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방영된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배우 송선미의 남편 고 씨의 사망 사건을 다뤘다. 사진=MBC 캡처
먼저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살펴보자. 지난 8월 21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의 회의실 내에서 배우 송선미(43)의 남편이자 설치미술가 고 아무개 씨(45)가 조 아무개 씨(28)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졌다. 고 씨는 장남인 외삼촌 A 씨(72)와 장손인 외사촌에게 대다수 넘어간 외할아버지의 재산 환수 소송에 차녀인 어머니를 도와 참여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사촌의 측근이라고 밝힌 조 씨는 고 씨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해주기로 협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들 가족 간의 소송전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이 당시 A 씨에게 고 씨 외할아버지 재산 가운데 하나인 서울 종로구의 한 단독주택이 이전됐다. 고 씨의 어머니를 포함해 딸들은 지난 3월 법원에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딸들의 손을 들어줬다.
조 씨는 소송을 진행 중이던 고 씨에게 “외사촌의 정보를 제공하면 2억 원을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고 USB에 정보를 저장해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USB를 받은 고 씨가 “소송과는 전혀 관련 없는 쓸모없는 정보”라며 조 씨에게 1000만 원만 건넸다. 이에 화가 나 살인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조 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 씨의 소송을 돕고 있던 법무법인 측의 이야기는 달랐다. 고 씨 측 법무법인 관계자는 “고인과 조 씨는 사건 발생 불과 4일 전인 8월 17일경 처음 만났고, 조 씨가 자신을 ‘외사촌 측의 측근’이라고 밝히면서 만나자고 접근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조 씨와 고 씨의 불과 세 번째 만남에서였고, 이 상황에서 조 씨가 어떤 정보나 자료를 갖고 있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품 제공 약속을 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 법무법인의 주장이다.
더욱이 조 씨는 사건 당일 직접 흉기를 구입한 뒤 고 씨를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고 씨를 살해할 것을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조 씨에 대해 “이전 강력 범죄 경력도 없고 폭력조직 소속도 아니다”라며 청부 살인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다만 조 씨가 고 씨의 외사촌과 실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외사촌 측도, 경찰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조 씨는 고 씨의 외사촌이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인물로, 최근 사이가 틀어지면서 소송 중인 고 씨에게 먼저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송선미 측은 공식입장을 통해 이번 사건이 유산 상속 분쟁과 관련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공식 입장에서 “고인의 외할아버지는 생존해 계시고, 고인은 불법적으로 이전된 외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민형사상 환수 소송에 관하여 외할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소송 수행을 돕고 있었다”라며 “현재 외할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소송 상대방의 명의로 모두 넘어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배경으로 알려진 고 씨의 외할아버지 K 회장은 올해 100세를 맞이한 고령의 노인이다. 재일교포 사업가로 18세 무렵 일본에 건너간 뒤 호텔과 관광 사업에 매진해 거액의 부를 축적했다. 관광 명소로 유명한 일본 교토의 대형 프랜차이즈 호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런 K 회장의 재산 상속과 관련해 이번 국내에서의 사건과 유사한 내용의 투서가 일본에서도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는 K 회장이 1남 2녀를 뒀고, 이 가운데 장남인 A 씨와 장손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면서 상속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에선 K 회장의 자녀가 3남 3녀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차남인 J 씨(59)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의 투서가 일본의 몇몇 중소 언론사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투서의 주요 내용은 “J 씨가 고령의 회장을 속여 회사 운영 자금을 착복하고, 회사 지분 50%를 자신의 앞으로 돌려놨다”는 것이다. 한국 소송 건과 관련해 고 씨 측 법무법인이 “고령의 외할아버지의 의사에 반해 재산이 (장남에게) 불법적으로 이전됐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다.
J 씨는 K 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교토의 대형 프랜차이즈 호텔의 총지배인이자 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호텔 재건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2013년 호텔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면서부터 경영 전반에 공격적으로 나서 현재는 K 회장을 대신해 호텔 전체를 관리·감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 씨와 관련한 투서가 일본 언론사에 공개된 것은 2015년 9~11월 사이의 일이다. <케이텐신문>에 따르면 J 씨는 K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회사 주식의 50% 이상을 취득했다고 한다.
같은 내용이 <교토세이케이>라는 매체에서도 보도됐다. <교토세이케이> 측은 이와 함께 특히 “J 씨가 사장으로 취임 후 대학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 용역업체에 하청을 주고, 이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부정이 많다”라는 점도 지적했다. J 씨가 K 회장의 눈을 피해 이 용역업체 사장과의 접대비 명목으로 매월 600만 엔 이상의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있다고도 폭로했다. J 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호텔 전현직 임직원들 사이에서 기사 내용과 유사한 불만이 많다는 부분은 일본의 취업 관련 사이트 등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매체는 평소 K 회장이 유산 상속과 관련해 “12명(손자 포함)의 자손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케이텐신문>은 “K 회장의 말과 달리 J 씨가 회사 지분의 50%를 손에 넣었다는 것은 그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형제들 간의 골육상쟁이 있지 않나 의심된다”고 언급했다.
J 씨 외에 삼남인 H 씨(54)도 일본 내에서 K 회장을 도와 호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체들은 J 씨와 H 씨 간에도 상속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이런 K 회장 관련 보도는 일본 내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몇몇 중소 언론사에서만 보도됐다.
따라서 K 회장에겐 한국과 일본에 각각 자식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서 유사한 형태의 재산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한국의 K 회장 자녀 간 재산 분쟁에는 또 다른 유사성이 있다. “고령의 회장이 이 같은 분쟁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K 회장은 2013년~2015년경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 시기 K 회장을 곁에서 본 관계자들은 “치매 기가 있어 보였다”라고 전했다.
K 회장의 호를 딴 국내의 한 회관에 K 회장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2015년경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K 회장을 근거리에서 모셨다는 한 관계자는 “고령이시니까 건강이 좋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다. 실제로 기억을 잘 못하시는 등 치매 기가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
K 회장이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중반까지 그를 알고 지냈다는 또 다른 관계자 역시 “2013~2014년경에 뵈었을 때 기력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연세가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었다”라며 그의 ‘건강 이상설’에 힘을 보탰다.
주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K 회장은 자신의 재산 분쟁에 세세하게 관여할 정도로 건강이 좋은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1~2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했던 일정도 축소됐다. 일본에서 K 회장의 차남 J 씨의 부정과 재산 분쟁 의혹이 폭로된 시점도 K 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경영 일선에서 모두 물러난 시점과 일치한다.
다만 이번 사건과 일본 내에서 J 씨 등 형제들 간 상속 문제는 무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숨진 고 씨의 어머니 등 K 회장의 딸들은 장남인 A 씨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했을 뿐, 일본 내 재산에 관여하거나 분쟁을 벌인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관계자는 “올해 6~7월 사이에 K 회장이 한국을 잠깐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그때 큰 따님과 연락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소송과 관련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이번 사건과 소송 등 문제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A 씨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A 씨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A 씨의 장남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고 씨가 살해된 사실도 그날 오후 6시 이후에 알았고 조 씨가 재산권 분쟁과 관련해 고 씨 측을 찾아갔다는 것도 몰랐다”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