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출판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가진 이회창 전 총재.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이회창 전 총재는 22일 오전 10시 30분쯤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이회창 회고록> 출판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간담회에서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너무 홍보에 치중하는 것 같다. 취임 100일이 됐을 뿐인데 벌써 국정보고를 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권을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특히 현 정권의 말 바꾸기를 구체적으로 꼬집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장기 국가정책인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당장 바꿀 것’처럼 말했다가 ‘검토해보겠다’고 말을 바꿨다. 정부가 말을 자주 바꾸면 신뢰가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한다”고 했다. 말 바꾸기에 대한 이 전 총재의 지적은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또 이어졌다.
회고록에서 이 전 총재는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내에서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주장이 나왔을 때 정 후보를 겨냥해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람과는 단일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TV 토론을 통한 검증과 완전 국민경선 방식을 통해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공식 제안한다’고 발표했다”며 자신의 말을 뒤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정당은 당의 정체성과 정책을 가지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대선 후보를 선정해 국민 앞에 제시한다. 당의 정체성과 기본적인 정책이 서로 다른 두 당의 후보가 오로지 나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기 위해 단일화한다는 것은 국민의 판단기준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한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막장극이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조건 이기기’ 대선 전략을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연합도 ‘막장극’의 일부로 봤다. 그는 DJP연합(김대중·김종필)에 대해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을 다 팽개치고 오직 정권욕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야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DJP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권이 대한민국에 과연 무슨 기여를 했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이른바 진보·좌파 정권이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며 “반세기 만에 진보·좌파 정권을 쥐어본 국민에게 무능함과 무책임함만을 각인시켜줬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으로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에 기여한 것이 없고 정권 차원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 역사적으로 그를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일렀다. 그는 “김대중 후보는 임기를 포기하고 내각제로 개헌할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종필 총재는 속았다”며 김종필 전 총리를 두고 “정치 고수의 신묘하고 현란한 정치기술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마추어인 나의 눈에는 도무지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로 비쳤다”고 썼다.
자연스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정치 9단 3김’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이야기도 나왔다.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총리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동물 같은 정치적 후각을 가졌으면서도 약간의 이상주의자 면모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라며 “애증이 엇갈리는 인연”이라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그는 ”나는 때때로 그와 충돌했고 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 했으며, 여당 대표로 있을 때는 당 총재인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그는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공개적으로 나를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소신 때문에 대립한 것을 배신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이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를 바꾼 경세가(經世家)였다. 이승만 정권이 정립한 자유시장경제의 기초 위에서 근대화, 산업화를 추구했다. 특히 경제발전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화 시대를 열게 했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나라를 건국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낭떠러지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해낸 지도자였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미래를 통찰해 한미 동맹의 울타리를 쌓은 공로는 어떤 이유로도 폄하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의 별명 ‘쓴소리 총리’에 걸맞게 과오도 짚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과 국가방위 업적에도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연임을 위해 무리한 3선 개헌을 시도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반대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의 실정으로 정의는 실종됐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전근대적인 통치 스타일, 특히 말기에 이르러 밀어붙인 유신체제는 개인이 간직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다. 결국 저격당하는 불행한 사태로 생을 마감했고 18년에 걸친 장기집권도 끝나고 말았다”고 적었다.
‘대쪽 판사’와 ‘쓴소리 총리’로 불리는 이회창 전 총재는 1960년 25세에 서울 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임용돼 법관의 길을 걸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대법원 판사를 지낸 뒤 대법원 대법관이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감사원장을 거쳐 1993년 김영삼 정권 때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 세 번 출마했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한편, <이회창 회고록>도 여느 정치인들의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정적들에 대한 비판은 담고 있지만 자신의 행적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