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빈민가에서 팔려온 아이들이 뉴델리의 허름한 공장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 ||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 중 하나인 비하르주 파트나의 중앙역. 기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무리의 어린 소년들이 보인다.
하지만 열댓 명가량 모여 있는 어린이들의 눈에는 하나 같이 두려움이 서려 있다. 이중 모하메드라는 이름의 소년은 어제 만난 친절하고 재미있는 아저씨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
자신을 ‘사디크’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모하메드와 몇몇 친구들에게 “나를 따라오면 신나고 재미있는 영화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 아저씨는 “이렇게 시골 바닥에서 살 게 아니라 나와 함께 뉴델리로 가서 일을 하자. 하루에 두 시간씩 간단한 일만 하면 사탕과 초콜릿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탕발림으로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사디크’는 곧 아이들 부모의 집을 찾아가서 부모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디크’는 뉴델리에서 돈을 많이 벌면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부모의 손에 약 10유로(약 1만 3000원)를 쥐어 주었다. 이는 가난한 마을의 서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리고 다음날 의기양양하게 ‘사디크’를 따라 나선 한 무리의 아이들은 고향을 떠나 자동차로 여섯 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트나로 향했다.
하지만 설렘과 기쁨도 잠시. 중앙역에 도착한 아이들은 곧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앞날을 책임져 주겠다던 ‘사디크’가 갑자기 다른 낯선 아저씨에게 자신들을 팔아 넘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디크’ 아저씨가 떠나자 이때부터 아이들의 공포는 시작되었다. ‘라케쉬’라고 자신을 소개한 험상궂은 아저씨는 아이들의 질문에 일절 대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말을 거는 아이들을 칼로 위협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지, 또 가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기차에 실린 채 뉴델리로 떠났다.
이날 모하메드가 탄 밤기차 안에는 80명가량의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모하메드와 마찬가지로 공장으로 팔려가는 신세였다.
기차 안에서 만난 시칸다(14)는 이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이었다. 아홉 살 때부터 이미 여러 차례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왔던 소년은 다음과 같은 자신의 처참한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하루는 일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랬더니 공장 감시인이 와서 망치로 때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게 두들겨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시칸다의 양팔에는 그때 생긴 흉터 자국들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오른팔은 굽은 채로 펴지지 않고 있다.
▲ 위 옷이 바로 아이들이 일일이 수놓은 200개의 장식이 달린 ‘에스프리’ 민소매톱. | ||
이렇게 팔려간 아이들이 도착하는 곳은 대부분 빈민가에 위치한 허름한 수공업 공장. 딱히 공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방 몇 칸이 전부지만 이곳의 작업량은 웬만한 의류 공장 못지 않을 정도다.
열두 명가량의 아이들이 낡고 허름한 방에 앉아 하루종일 하는 일은 바느질이나 수를 놓는 작업이 전부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4시간씩 일을 하는 것은 기본이며, 일이 밀릴 때에는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한다.
4개월 전부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소아입(11)은 마침 ‘에스프리’의 톱에 쓰일 진주와 비즈 장식을 수놓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해야 할 1000벌 정도의 옷들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한 벌당 약 200개의 장식을 수놓아야 하며, 기계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이 옷의 경우 정확히 전세계적으로 2만 8597장이 생산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곧 소아입과 같은 아이들이 2만 8957번 바느질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노동을 하는 아이들이 받는 돈은 얼마나 될까. 소아입은 “여태껏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장 감시인의 말에 따르면 아직 일을 배우는 견습공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데려오면서 부모에게 지불했던 돈을 되갚아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공장의 감독을 맡고 있는 구프타는 이곳의 작업환경은 모두 정상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역시 모두 자발적으로 와서 일을 하는 아이들이며, 다들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매끼 콩죽과 쌀밥을 먹이고 있으며,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카일라쉬(12)의 말은 달랐다. “일이 너무 고달프다”고 울먹인 소년은 “한번은 일을 하다가 잠이 들었더니 구프타 아저씨가 옆에 앉은 다른 아이에게 나를 때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침도 뱉도록 시켰다”고 말하면서 펑펑 울었다.
인도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노동착취가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 때문이다. 성인 노동자의 무려 5분의 1 가격에 일을 시킬 수 있는 것. 심지어 한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 노동력은 현재 인도 국민총생산(GNP)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인도의 노동법에도 저촉되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1986년 제정된 ‘아동노동보호법’에 따르면 14세 이하인 어린이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도에서는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5~14세 어린이들의 수가 4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고발된 건수는 고작 4000건 정도며, 그나마 고발된 업체들도 약 4유로(약 5000원)의 벌금만 내면 다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
한편 독일 ‘에스프리’ 측은 “우리도 역시 속았다. 당장 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겠다”며 어린이 노동착취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