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고 원정 응원을 온 팬들에게 인사하는 대표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일요신문] 지구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빠지지 않고 모든 대회에 출전해왔다. 1986년에 태어나 올해 32세가 된 청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없는 월드컵’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는 한국이 못나가는 대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거듭되는 부진에 감독이 교체됐고 경쟁국이 분발하며 탈락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기록. 될성부른 떡잎의 등장
결과적으로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한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에서 2무를 기록하며 조 2위를 기록했다. 3위 시리아와는 승점 단 2점 차이였다. 현재 골득실은 1점으로 같아 최종전에서 시리아가 이란에 승리를 거뒀다면 골득실에서 밀리게 됐을 한국이 3위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살 떨리는 승부였다.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러시아 땅을 밟게 됐다.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다. 연속 진출만으로도 대기록이다. 9번의 월드컵, 36년 이상 월드컵 본선 무대에 꾸준히 나선 나라는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축구 초강대국을 제외하면 없다.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국가다. 아시아, 아프리카, 북중미, 오세아니아 대륙을 통틀어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이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를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전까지 대표팀은 카타르전 2경기에서 5골, 중국전 2경기에서 3골을 허용하며 불안한 수비를 보여왔다.
만 20세의 수비수 김민재는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2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1996년생 수비수 김민재가 희망으로 떠올랐다. 프로무대 신인인 그는 K리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이전부터 대표팀 발탁 여론이 있었지만 감독이 교체되고 나서야 A매치에 데뷔했다.
월드컵 진출의 명운이 걸려있는 큰 경기였지만 긴장하는 모습 없이 자신의 재능을 선보였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소집 당시에는 그의 출장을 반신반의했지만 7일 대표팀 귀국 현장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달라진 위상에 “아직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최종예선 경기 해설을 맡았던 김환 JTBC 해설위원은 김민재에 대해 “기대를 넘어서는 활약”이라며 “중요한 경기에서 당황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우려를 씻어냈다. 수비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클리어링도 좋았고 빌드업에서도 큰 실수가 없었다. 다른 선수와 비교가 될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신태용 감독 평가도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중용될 것이다. 김민재를 중심으로 수비진이 구성될 듯하다”고 내다봤다.
# 이어지는 논란, 답답한 경기력
이번 최종예선 2연전에서는 경기 외적으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란전 이후 주장 김영권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관중 목소리가 커서 선수간 소통이 힘들었다’는 내용의 발언이 옮겨졌다. 본선 진출을 염원하며 3년 만에 서울월드컵 경기장을 꽉 채운 팬들은 실망했다. 사과가 이어졌고 신태용 감독과 대표팀 관계자의 해명이 있었지만 성난 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대표팀의 ‘이슈메이커’ 주장 김영권.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우즈벡전 이후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우즈벡과 무승부를 거둬 승점 15점을 기록하게 됐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테헤란에서 이란과 시리아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후반 추가시간 시리아의 동점골이 들어갔다. 시리아가 한 골만 더 넣으면 한국이 3위로 밀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 직후 선수들과 대표팀 관계자들은 대체로 밝은 표정이었다. 이후에는 선수들이 신 감독을 헹가래 치는 모습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팬들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본선에 진출한 듯 세리머니를 했다”며 대표팀을 질타했다. 경기 외적으로 부정적 이슈가 이어지자 대표팀 정신력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은 신 감독이 “이란-시리아 경기가 종료됐다는 보고를 받고 세리머니가 이어졌다”고 해명하며 일단락됐다.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 날이 밝은 6일 낮(한국 시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의사가 있다’는 소식이 별안간 날아들었다. 축구계가 온통 히딩크 이야기로 들썩였다.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에도 ‘히딩크 감독을 데려와 달라’는 청원이 빗발쳤다.
이처럼 성화를 내는 일부 팬들은 ‘대표팀이 감독이 교체됐음에도 여전히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논리다.
대표팀은 2연전에서 무실점으로 본선 진출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득점 역시 해내지 못했다. 앞선 이란전에서는 시원스런 슈팅조차 보기 힘들었다. 우즈벡을 상대로도 전반전에는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풀리지 않는 공격에 선수 교체로 빠른 변화를 가져가지 못한 부분도 지적 대상이었다.
공격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김환 위원은 대표팀 경기력과 관련해 “반반인 것 같다”며 “짧았던 시간 안에 어쨌든 결과를 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답답한 경기에 대한 팬들의 실망감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갓 두 달을 넘겼다. 선수들을 소집해서 손발을 맞춘 기간은 이란전 전까지 일주일 남짓이었다.
김 위원은 본선무대 성적을 위한 과제로 ‘좋은 스파링 파트너 찾기’를 꼽았다. 그는 “월드컵 본선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집 횟수는 5~6회 정도다”라며 “이 기간을 활용하려면 강팀과 붙어봐야 한다. 축구협회의 행정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위원은 “애매한 팀과 경기를 잡아 어설프게 이기고 기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강팀을 만나서 크게 지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팬들도 대표팀을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7일 오후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10월 10일 튀니지와의 친선경기가 확정됐음을 발표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