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5조 3항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금융회사 임원 취임을 금지하고 있다. 1심 형이 최종 확정될 경우 이 부회장은 사면을 받지 않는 한 앞으로 10년간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여러 변수가 생겼다. 사진은 삼성서초사옥. 고성준 기자
하지만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는 유지할 수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31조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되려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조세범 처벌법’ 및 금융과 관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법령을 위반하지 아니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미리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 보유 삼성생명 지분을 증여나 상속을 받으려면 이 조항에 따른 금융위 승인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1심에서 비록 유죄를 받았지만, 이 조항에 해당되는 죄는 없다.
동법 32조는 같은 기준으로 금융회사 최대주주 적격심사를 정기적으로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배인인 이 부회장이 대상이다. 1심 형이 확정되더라도 적격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변수는 있다. 1심에서 이 부회장은 재산해외도피죄가 인정됐다. 재산해외도피죄는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연결된다. 외국환거래법은 금융관계법령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이 부회장의 재판 등을 이유로 삼성증권의 초대형투자은행(IB) 허가신청을 보류했다. 이 부회장 재판이 지배구조에 실질적 영향을 준 첫 사례다.
이 부회장은 경우에 따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률 31조와 32조에 동시에 해당될 수도 있다. 동법 32조 5항은 부적격 판정을 받은 금융회사 최대주주에게 발행주식 총수 10%를 넘는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의결권 19.34% 가운데 9.34%가 제한될 수도 있다.
변수는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회장 신상에 변화가 생길 경우 증여·상속이 이뤄져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단일 최대주주다. 결국 그룹 경영권과 바로 연결되는 지분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이 회장 지분을 증여·상속받지 못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삼성그룹 왕관을 두고 특수관계인 내에 경합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그룹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의 이 부회장 지분율은 17.08%다. 이부진·이서현 사장이 각각 5.47%씩 지분을 보유 중이다. 합치면 10.94%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화재 등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6.01%가 언젠가는 움직여야 한다. 이를 매입할 곳은 외부이거나 총수 일가뿐이다.
8.97%, 5.57%를 보유 중인 KCC와 국민연금의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경쟁을 훼손할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과도한 기업에 규모 축소를 강제하는 기업분할 명령제를 검토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참여정부 당시 삼성전자를 가전, 반도체, 핸드폰 3개 회사로 쪼개자는 주장이 있었다”면서 “삼성전자에 경제력 집중이 너무 심해 어떤 형태로든 쪼개기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등기임원 9명 중 7명의 임기가 내년 9월 종료된다. 이부진·서현 사장으로서는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삼성물산 이사회는 발행주식의 18.3%에 달하는 자사주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삼성생명 의결권 19.34%를 행사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한편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임원직도 위태로울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 옥중에서도 등기임원직을 유지했지만 단일 최대주주로서 직접 ㈜SK를 지배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우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등을 거쳐 간접적으로 삼성전자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등기임원 임기는 2019년 10월 27일까지다. 등기임원을 강제로 해임하려면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횡령과 배임죄가 확정될 경우 지분 과반을 가진 외국인 주주들을 중심으로 ‘옥중 등기임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삼성전자 단일 최대주주는 9.65%를 가진 국민연금이다.
최열희 언론인
지주 전환 성공 롯데 갈 길 멀다…신동빈 회장 지분율 늘리기 행보 계속될 듯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유통부문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했다. 일본 롯데의 지배로부터 한국 롯데를 독립시키면서 ‘동빈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장정의 시작이다. 향후 비유통부문 지주사 출범, 호텔롯데 상장과 합병 등의 조치들이 뒤따를 전망이다. 롯데카드 매각도 유력하다. 유통부문 지주사 전환은 주총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찬성률은 롯데제과 86.5%, 롯데쇼핑 82.2%, 롯데칠성음료 88.6%, 롯데푸드 96% 등이다.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롯데제과 4.03%, 롯데쇼핑 6.07%, 롯데칠성 10.54%, 롯데푸드 12.3%에 달하지만 일찌감치 찬성표를 던지면서 승부가 싱거워졌다. 국민연금 없이는 지주 전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저지선인 ‘의결권 3분의 1’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했다. 국민연금의 찬성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7월 말 기준 67개였던 순환출자 고리가 이번 지주 전환으로 18개로 대폭 줄어든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선이다. 또 롯데지주가 보유하게 될 계열사 지분이 호텔롯데보다 많아지면 한국 롯데에 대한 일본계 주주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자연스레 국민연금의 영향력도 높아질 수 있다. 신 회장은 향후 사업회사의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지주회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배정받는 주식 스와프(교환) 과정을 통해 지주회사의 대주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롯데 4개사 분할·합병을 통해 설립되는 롯데지주회사에 대한 그룹 특수관계인의 지분 보유 비중은 49.64%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수관계인 내부를 따져보면 신 회장과 호텔롯데가 양분하는 구도다. 이 상태로는 일본 롯데가 지분율이 90%가 넘는 호텔롯데와 합병해도 신 회장의 지분율은 일본 측에 비해 절대적 열세다. 이 때문에 화학·관광 부문까지 총망라하는 지주사 체제를 구축한 후 호텔롯데와 합치는 방안이 유력하다. 다만 그룹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롯데케미칼은 지분 53.25%를 일본 롯데가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화학 부문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롯데쇼핑이 93.78%를 보유 중인 롯데카드 매각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주사 출범으로 롯데지주는 금융계열사 지분을 2년 내에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카드 순자산가치는 2조 2000억 원 수준이다. 남옥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번 1차 분할합병을 통해 설립되는 지주회사가 존속 롯데쇼핑을 완벽하게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향후 추가적인 분할, 합병, 대주주 지분출자 및 지분교환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