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옐로하우스 밤거리 풍경. 최근 노란색 필름으로 유리창을 가려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성노동자 대나무숲’은 성매매 업종 종사자들이 글을 올릴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이다. 당나귀 귀를 지닌 임금님의 비밀을 털어놓는 대나무숲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8월 29일 현재 2087명의 회원들이 성노동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상태다.
‘성노동자 대나무숲’은 올해 초에 생겼다. 대나무숲 운영자는 1월 7일 “알아도 모르는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존재조차 하지 않는 척, 숨겨야 하는 이야기들이 입가에서 눌러가고 내 마음과 몸이 상해갈 때 당신이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라며 대나무숲의 시작을 알렸다.
대나무숲은 회원들의 익명을 철저하게 보장한다. 게시글에 대한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성판매 업계 종사자들이 대나무숲에 털어 놓은 내용들은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대나무숲을 찾고 있는 까닭이다.
‘술’에 대한 고충은 대나무숲 게시판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다. 5월 24일 한 회원은 “일이 끝나면 늘 술에 너무 많이 취했어요. 일을 시작한 뒤로 술이 너무 무서워졌어요. 차라리 노래방을 계속 할 걸 그랬나, 싶다가도 BAR로 옮기면서 터치 수위 낮아진 게 어딘가 싶었어요. 터치랑 돈과 간을 맞교환 한 느낌이었어요”라고 전했다. 업계 특성상 연일 음주를 하면서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괴로움을 토로한 것이다.
6월 5일 한 회원은 “술을 잘 안 마신다고 사장한테 한소리 들었어요. 돈에 영혼을 판 술집여자가 된 기분이네요. 영업은 둘째 치고 술에 조금이라도 취하면 손님이 있든 없든 눈물을 숨기기 바빠요. 악마에 영혼을 판 기분이랄까”라고 밝혔다. 다른 회원도 “낮에 힘든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그러면 ‘오늘도 내가 웃으며 술을 팔 수 있을까’라며 출근을 할지 말지 고민해요. 하지만 그 힘든 일은 돈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기에 어렵게 출근을 해요.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다시 술을 팔아요. 저도 참…이런 제가 신기합니다”고 덧붙였다.
성매매 종사 여성과 남성들 사이에 은밀한(?) 관계를 암시하는 게시물들도 많았다. 6월 22일 한 회원은 “이 사람은 치과의사구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엔 가족과 아들이 그린 아빠 사진이 있어요. 그런데 오빠, 점심시간에 나한테 카톡 좀 그만해. 가족 잘 지내든 말든 알 바는 아닌데 점심엔 나도 귀찮아”라고 밝혔다.
일주일 뒤 다른 회원도 “지금 손님으로 만난 분과 연애를 하는데 그분은 가정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어요. 저보다 스무 살 많은 분인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라고 덧붙였다.
유독 눈길이 가는 게시물들도 있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남성들이었다. 1월 30일 한 남성회원은 “18살 때 처음 생계 때문에 나이트 밤무대에서 일을 했어요. 무대에 올라가 배운 대로 몸을 좀 흔들흔들하면 가끔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역겨운 손이 엉덩이로 와요.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들 누가 알겠어요. 평균 연령 30세 팀에 유일한 20대이니 봉사해야지요. (그런데) 바탕화면에 남편과 갓난아기 사진은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밝혔다.
성매매 종사 여성으로 추정된 일부 회원들은 ‘착한 손님’에 대한 기억을 꺼내기도 했다. 6월 30일 한 회원은 “운이 좋은 날은 상대하기 즐거운 손님을 만나요. 이렇게 인간답게 대해주는 손님을 만나면 꺼놓았던 감수성 스위치가 켜져 복잡한 기분이 들어요. 오늘 손님은 노래방에서 어깨에 팔을 둘러도 되느냐고 내게 묻기까지 했어요. 일을 하면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좋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회원은 “딱 한 번 엄청난 손님을 본 적 있다. 30대 중반 남성이었는데, 친구들 몇 분과 함께 왔고 정말로 ‘술을 마셔주고’, ‘얘기를 나누어주는’ 등의 정석적인 판매만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분은 내가 부탁할 때까지 존댓말을 사용했고, 모든 언행에서 예의를 지켰어요. 흔히 창녀를 ‘연민’하거나 나를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되는 성녀’로 취급하는 손님이 있기 마련인데, 이 손님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어요”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대나무숲에서 ‘착한 손님’에 대한 게시물은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진상 손님’에 대한 게시물이 주를 이루고 있는 까닭이다. 7월 3일 한 회원은 “어제 한 손님이 피임기구 없이 성관계를 요구했어요. ‘서로 좋자고 하는 것인데 피임기구를 사용하면 너도 별로고 나도 별로지 않냐’는 말을 들었어요”라고 밝혔다.
성노동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어 “그 손님에게 시달리고 나서 마지막 테이블에 들어갔는데 젊고 매너 있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손님도 피임기구 착용을 거부했어요. 놀란 마음에 사후피임약값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그 사람은 지금까지 문자도 씹고 전화도 안 받아요”라고 토로했다.
이 게시물의 좋아요 수는 177개, 약 30명의 회원들이 댓글을 달았다. 대나무숲 운영자는 “세상에… 정말 경악하면서 읽었어요.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일하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돼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업계에서는 “피임기구를 둘러싼 인권 침해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집창촌운영자 모임인 한터전국연합의 강현준 대표는 “성구매 남성 대다수가 피임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피임기구 착용을 거절한 남성들에게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이들은 착용을 하고 나서 별로 만족하지 못했다며 돈을 되레 뺏어간다. 돈을 안 주면 ‘안 내놔? 그러면 112에 신고한다’라고 협박하는 게 일상이다”라고 지적했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뒤 약 12년이 지났다. 하지만 대나무숲은 특별법을 틈타 음지 속으로 들어간 성판매 종사자들의 인권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나무숲의 한 회원은 5월 21일 “노래방에서 일을 하는데 젊고 멀끔한 남자들은 마치 밖에서 가면을 쓰고 있다가 참았던 것을 푸는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든,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잖아요. 돈을 내면 어떻게 괴롭혀도 괜찮다는 생각이에요”라고 밝혔다.
다른 회원은 “왜 성노동자는 성희롱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내가 순진한 걸까”라며 고충을 호소했다.
또 다른 회원은 4월 7일 한 유명인사와 얽힌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어제 손님이 같이 오신 일행이 있었어요. 아주 유명하고 대단한 분이라는데 아가씨한테 하는 건 어쩜 그리 진상인지. 세월호 팔찌도 차고 정권교체에 대해 논하셨어요. 진상 손님들에 좌우는 없네요”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범죄 피해를 암시하는 고발성 게시물도 발견할 수 있다. 4월 11일 한 회원은 “한 손님이 억지로 성관계를 시도했어요. 왜 나는 성폭력 피해자로 신고할 수 없는 건지. 너무 서러워서 울었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도 사치라는 생각에 새벽 1시쯤 다른 사무실 찾아서 또 출근했어요”라고 전했다.
강현준 대표는 “대나무숲에 나온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인권이 없다. 2004년 이후에 끊임없이 집회를 하고 헌법소원도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 같다. 우리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