다. 정부의 잘못된 발표로 농가가 입은 손해는 갚아드리겠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