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한된 기회와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전의 벽은 높았고, 현실은 냉정했다. 그렇다보니 그들이 더 이상 미국이 아닌 한국 무대로 돌아와 정당한 기회와 대우를 받고 야구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다. 과연 이런 바람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한 김현수. 벤치 멤버로 머물며 대타로 주로 출전하다 보니 타격감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AP/연합뉴스
김현수는 지난 7월 29일(한국시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전격 이적했다. 이적 후 8월 25일 현재 총 75경기에 나서 38개의 안타와 홈런 1개 11타점과 타율 .225를 기록 중이다. 필라델피아에서라도 경기 출전 횟수가 늘어나길 바랐지만 상황은 볼티모어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선발보다는 벤치 멤버로 머물며 경기 후반 대타 출전을 주로 하다 보니 타격감을 이어가기가 어렵기만 하다.
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요즘 방송을 통해 나오는 김현수의 얼굴 표정이 너무 어둡다”면서 “그 표정에 김현수의 생각이 다 담겨 있는 듯했다”고 말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이 끝나는 김현수로선 내년 시즌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 대부분의 여론은 더 이상 마음 고생하지 말고 KBO리그로 복귀해서 즐겁게 야구하길 바라지만 선수의 진로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라 섣불리 조언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시즌이 한 달 이상 남은 터라 선수가 먼저 입장을 정리할 수도 없다.
최근 미국에서 김현수를 만나고 돌아온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 대표는 김현수의 국내 복귀와 관련해 “아직은 계획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에이전트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취 문제는 시즌 끝난 이후에 의논해도 늦지 않다. 선수는 국내 복귀 관련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그건 현재 속해 있는 구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런 얘기는 선수들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거라 측근도 쉽게 꺼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이예랑 대표는 또 다른 소속 선수 중 한 명인 박병호도 김현수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박병호 선수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4년 계약을 맺은 터라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구단에서 어떤 얘기도 없는 상황이고, 선수도 국내 복귀 관련해선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물론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에 대한 불편함과 마음고생은 분명 존재하지만 선수만의 의지로 한국으로 유턴하는 부분이 쉽진 않을 것이다.”
박병호. AP/연합뉴스
“김현수는 분명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이다. 지난해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다. 꾸준히 출전 기회를 보장한다면 자신의 몫을 해내는 선수라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새로운 팀과 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장기 계약은 어려울 수 있다. 연봉도 대폭 낮아질 것이다. 좌타자란 이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 ‘보험용’으로 김현수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또다시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병호는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만약 돌아온다면 넥센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미네소타에서 박병호를 보내줄지, 넥센에서 미네소타와 4년 계약된 박병호의 몸값을 어떻게 보전해줄지 알 수 없다. 즉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송재우 위원은 김현수가 낮은 연봉으로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맺을 경우 또다시 출전 기회 문제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것과 박병호의 복귀는 미네소타와의 계약 문제가 먼저 정리된 후에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 대표는 김현수의 어두운 표정과 관련해선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김현수가 추구하는 야구는 재미있는 야구”라면서 “방송이나 사진으로는 확인되지 않아도 김현수는 현재 생활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황재균의 상황도 그리 좋은 건 아니다. 황재균은 올 시즌 두 차례 메이저리그의 기회를 붙잡았다. 처음으로 콜업 받을 당시 데뷔전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이후 부진을 거듭했고, 한 달도 채 안 돼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이후 주전 3루수 에두아드로 누네즈가 트레이드되면서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갔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6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돌아가야 했다. 오는 9월 확장 로스터 기간에 황재균이 다시 빅리그로 콜업될 수 있을까? 현지에선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동시에 대두되었다. 설령 빅리그로 콜업이 된다 해도 빼어난 실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잔류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송재우 위원은 황재균이 올 시즌 보여준 성적을 거론하며 “가장 기대가 컸고 누구보다 기회를 많이 받았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게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은 황재균의 야구 스타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차례 빅리그로 콜업하는 기회를 선물했다. 두 번째 빅리그 콜업을 받았을 때 뭔가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어야 했다. 짧은 슬럼프에 빠지면서 시범 경기 때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였다. 올시즌 샌프란시스코가 일찌감치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지며 황재균을 시험해볼 만한 기회가 생긴 건데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황재균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문제는 결과물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황재균의 실력에 대해 의문부호를 나타낸다.”
황재균.
그렇다면 이들의 국내 복귀와 관련해서 KBO리그 구단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A 구단 관계자는 “이들이 돌아온다면 FA가 되는 김현수, 황재균 영입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현수와 황재균이 미국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어도 이들은 KBO리그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이슈와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돌아오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팀은 없을 것이다. 특히 김현수는 모든 팀에서 탐낼 만한 공격력과 수비력을 선보인다. 두산 팬들은 김현수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걸 싫어하겠지만 김현수로선 굳이 두산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에서 뛰던 선수들이 돌아온다면 내년 FA 시장이 크게 요동칠 거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B 씨는 황재균이 C 팀에서 관심을 표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아마도 지난 6월 말, 옵트아웃을 의식한 황재균이 접촉했던 KBO리그 팀들 중 C 팀을 떠올린 게 아닌가 싶다. B 씨는 “실제로 C 팀에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우리 팀도 (황재균에) 관심은 있는데 아직은 얘기만 나올 뿐이고 구체적인 방안은 세워두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가 시즌 후 어떤 입장을 취할지 모르지 않나. 선수가 KBO리그로 돌아올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순위인 것 같다.”
황재균의 에이전트인 GSI 이한길 대표는 “아직 어떤 쪽으로도 확정된 게 없다”면서 “시즌 종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으니 선수 거취와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선수는 정작 시즌에만 집중할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황재균이 속한 새크라멘토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는 9월 5일이다. 마이너리그 소속이라 메이저리그보다 한 달가량 빨리 시즌이 마무리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강정호, 무비자 가능한 도미니카 윈터리그 참가할까 그동안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강정호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향인 광주에서 개인 훈련을 이어가던 강정호는 틈틈이 국내의 다양한 지역을 돌며 유소년 야구 선수들을 위해 재능 기부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강정호가 올겨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윈터리그에 참가할 예정이란 기사가 보도된 것. MLB.com의 파이어리츠 담당 기자가 닐 헌팅턴 단장의 말을 인용한 거라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강정호는 현재 음주 운전으로 인한 비자 발급 문제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2015시즌을 앞두고 피츠버그와 4년 계약을 맺은 강정호는 제한 선수 명단에 올라 있고, 그동안 강정호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피츠버그는 도미니카공화국 윈터리그 참가라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우리나라와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돼 있어 무비자 입국 및 90일간 단기체류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로 가는 직항 노선은 없지만 미국 외에 유럽을 경유해 갈 수 있다. 강정호는 재능기부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알면서도 그 행보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정호의 소속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선수가 자성의 시간을 갖고 개인 훈련을 하면서 유소년 야구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찾다가 재능 기부 형식으로 야구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면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 행동이 아닌 자발적인 재능기부였고, 아이들을 만나기까지 선수도 많은 용기를 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다녔던 강정호가 재능 기부 활동을 하면서 한층 밝아졌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윈터리그 참가에 대해선 “선수는 구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선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 |
FA로 풀리는 선수들 누구? 투수보다 타자 쪽이 흥미진진 김현수, 황재균의 국내 복귀설이 나도는 가운데 올 시즌을 마치고 FA로 풀리는 선수들이 누구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2018시즌 FA가 되는 선수들을 살펴보니 마운드보다는 타격 쪽에 흥미로운 선수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우선 생애 첫 FA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롯데 손아섭과 두산 민병헌은 가장 관심을 모으는 선수들이다. 두 선수 모두 실력이 입증된 리그 최정상급 타자이고 어느 팀에 가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라 전력면에서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SK 정의윤도 예비 FA 선수 중 한 명이다. 올 시즌에는 생애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 선수들이 유독 많다. 한화 정근우, 이용규, 넥센 채태인, 롯데 강민호, 최준석, NC 이종욱, 손시헌, KIA 김주찬 등이 특히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중 정근우와 이용규의 거취가 가장 주목을 받는 중이다. 강민호는 롯데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이종욱, 손시헌은 김경문 감독의 의사에 따라 이들의 앞날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에는 최형우가 총액 100억 원에 KIA 유니폼을 입었고, 이대호가 친정팀 롯데로 돌아가면서 총액 15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과연 이번에는 최형우, 이대호를 능가할 만한 잭팟이 터지게 될까.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