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주간지 <피플>에 실린 ‘오바마걸’ 에팅거(왼쪽)와 ‘줄리아니걸’ 크리스티나. | ||
이번 2008 미 대선의 화두는 단연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이다. 이중에서도 대박으로 떠오른 사이트는 다름 아닌 세계 최대 UCC 사이트인 ‘유튜브(www.youtube.com)’다.
4000만 건에 달하는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고, 하루 1억 번 이상의 동영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 공룡 사이트의 진가는 지난 7월 23일 치러진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났다. 세계 최초로 유권자들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후보들에게 질문을 하고, 이에 후보들이 답변을 하는 획기적인 토론회가 열렸던 것.
그런 가운데 현재 미국에서는 ‘유튜브 선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으며, 얼마 전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선거 운동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섹시한 몸매와 춤 솜씨를 겸비한 여성들이 등장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뮤비’는 유권자들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현재 온라인 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뮤비 스타는 단연 ‘오바마 걸’이다. 이름 그대로 민주당의 배럭 오바마 의원을 지지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 뮤비는 섹시한 차림새의 ‘오바마 걸’이 오바마를 짝사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뮤비 속에서 핫팬츠를 입고 춤을 추면서 구애를 펼치고 있는 여성은 앰버 리 에팅거(25)라는 이름의 배우 겸 가수. 8월 초 현재 300만 명 이상이 동영상을 클릭했으며, 에팅거는 남성지 <맥심>에 화보를 싣는 등 하루아침에 섹시 스타로 급부상했다.
3분 18초의 이 동영상의 제목은 ‘난 오바마에게 반했어요’다.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면서 에팅거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읊조린다. “당신과 나 사이의 벽을 무너뜨려요. 난 오바마에게 반했어요.” “누구보다 당신을 원해요. 자기야, 2008년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당신은 최고의 대선 후보예요.”
또한 뮤비 속에서 에팅거는 오바마에게 전화를 거는가 하면 그의 사진에 대고 키스를 하거나 ‘오바마’라는 이름이 적힌 팬티를 입은 채 엉덩이를 흔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에 비키니를 입은 모습을 합성해서 보여주면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 진짜 여성은 에팅거가 아니었다. 실제로 노래를 부른 여성은 필라델피아 템플대에 재학 중인 리 카우프만(21)이라는 여대생이었으며, 에팅거는 춤을 추면서 립싱크를 한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오바마 측은 이 동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동영상이 히트를 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오바마 측이었다. 내용이 다소 선정적인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층 유권자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인터넷에 반감을 갖고 있는 기성 세대들의 표를 잃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인지 오바마 측은 이 동영상에 대한 언급은 일절 회피한 채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이처럼 ‘오바마 걸’이 전국구 스타로 급부상하자 속속 아류 스타들도 등장했다. ‘줄리아니 걸’ ‘힐러리 걸’ 등이 대표적인 예.
‘줄리아니 걸’은 ‘토론 08: 오바마 걸 VS 줄리아니 걸’이라는 새로운 동영상을 통해 처음 모습을 선보였다. 뮤비 속에서 ‘줄리아니 걸’은 ‘오바마 걸’에 맞서서 루디 줄리아니 뉴욕 시장을 지지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뮤비 역시 흥겨운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섹시한 몸매와 춤으로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긴 마찬가지다.
‘줄리아니 걸’은 아델리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며, 뮤비에서 “그의 네 번째 부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유혹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에 맞서 이 동영상에서 ‘오바마 걸’인 에팅거는 “우리는 예비선거에서 이길 거야. 그리고 줄리아니를 무찌를거야”라고 노래하는가 하면 “줄리아니 걸, 이제 그만해. 우리는 적어도 육촌과 결혼은 하지 않아”라면서 줄리아니의 첫 번째 결혼을 비꼬았다.
한편 이 동영상에는 데니스 쿠치니치를 지지하는 ‘쿠치니치 걸’도 잠깐 등장하며, 현재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힐러리 걸’의 인기 역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분 44초짜리 ‘hott 4 hill(핫포힐)’동영상에서 ‘힐러리 찬가’를 부르는 여성은 타이린 서던(22)이라는 이름의 모델이다. ‘오바마 걸’이 섹시미를 강조했다면 ‘힐러리 걸’은 건강미에 더 중점을 둔 편이다.
또 국회의사당, 백악관 등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서던은 “난 힐이라는 여자에게 반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어요. 그녀 곁에는 빌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죠”라고 노래한다. 또한 “힐러리, 당신을 믿어요, 당신을 원해요. 힐러리,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노래하거나 “백악관에서는 당신의 하녀가 될 수 있고, 첫 가두행진 때에는 군인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이 동영상은 현재 60만 명이 클릭을 했으며, 제작비는 약 1200달러(약 110만 원)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던은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아마추어 가수 선발 대회에 참가한 바 있는 가수 지망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이 동영상은 단순히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연예계 데뷔를 목적으로 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힐러리에게 있어 유권자들이 마음대로 제작하는 이런 유튜브 동영상이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안티 동영상’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기 때문이다.
‘빅 시스터’라는 제목의 1분 14초짜리 동영상이 그것이었다. 이 동영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독재자 ‘빅 브라더’를 풍자한 것으로 마치 힐러리가 독재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거대한 스크린 속에 비친 힐러리는 멍한 표정의 대중들 앞에서 “나는 죽도록 일하는 애국자들을 원합니다” “팀에 합류하세요”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때 가슴에 오바마를 상징하는 ‘O’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달려 나온 한 여성이 스크린을 향해 망치를 던지자 스크린이 깨지고 이어 자막이 올라온다. “1월 14일 민주당 경선이 시작된다. 왜 2008년이 ‘1984’와 다른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동영상은 제작자가 오바마 후보의 인터넷 사이트를 제작·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논란이 됐다. ‘정체’가 밝혀지자 동영상을 제작한 ‘블루스테이트 디지털’사의 필립 드 벨리스는 “오바마 의원과는 상관 없이 개인적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오바마 측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즉각 해명했다.
이쯤 되면 ‘유튜브 선거’ 혹은 ‘유튜브 정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싶다. 또한 오는 2008 대선에 과연 ‘유튜브’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도 당연한 듯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