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8일 이유정 변호사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정미 전 재판관 퇴임 이후 다섯 달 만에 이뤄지는 재판관 후보자 지명이었다. 이 후보자는 서울 정의여고와 이화여대 법대를 거쳤고, 사법연수원 23기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 후보자가 여성, 노동,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해 온 변호사”라며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의 임무를 잘 수행할 적임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이번 청문회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후보자가 주식 투자를 통해 재산의 3분에 2에 상당하는 15억 원을 축적했다는 것. 이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본인과 남편의 재산 총액인 24억 814만 원 중에 15억 1000여 만 원이 주식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반 주식 투자자들이 잘 모르는 종목에 투자해 10억 원 넘게 벌었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이 후보자는 ‘법조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미래컴퍼니와 내츄럴엔도텍을 매입했고 적기에 매도해 수익을 봤다. 이 두 가지는 주식시장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은 종목들이다. 내츄럴엔도텍은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 후보자가 투자했을 당시인 2013년에는 비상장 주식이었다.
이 후보자가 주식 투자로 수익을 보는 시기도 절묘했다. 또 주가가 떨어질 때 적절하게 많이 매입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부터 반도체 장비·수술 로봇 제조 업체인 미래컴퍼니 주식 8700주를 매입했다. 1년 동안 2억 원에 상당하는 주식을 샀고 지난 4월에 3000주를 주당 6만 2000원에 팔았다. 이때 남긴 차익은 1억 2000만 원이다. 이 후보자가 팔았던 시점은 미래컴퍼니 주가가 2만 3000원에서 6만 2000원으로 급등했을 때였다.
이후 주가가 4만 원대로 떨어졌고 이후 다시 1억 5000만 원을 투자해 3400주를 또 매입했다. 이 주가는 7만 3000원대까지 급등했다. 이 한 종목으로 이 후보자가 번 수익은 5억 원이 넘는다. 주식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주가가 오르고 떨어질 때를 정확하게 판단해 억대의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에 이 후보자는 사퇴 전날인 31일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미래컴퍼니가 좋은 회사이고 전망이 좋으니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유받아 매수했다”고 밝혔다. “미래컴퍼니의 임직원, 대주주 등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전혀 없고, 사건을 수임하거나 자문한 일도 없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7종목인데 이 중 이익이 많은 종목은 미래컴퍼니 한 종목뿐”이라며 “투자했던 ‘알파홀딩스’, ‘모다’ 등 일부 주식은 거래가 정지되거나 50%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보유한 주식 목록.
이 후보자는 내츄럴엔도텍 역시 2013년에 한꺼번에 1만여 주를 2억 2000만 원에 매입했다. 같은해 10월 내츄럴엔도텍은 코스닥에 상장됐고 이후 홈쇼핑을 통해 백수오 열풍이 뜨거워졌다. 2015년 초반까지는 이 후보자가 매입한 가격대에서 거래가 이뤄졌지만 이후 주가가 9만 1200원까지 급등했다. 거의 3.6배의 이익을 본 셈이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이 내츄럴엔도텍 조사에 들어갔고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고공행진하던 주가는 한 달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때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외국계 투자자, 연기금과 같은 큰손도 피해가 막심하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또 내츄럴엔도텍의 상장 폐지 가능성도 계속해서 제기됐다.
증권업계 전문가들도 피해를 많이 봤지만 변호사인 이 후보자는 피해에서 벗어났다. 내츄럴엔도텍 주가가 폭락하기 전 주식을 이미 팔아 5억 원의 수익을 본 것. 당시 내츄럴엔도텍 임직원들도 자사 주가가 폭락할 것을 미리 알고 200억 원의 주식을 시장에 내다판 것이 문제점으로 제기돼 거래소의 조사를 받았다.
미래컴퍼니와 관련해서는 수임을 하거나 자문을 한 일이 없다고 했지만 내츄럴엔도텍은 달랐다. 가짜 백수오 파동 당시 이 후보자가 소속돼 있는 법무법인에서 내츄럴엔도텍의 사건을 수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부자 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4조(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에 따르면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 업무와 관련해 법인 관계자는 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공개중요정보가 매매 등의 거래에 이용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이 후보자와 이 후보자 소속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법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공개중요정보를 알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측에서는 사건을 수임한 것은 2015년이고, 이 후보자가 주식을 매입한 2013년과 시기가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로부터 2013년 내츄럴엔도텍이 상장가능성이 있다고 들어 주식을 샀다고 했고, 사전 수임 전에도 충분히 관련 내부 정보를 전해 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법무법인이 사건을 수임하기 전에 내츄럴엔도텍과의 친분이 이미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후보자 소속 법인이 상장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고 이 후보자가 직접 변론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여지도 크다.
이에 이 후보자는 “2015년 4월 ‘가짜 백수오 파동’이 발생하면서 5월 한 달 동안 소속 법무법인이 가처분 및 본안 사건을 수행하다가 취하했다”면서 “변호사로서 주식투자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내부자 거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사건에서 수임 및 수행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 후보자는 8월 28일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다 보니 주식 투자를 했다”며 “재판관이 되면 당연히 주식을 전부 처분하거나 백지신탁 규정에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8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논의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또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투자가 직업 윤리에 맞는지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주식 투기를 일삼는 사람을 최고 법관인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는 게 과연 국민 법감정에 맞는지 판달해달라”고 말하며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이 후보자는 9월 1일 자진 사퇴했다. “저의 문제가 임명권자와 헌법재판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사퇴 이유를 밝히며 “저의 사퇴로 인해 헌법재판소 다양화라는 과제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불법 주식거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월 1일 진정서가 금감원에 제출돼 법적 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헌법재판관 후보 자리에서 자진 사퇴했음에도 금감원 조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금감원은 이 후보자의 주식거래 관련 진정서가 접수되면 곧바로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금감원은 이 후보자의 주식 매입 과정과 자금 흐름, 내츄럴엔도텍 주식 매입과 매도 과정에서 내부자로부터 미공개정보를 얻었는지 등을 다각도로 조사할 전망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