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현대아산복지재단 이사장이 8월 14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완료했다. 이종현 기자
현대중공업이 사용한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는 현대중공업을 4개 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그 중 하나인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정하는 것이다. A 기업이 B·C·D·E의 4개의 사업분야를 영위하고 있을 경우, 인적분할을 하면 B·C·D·E의 4개 회사로 나눌 수 있다. 이 경우 A 사의 기존 주주들은 A 사 지분율만큼 B·C·D·E 사의 각 지분을 가지게 된다. B·C·D·E의 가치의 합이 A의 가치의 합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때 B 사를 임의로 지주사로 지정할 경우 주주들은 C·D·E 사 주식을 팔고 B 사 주식을 사면 결과적으로 지주사의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A 사를 현대중공업(구), B 사를 현대로보틱스, C 사를 현대중공업(신규), D 사를 현대일렉트릭, E 사를 현대건설기계로 대입하면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된다.
현대중공업(구)은 올해 초 인적분할을 통해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신규)·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의 4개 회사로 분할됐다. 6~8월에는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기업분할 후 현대로보틱스는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해 신주를 발행했다. 발행규모는 기존 주식의 35.26%(이하 보통주 기준)였다. 신주에 대한 납입은 기존 현대중공업(구) 주주들이 가진 현대중공업(신규)·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주식으로 받는 현물출자 방식이었다. 기존 주주들은 현대중공업(신규)·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주식을 굳이 시장에 내다 팔고 지주사인 현대일렉트릭 주식을 살 필요 없이 한 번에 해결하는 셈이다.
이렇게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신규)·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지분을 확보해 지주사 요건(상장사 20%, 비상장사 40%)을 갖췄다.
8월 14일 증자된 신주가 상장하면서 현대중공업(구) 지분 10.15%를 가졌던 정 이사장은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 지분 25.80%를 확보했다.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2배 이상 늘린 것이다. 반면 현대로보틱스 증자 전 정 이사장과 비슷한 9.30% 지분을 가졌던 국민연금의 지분은 늘지 않아, 정 이사장 지분의 절반 미만이 됐다.
현재 국민연금의 현대로보틱스 지분은 8.50%다. 현대로보틱스 주식이 유상증자로 1204만 주에서 1628만 주로 늘어났기 때문에 지분이 희석된 것이다. 유상증자 결정 후 국민연금은 현대로보틱스 주식 약 16만 주를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8.50% 선을 유지했다. 추가 매입을 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6.87%까지 낮아졌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뇌물죄’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토록 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탁한 것이 ‘부정한 청탁’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한 바 있다.
현대로보틱스 유상증자를 통해 정몽준 이사장이 지분을 2배 이상 늘린 반면, 국민연금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오히려 줄었다. 국민연금이 정 이사장의 지분 강화를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이는 이유다. 출처=금융감독원
현대중공업의 경우 국민연금은 그룹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정몽준 이사장의 지배력 강화를 눈감아준 꼴이 됐다. 국민연금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개별기업 지분 10%를 넘지 않도록 한 ‘10% 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개별기업 이슈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현대로보틱스 유상증자는 이사회에서 결의한 것이므로 국민연금이 목소리를 낼 기회는 없었다.
또한 국민연금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 자녀승계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게 됐다. 현대중중공업그룹의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의 최대주주는 정몽준 이사장으로 25.8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상속·증여세를 최대 50% 낸다고 해도 자녀들에게 12.90%의 지분을 물려줄 수 있다.
현재 정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는 현대로보틱스 보통주 97주를 갖고 있어 지분이 거의 없는 상태다. 다른 자녀들은 아예 특수관계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현대차처럼 ‘일감몰아주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정 이사장의 지분이 워낙 많아 승계에는 문제가 없다. 자녀들 지분 총계가 12.90%라고 하더라도 이보다 앞선 단일 주주는 없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10% 이하다.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의결권 행사는 내부 지침이 마련돼 있고 그에 따라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특정 기업의 특별한 케이스에 대한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