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여러 단체 및 개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8월 31일 청와대 분수광장을 찾았다. 지난 정부 때도 분수광장은 방문이 가능한 곳이었지만 청와대 방향으로 걷다보면 행선지와 목적을 묻는 검문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이번에는 경복궁부터 분수광장까지 약 1km를 걷는 동안 경찰 검문을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점이다.
다만 청와대 분수광장에 도착하기 직전 한 차례 경찰 검문을 받았다. 경찰 측은 “원래 검문은 없어졌는데 오늘은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검문을 하게 된 것”이라면서 “기자회견을 하다 갑자기 시위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하도록 사전에 조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분수광장에서는 공무원 노조 합법화를 요구하는 전국공무원노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약 30분간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과 충돌 없이 자진 해산했다.
경찰 측은 “기자회견은 미리 신고를 할 필요가 없어서 대응하기가 힘들다”면서 “각 노조나 시민단체 홈페이지 공지 등을 미리 살펴보고 기자회견 일정을 파악해 대응한다”고 했다. 청와대 앞길 개방 후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시위와 기자회견이 크게 늘어난 것은 맞다”면서도 “특별히 병력을 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경호상 크게 어려운 점도 아직은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국민들과의 소통강화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있다. 청와대 주변 청운효자동 주민들은 지난 7월 연일 열리는 시위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시위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열었다.
주민들은 “시위 소음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주변 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됐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처 카페 관계자는 “시위가 있을 때면 시위 참가자들이 몰려와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에 서울맹학교가 있는데 맹학교 학생들은 소리에 민감해서 여러 차례 항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서울맹학교까지 직접 걸어가 봤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 분수광장과 서울맹학교의 지도상 직선거리는 약 533m이다.
맹학교 관계자는 “시위가 있는 날은 학교에서도 소음이 다 들린다. 시각이 차단되어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소리에 민감해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청와대 주변에는 일부 시민들이 인도 위에 돗자리를 깔고 모여앉아 시위를 하고 있었다. 청와대 분수광장에서도 20명가량이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한 달째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한 시민은 “혼자 한 달 내내 한 것은 아니고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야간에도 1인 시위는 가능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위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종교단체의 강제개종교육으로 가정이 파탄되는 피해를 입었다”면서 “피해자들끼리 단체를 구성해 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위 한 달이 지났지만 청와대 측 인사가 찾아오거나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면서도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 아닌가.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분수광장에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보도돼 화제가 됐던 ‘충주맹아원 의문사 사건’ 가족도 진실을 밝혀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 2012년 충주성심맹아원에서 11세 소녀가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맹아원 측은 지병에 의한 급사라고 설명했으나 소녀의 몸에는 폭행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들이 남아있었다. 소녀의 부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써 5년째 싸우고 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이외에도 토지강제수용철폐를 요구하는 시위, 남대서양 침몰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을 끝까지 찾아달라는 시위, 사이비종교를 처벌해달라는 피해자 연대의 시위, 쌍용자동차 폭력진압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 공무원 성과급제 폐기를 요구하는 시위, 장기요양본인부담 상한제 이행을 요구하는 시위, 이석기 의원 석방과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시위 등이 열렸다.
새로운 시민들이 1인 시위를 시작하자 사복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찰이 다가가 무언가를 묻고 수첩에 적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사유를 적어 청와대에 전달한다고 했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면 최소한 청와대 측에 그 내용은 전달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한 1인 시위자는 “이곳에서 시위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 안했다”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와대를 찾았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