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춘 경험을 책으로 펴낸 론의 10대 시절. | ||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이 책은 어느 태국 매춘 여성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론(26)이라는 이름의 매춘 여성이 어린 나이에 홍등가로 오게 된 사연과 함께 섹스 관광이 성행하는 태국의 가난한 소녀들을 옭아매는 매춘의 굴레에 대해 씁쓸하게 말하고 있다.
정확히 13년 전, 불과 열세 살이었던 론은 한 스위스 남자한테 순결을 잃었다. 당시 자신의 이름을 ‘한스’라고 소개했던 아저씨는 언뜻 보기에도 쉰 살은 족히 넘어 보였다.
키 145㎝인 자신보다 무려 50㎝는 더 커 보였던 거구의 서양 아저씨를 처음 본 순간 론은 겁에 질렸다. 하지만 무섭게만 보였던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3만 바트(약 75만 원)라는 거금을 손에 쥐어주었다. 가난한 소녀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던 것은 물론이었다.
가령 방콕의 홍등가인 ‘팟퐁’의 섹스클럽에서 한 달 내내 청소해서 버는 돈이 고작 50유로(약 6만 원)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많은 돈이었던 것. 그로부터 몇 년 후 론은 값싸고 빠른 섹스를 제공하는 파타야 시내 한복판의 홍등가에서 천연덕스럽게 매춘을 하는 윤락녀로 살아가고 있었다.
론은 당시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유럽의 10대 소녀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친구들끼리 파티에 가서 피자를 먹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뚱뚱하고 지저분하고 땀냄새와 술냄새 그리고 담배냄새가 뒤범벅된 늙은 아저씨들을 상대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점차 홍등가 생활이 몸에 익은 론은 성도착자인 손님들에게는 당당하게 웃돈을 요구하곤 했다. 변태적인 요구를 할 경우에는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된 그녀는 심지어 고객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해 갔다. 특히 홍등가에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순진한 고객들에게는 동정심을 유발해 돈을 뜯어내곤 했다.
론에게 사랑을 느끼고 구애를 하는 남성들도 부지기수였다. 론은 “지금까지 여러 명의 남자들을 울리고 상처를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저 남자들을 속여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이 재미있을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돈을 벌고자 작정하고 홍등가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딸이라는 이유로 구박을 받아오다 반항심에 가출을 했었는데 그녀를 찾으러 나갔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태국 파타야의 홍등가 모습. | ||
하나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홍등가에서 몸을 파는 것이었다. 공장에서 일을 할 경우 하루종일 뼈빠지게 일을 해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는 결국 돈을 벌겠다는 일념 하에 ‘섹스관광’의 중심지인 방콕을 택했다.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론은 처음 순결을 팔아 번 돈과 그 후 몸을 팔아 번 돈 대부분을 고향에 보냈다.
매춘부로 일하면서 수백 명의 서양 남성들을 만났던 론은 자신을 홍등가에서 구해주겠다는 남자들을 따라 스위스 스웨덴 독일 등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런 꿈은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좌절감과 상실감 끝에 18세 때 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론은 2004년 한 영국인을 만나 마침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지만 행복도 잠시. 다시 이혼을 한 그녀는 현재 홀로 런던에서 지내고 있다. 고달픈 영국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론은 다시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녀는 현재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태국의 어린 소녀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론은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를 어린 소녀들을 돕는 데 기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책에서 “만일 살아 남기 위해 다른 길이 있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내 조국은 나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다른 길들은 모두 가난으로 이어지는 길들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