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최대 전자제품 상가인 아키하바라의 모습. 지금 이곳에서는 휴대용 게임기에 열중하는 10대 청소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
1. 기본 지키며 변화를 강조하라
일본 제조업계에는 지난해부터 등장한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다. 오랫동안 변함없는 포장과 선전문구로 사랑을 받아온 전통 제품들이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
‘후리카케(밥 위에 뿌려먹는 양념)’ 제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노리타마’가 그 예다. 제품의 내용물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테노리타마’라는 새 브랜드로 출시된 것. 거기에 조미료 봉지 같던 기존의 패키지도 귀여운 병아리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패키지가 후리카케를 별로 먹지 않는 세대인 젊은 여성들과 아이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며 3개월에 100만 개라는 놀라운 매출을 기록했다.
이 제품은 혁신적인 변화가 없어도 새로운 고객층을 공략하면 히트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제품에 이미 익숙한 30~40대 고객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10~20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가 성공을 거둔 것.
이를 위해 기존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신선함을 불어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테노리타마가 택한 방법은 제품의 고유한 이미지인 색상이나 로고 등은 그대로 놔두면서 패키지의 디자인을 젊은 취향에 맞게 바꾼 것이었다.
2. U20 디지털 세대를 잡아라
전자제품의 성지(聖地)인 도쿄 아키하바라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10대 청소년들이 한곳에 모여서 휴대용 게임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휴대용 게임기의 무선 통신 기능을 사용하여 함께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
U20 세대를 상징하는 또다른 현상은 ‘전략(前略)프로필’의 유행.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개인 프로필 사이트인 ‘전략프로필’이 요즘 U20 사이에서 이 전략프로필이 명함처럼 통용되고 있다. 미팅이나 모임 등에서 처음 만난 상대에게 “자세한 자기소개는 ‘전략프로필’에서 확인하세요”라고 하는 식이다. 약 400만 명의 회원이 ‘애용’하는 전략프로필은 기존의 틀에 박힌 프로필이 아니라 좋아하는 향수나 입버릇, 발 사이즈 등 ‘자신만의’ 프로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성 강한 U20 세대에 어필했다.
3. 유리 마케팅을 아시나요
‘도쿄미드타운’이나 오사카의 ‘남바파크스’와 같은 일본의 유명 상업시설을 가보면 평일 오전에도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 있다. 다가가 보면 1층에서 ‘ABC쿠킹스튜디오’라는 요리교실이 진행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 요리교실은 시원한 통유리를 통해 내부가 훤히 보여 행인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었다. 비싼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큰 홍보효과를 낼 수 있다.
‘통유리 요리교실’은 상업시설 측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졌다.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보이는 젊은 여성들의 요리하는 모습이 상업시설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설 측에서도 1층 출입구 근처나 대형슈퍼의 옆자리와 같은 좋은 자리를 요리교실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ABC쿠킹스튜디오는 일본 전역에 60군데 이상의 점포를 지닌 큰 사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3월에 개장한 상업시설 ‘라라포트 요코하마’의 문화교실도 ‘통유리 마케팅’의 성공 사례. 이곳은 고급스러운 취향의 30~40대 여성이 타깃. 통유리로 지나가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현재 일본의 편의점에서 ‘훈와리메진’이라는 쌀과자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통 영세업체의 과자 제품들이 대형 마켓의 브랜드를 단 기획상품으로 팔리는 것과는 달리 훈와리메진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자사 브랜드를 고수하는 마케팅으로 히트를 쳤다. 부드럽고 독특한 맛에다 생소한 브랜드가 주는 고유성과 희소성이 서서히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대박으로 이어진 것. 이 쌀과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독특한 새 제품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얼리어답더’ 심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고객의 성별을 제한함으로서 이미지 차별화에 성공한 제품도 있다. ‘남자의 향기’는 씹으면 몸에서 장미 향기가 나는 껌이다. 제조사인 ‘클라시에푸즈’는 타깃을 남성으로 제한하는 역발상 전략을 택했다. 제품명부터 시작해서 검정색 패키지를 채용하는 등 철저하게 남성만을 공략하는 마케팅으로 기존에는 없던 남성 전용 껌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5. 본능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하라
제품의 기능성이나 효과에 대한 객관적 설명은 일부러 배제한 채 감성만을 자극하는 광고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마케팅이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발매 1개월 만에 1000만 개의 매출을 올린 부엌용 세제 ‘거품의 힘’. 제조사인 ‘LION’은 그때까지 보다 강한 세정력을 지닌 세제를 개발하고 그 기능을 홍보하는데 힘써왔다. 그러나 소비자 조사를 실시한 결과 품질이나 기능성보다는 ‘풍부한 거품’이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무의식적인 구매에 더욱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펌프를 누르면 액체가 아닌 거품이 바로 나오는 세제를 발매하자 곧바로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귀에 들리는 ‘어감’에 주목한 제품도 있다. 클렌징 제품인 ‘화장이 녹는 리퀴드(メイクとろけるリキッド)’다. ‘녹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피부에 자극 없이 부드럽게 화장을 지울 수 있다’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킬 수 있도록 화장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질감을 강조하는 TV 광고를 제작했다. 제조사인 ‘가오’는 “5년이나 들여 개발한 제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감성에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함축적인 제품명을 짓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제품의 성능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소비자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