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월 24일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다짐대회에 참석해 홍보대사인 김연아 전 피겨 국가대표 선수로부터 대형 홍보대사 명함을 받고 있다. 사진 청와대제공.
전력그룹사들은 8월 23일 평창 올림픽 조직위와 후원 협약식을 맺었다. 협약식에는 이희범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조환익 한전 사장 및 전력그룹사 사장단 등이 참석했다.
회사별로는 한전이 전체의 절반인 400억 원을 내기로 했고, 한국수력원자력 120억 원,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이 각 50억 원, 한전KPS 15억 원, 한국전력기술·한전원자력연료·한전KDN이 각 5억 원씩 후원하기로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직위는 전력그룹사들의 후원으로 일단 급한 불을 껐다는 평가다.
올림픽 조직위는 지난해부터 공기업들에게 지속적인 후원 요청을 해왔지만 한전 및 전력그룹사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전의 경우 이미 평창 주변 전력설비 사업에 10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한 상태라 추가 지원에 대해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 후원이 조금 부족하다고 하는데 공기업들이 마음을 조금 더 열어주길 바란다”며 공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을 공개 요청한 이후 분위기가 급반전 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문 대통령 요청 이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평창 올림픽 관련 공공기관장 간담회’를 열고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이 총리가 주재한 간담회에는 조환익 한전 사장을 비롯해 박상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 총리와 만남을 가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력그룹사는 총 800억 원 규모의 올림픽 후원을 결정했다.
11개 전력그룹사가 평창 올림픽 지원을 약속했지만 협약식 당일 기준으로 한전과 서부발전을 제외한 나머지 9개 회사들은 지원에 대한 이사회 의결도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협약식에 참여했던 남동발전 관계자는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평창 올림픽 성공 기원 다짐 행사와 협약식이 함께 열렸는데 우리는 성공 기원 다짐 행사에만 참여한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후원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남동발전은 평창 올림픽에 50억 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남동발전 측 관계자는 “사장단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인데 이사회를 거쳐야 한다. 이사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으면 후원을 못할 수도 있고 금액이 조정될 수도 있다. 현재 이사회에 안건을 올려서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역시 5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중부발전 측도 “전력그룹사 사장단 회의에서 지원 규모나 이런 것을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제적으로 큰 행사를 하는 것이니까 내용에 동감을 했지만 지원이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이사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지원이 확정되지도 않은 회사들을 명단에 포함시켜 협약식부터 연 셈이다.
1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한국수력원자력 내부에서는 경영진이 정권 눈치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회사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아무런 대책 없이 결정한 것에 이어 이사회 의결도 없이 올림픽 후원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문제라는 얘기다.
이번 올림픽 후원 결정은 한전이 주도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력사 관계자는 “한전이 창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한전이 행사를 주관했고 후원 금액 조정 등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한전 측 관계자는 “처음에 지원을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다.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의 순수한 기부나 후원이 오해받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공기업은 오히려 기준이 더 엄격하기 때문에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문 대통령 한 마디 때문에 지원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계속 고민을 해오던 과정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며 “보는 관점에 따라 그렇게(대통령 때문에 지원을 결정했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사회 의결을 거쳐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원을 결정하기까지 한전 이사회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사회 회의록은 회의가 열린 날짜에서 한 달 후인 오는 9월 18일 공개된다. 한전 비상임 이사 한 명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후원 결정에 대한 답변은 거부했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는 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이후 기업들이 후원을 꺼려하면서 후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기업 후원금 목표액으로 9400억 원을 책정했지만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모금액은 8900억 원에 그쳤다. 평창 올림픽은 총운영비로 2조 8000억 원을 예상했지만 현재 3000억 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모자란 운영비를 공기업 압박으로 채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