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참석한 한명숙 의원이 정무위는 처음이라며 초선의 마음으로 일하겠다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한 전 총리가 표적 수사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크게 이견이 없다. MB 정부는 친노계 핵심 인사였던 한 전 총리를 타깃으로 했다. 우선 한 전 총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한통운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한신건영과 관련된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가 시작됐다. 한 전 총리가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 경선 비용 명목으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별건 수사”라며 반발했다. 우상호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아무리 재판결과에 자신이 없다 해도 이렇게 무리한 수사를 감행할 수 있느냐. 무죄가 나오더라도 선거 기간 내내 정치자금 관련 수사를 진행해서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한 전 총리는 한신건영 사건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 조사에서 9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던 한만호 전 대표가 재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준 적 없다. 한 전 총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며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 주장은 믿기 어렵지만, 9억 원을 받았다는 직접적 증거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뿐인 상황에서 진술의 일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1심 법정에서 검찰의 진술을 전면 번복했더라도,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 추징금 8억 8000만 원을 확정 선고했다.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 원 중 3억 원에 대해선 대법관 13명 전원이 유죄로 인정했다. 나머지 6억 원에 대해선 대법관 8명이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한 전 총리 친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쓴 1억 원짜리 수표를 구속의 결정적 증거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 동생과 한 전 대표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아 동생에게 넘겨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한 전 총리 출소 후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8월 22일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으로 사법 부정의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8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다시는 ‘사법 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사법 기풍을 새롭게 만들었으면 한다”며 수위를 높였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억울한 옥살이에서도 오로지 정권 교체만을 염원한 한명숙 전 총리, 정말 고생 많으셨다. 향후 사법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한때 홈페이지에 한 전 총리 출소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집권 여당이 사법 체계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와는 별개로 범죄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다. 양제상 변호사는 “당 대표가 나서서 마치 한명숙 전 총리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대법원이 마녀사냥 하듯이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평했다.
노영희 변호사 또한 “법조인 출신 여당 대표가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은 부적절한 처사였다. 문제가 있다면 절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대법관들이 판결에 있어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대법관들이 정치화돼서 정치 탄압을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관 13명 전원일치로 유죄를 판단한 데에 대해 여당 지도부가 ‘적폐’ ‘억울’ 등을 운운하며 사법부의 권위와 법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염치없고 부끄러움 없는 후안무치한 태도가 바로 신적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도 원내정책회의 자리에서 “한 전 총리는 유관순 열사도,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민주화 투사도, 독립운동가도 아니다. 한 전 총리는 ‘검은돈’을 받고 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문제는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라는 점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판결 결과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는 적절치 않았다. 민주당 입장에서 사법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 정치적 쟁점으로 몰고 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도 “이번 논란은 ‘실체적 진실’ ‘법리적 논쟁’ ‘정치적 문제’ 세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먼지털이식으로 특정인을 겨냥해 별건 수사를 진행한 건 사실이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충분히 이 문제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리적으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여당도, 야당도 한 부분만 싹둑 잘라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재심 가능성 글쎄…새로운 증거 나와야 정치권에선 한명숙 전 총리의 재심 청구 가능성이 대두된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8월 24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해서 정치적 보복을 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이다. 뇌물수수죄로 기소를 해서 재판을 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됐다. 무죄가 나오니까 갑자기 다른 정치자금 문제를 들고 나와서 2년 징역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심 청구 여부에 대해 “요건이 굉장히 복잡한 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재심을 통해서 언젠가 할 수도 있다. 재심 청구를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들이 있는데, 이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회의적인 시선이 주를 이룬다. 양제상 변호사는 “재심은 힘들 것이다.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재판을 굉장히 오래 했다. 한 전 총리 입장에서도 제출할 건 다 제출하고 나올 증거도 다 나왔다는 말이다. 새로운 사실 관계나 법리 관계를 다툴 게 없어 재심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영희 변호사 또한 “재심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거나 정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 게 없는 상황에서 ‘이건 정치적 보복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심 요건에 맞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