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향한 한 중견 법조인의 반응이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약 반세기 만에 대법관 경력이 없는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법조계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기 때문이다.
이 중견 법조인은 “지금 상황에서 김 후보자 지명 같은 파격적인 충격요법도 필요하다고 본다. 법원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관료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고리를 깨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법조계 전반에서는 왜 김 후보자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부산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문 대통령과 딱히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다수설로는 고등학교, 대학교가 일치하는 문 대통령과 가까운 학계 출신 A 인사가 천거했다는 소문도 돈다. 소문만 무성할 뿐 누구하나 배경을 확신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파격’을 넘어 여러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사다.
지난 2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 후보자의 평소 성품은 원만하고 소탈하다는 평이 많다. 김 후보자와 연수원 동기인 B 변호사는 “임용 초기에 자주 만났다. 성품이 훌륭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소탈하고 술도 좋아해서 술 마시러 가자고 자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연수원 동기인 검찰 출신 C 변호사도 “그간의 평가가 좋았다. 정치적이지 않고 순수한 법조인으로 볼 수 있다. 인물 면에서는 무난하다고 본다”고 평했다.
김 후보자에 대한 후한 인물평처럼 국회 문턱도 어렵지 않게 넘을 것으로 시각이 많다. 오랫동안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와는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김이수 후보자, 이유정 후보자와 달리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김 후보자에게 다소 호의적인 분위기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임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를 두고 ‘법원 내의 하나회’라고 비판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대한민국의 진보 성향의 판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점을 들어, 강성 진보 성향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에서 진보나 보수 이미지를 씌우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 법조인 D 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원이 민변과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며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직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진보적인 사람이 꽤 소속돼 있어 외부에 그렇게 비칠 뿐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앞서의 B 변호사는 “공부 잘하고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강성이라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만 보면 진보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진보적인 사람은 판사직을 오래 못한다. 법원에 혁명가가 있을 수 없다. 판사직의 관료적 분위기나 일정한 틀을 견디기 어렵다. 보통 진보적인 판사는 의사표명하다가 쫓겨나기 일쑤다”라며 “법원 판사가 진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는 출세주의자에게 바르게 가자고 할 때 매도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마지막 근무지인 춘천지법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른바 ‘춘천 실험’이다. 김 후보자는 법원장이 의장을 맡는 판사회의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판사 자율에 맡긴 바 있다. 판사 회의에서 기수 구분 없이 토론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김 후보자의 자율성 존중이 ‘판사 블랙리스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 섞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해 관리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리스트를 파일 형태로 관리하고 비밀번호를 걸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지난 6월 전국 판사 1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대법원의 사법 행정권 남용을 두고 토의하며 법원행정처의 외압 의혹을 추가 조사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김 후보자의 성향으로 미뤄 봤을 때 최소한 ‘판사 블랙리스트’ 같은 의혹은 등장할 리 없다는 시각이다.
지난 22일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자신의 SNS에 김 후보자 지명을 긍정적으로 평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한 교수는 “판사가 평생 재판업무에 종사해왔다는 게 무슨 결함인가. 오히려 장점이다. 행정처도 상당부분 탈판사화, 탈엘리트판사화가 필요하다. 사법행정 개혁의 소임에는 더 적임자일 수 있다”며 “우리 스스로 기존의 관행, 체질에 너무 젖어 있다. 미국에는 대법원장을 50대에 임명하여, 30년간 대법원장 하는 경우 허다하다”고 평했다.
물론 기대만 있진 않다. 김 후보자의 연수원 동기는 오히려 대법원장으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이 있었다. 인품이 좋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의문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앞서의 C 변호사는 “마음이 좋은 대법관이 어떨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좋게만 하려다보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본다. 진보,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지해준 세력에도 영향 받거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당부도 있었다. 한 원로 법조인은 “박시환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보수적이라는 안대희 대법관도 훌륭했다. 좌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보, 보수 껍데기를 쓴 엉터리 같은 사람이 많다. 여론이 어떻더라도 법의 원칙을 존중하고 법의 절차적 적법성을 따져 바른 판단을 하면 좋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