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신임 대표가 8월 29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대표실을 찾아 홍준표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장 구도의 판은 안 대표가 쥐고 있다. 당 대표 출마 당시만 해도 의견은 분분했다. 일각에선 대선에서 패배한 지 86일 만에 당권 도전을 선언한 안 대표가 국민의당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론까지 제기됐다. 5·9 대선 참패와 문준용 씨 제보 조작 게이트 이후 ‘정계 은퇴설’에 휩싸였던 안 대표는 당내 경선에서 결선투표 없이 승리, 사실상 면죄부를 획득했다.
안 대표는 ‘안철수’ 이름 하나로 당위성도 명분도 없던 당내 경선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안철수식 정치를 재개할 수 있는 주춧돌을 쥐게 된 셈이다. 이제는 차기 대권 플랜 가동만이 남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대권의 직행열차인 서울시장 선거전에 탑승할 수 있는 티켓의 디딤돌은 확실히 놓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치적 상상력과 기획력 부재는 여전히 숙제”라고 말했다.
‘안철수 차출론’의 현실화 가능성은 51 대 49다. 출마 가능성이 2%p 높은 이유는 ‘지방선거 소멸론’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 직후 불거진 대선 제보 조작 사건으로 중도층은 물론, 호남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당 소멸론’을 넘어 ‘안철수 정계 은퇴’까지 거론됐다.
이 국면에서 안 대표가 국민의당 대표직에 승선했다. 대선에서 참패한 지 110일 만이다. 이로써 ‘국민의당 소멸론’은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다. 다만 시점만 1년 뒤로 미뤘을 뿐, 내년 6·13 지방선거에서 호남을 비롯해 수도권 등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국민의당 존립 이유는 사실상 소멸한다. ‘정부여당으로의 흡수냐, 각자도생이냐’의 양자택일만 남을 공산이 크다.
안 대표 차출론의 핵심 키워드는 ‘희생’이다. 당 지지도가 5% 안팎인 상황에서 서울시장 출마는 ‘험지 차출’ 즉, 사지 출마다. 내년 초 서울시장 출마 결정 과정에서 안 대표는 ‘혼자 죽고 나머지에 기사회생의 길을 열어주느냐, 혼자 살고 다 죽느냐’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8·27 전당대회 직후 “내년 (지방선거에서) 17개 특별·광역시·도 모든 곳에 후보자를 내고, 물론 당선자도 다 낼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안 대표가 서울시장에서 패하더라도 지난해 4·13 총선 때처럼 전국적 바람을 일으킨다면, 당이 구사일생하는 마지막 찬스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당시 국민의당 정당 득표율은 26.74%로, 민주당(25.54%)보다도 높았다. 1위는 새누리당(33.50%)이었다. 경기권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던 한 당내 인사는 “지역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브랜드’ 하나만으로 득표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 인사도 당시 20%대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안철수 차출론’에 1표를 던지면서 그 이유로 “패해도 남는 선거”라는 점을 꼽았다. 선거에는 통상적으로 3가지 갈래가 있다. 하나는 ‘이기면 최상’인 선거다. 문 대통령이 대권 재수로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게 대표적이다.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비판에도 호랑이 굴로 들어가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정계 은퇴 번복을 둘러싼 논란에도 정계 복귀를 선택, 1997년 대선에서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른 하나는 ‘패해도 최악은 피하는’ 선거다. 가장 가깝게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지난 대선 출마다. 홍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무너진 보수층을 이끌고 출마, 한 자릿수 지지도에서 막판 상승세를 타고 2위까지 올랐다. 한때 문 대통령과 양자구도를 형성했던 안 대표를 꺾고 2위(24.0%)에 오르면서 대선 후 한국당 대표직에 올랐다. 2002년 5%도 채 안 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은 뒤 본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차례로 격파한 것도 패해도 남는 선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악은 ‘패하면 안 되는 선거’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박 시장에게 참패를 당했던 정몽준(MJ) 전 의원은 딱 그 길을 걸었다.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패배 이후 3년째 정치권과 거리를 둔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대세론을 못 지켜낸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도 비슷하다.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의 경우 ‘패해도 최악은 피하는 선거’라는 것이다.
이는 당이 해체론에 처한 상황에서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출마하는 희생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른바 ‘안철수식 장렬전사론’이다. 다만 안 대표는 전당대회 승리 이후 발언을 톤다운했다. 전대 기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던 안 대표는 당 대표직 수락 이후 “출마 얘기를 하면 서울시장에 관심 있는 좋은 인재들이 우리 당에 오겠느냐”라고 즉답을 피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가 서울시장에서 낙선하면, 정세균 국회의장 지역구인 서울 종로에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장렬전사론 뒤 ‘정치 1번지’에서 화려하게 부활, 2년 뒤인 오는 2022년 20대 대선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다. 서울 종로는 한때 박 시장도 고려했던 지역구다.
안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바로 차기 대선후보로 직행하고, 낙선하더라도 국민의당이 20대 총선 정도의 성적만 낸다면 중도층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앞서 안 대표는 8·27 전대에 출마하면서 양극단을 배제하는 ‘극중주의’를 표방한 바 있다. 대표직 수락연설에서도 “실천적 중도개혁정당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만 당 내부에서는 안 대표의 서울 대첩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호남 구심점 박지원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표는 8·27 전대 직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안 대표의 부산시장 출마는 대국민 약속”이라며 “안 대표에게 고향이자 성장지이고 당의 불모지인 부산시장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카드로는 구원투수 전문인 ‘손학규 차출론’을 거론했다. 호남을 구심점으로 ‘안철수(부산)·손학규(서울)’ 카드를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호남과 동남풍이 수도권으로 북상하는 이른바 전국정당론의 핵심 전략이다.
이는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에 부정적인 박 전 대표가 중도보수대연합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당 혁신과 인재 영입에 매진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은 ‘안철수 차출론’에 대해 “필요하면 (어디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 측근은 “아직 이른 얘기”라고 일축했다.
안 대표 출마 여부를 예단할 수 없지만, 실제 등판할 경우 서울시장 구도의 판을 바꾸는 허리케인급 변수가 될 전망이다. 3선 도전을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후보군인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박영선 의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도 세부 전략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 대표의 등판은 ‘중도보수통합이냐, 보수대통합이냐, 야권빅텐트냐’의 지방선거 발 정계개편 정중앙을 관통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분석가는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차기 대선으로 가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