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는 포용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인사들이 요직에 포진해 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송재호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 등이 포용국가위원회 출신이다. 박 장관은 취임사에 포용적 복지를 강조하며 포용이란 단어를 7번 언급해 화제가 됐다. 성 교수도 참여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지난 7월 성 교수는 <포용국가>라는 책을 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모두를 위한 국가, 약자를 살리는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성 교수는 한국이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지난 5일 성 교수를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9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성경륭 한림대 교수이자 전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을 만났다. 최준필 기자
―포용국가를 쉽게 설명해 달라.
“포용적 성장은 고용을 늘리고 분배를 확대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줘서 총 수요를 늘리는 성장 방법이다. 이 개념을 국가에 적용한 포용국가는 기존 약탈적 국가모델에서 질적인 변화를 통해 국민들을 포용하고 책임지고 뒷받침해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북유럽 다섯 국가인 노르딕을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책에 썼다. 이 길로 가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있기 전 문화 부흥 운동이 있었고 그 전에 종교개혁이 있었다. 종교개혁이 왜 중요하냐면 그 전에는 세상을 기독교 중심으로 재단하고 과학을 무시하고 상상을 금지해 종교가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구속하고 가뒀다. 종교에서 해방시키니까 문화가 부흥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창의적인 교육을 안 한다. 모든 확정된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을 본다. 과거 중세시대 신앙처럼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인의 경직된 가치관이 있다. 옛날부터 전승된 종교에서 나타나는 샤머니즘이나 기복신앙, 유교적 가치관 이런 생각들이 인간의 의식과 정신을 구속하고 한 쪽 방향으로 편향 되게 얽어맨다. 한국도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갇힌 사고의 감옥을 깨고 포용성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 핵심 조건은 교육이라고 본다. 과학, 기술, 교육, 문화가 핵심이다. 교육 지표 가장 위에 있는 나라들이 노르딕 국가들이다. 핀란드에서는 통섭을 위해 교과목을 없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발표한다. 무엇도 이래라 저래라 하는 법이 없다.
―최근 문재인 정부도 교육제도 변화를 추진하다 학부모들의 반발도 심하다.
“교육 제도가 복잡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건 본질을 건드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본질에 관한 논의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노르딕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세금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로 노르딕으로 가기는 힘들다. 우리나라가 조세부담률이 8~10% 정도 된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경우는 40~50% 정도를 낸다.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먼저 중간인 20% 언저리까지만 가도 엄청난 변화다. 현재에서 2배 정도는 더 부담해야 한다.
―노르딕 모델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나라도 수없이 파업하고 노사분규가 벌어지고 나라가 부도 위험도 겪은 경험이 있는 나라다. 그 나라들이 특이한 점은 죽기 살기로 노사가 싸우고 비정규직에 월급을 적게 주고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나라가 아니다. 노동자도 급여만 많이 달라는 게 아니라 한발짝 양보한다. 이 나라들에선 노사가 협력하고 신뢰하고 최대한 존중한다. 또한 이 나라들의 교육, 글로벌 혁신지수, 창의력 지수 다 세계 최고다. 우연이 아니다. 이 나라들은 포용성, 혁신성, 유연성의 원리를 조합해 오늘날 노르딕을 만들었다. 나라 크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타협과 신뢰로 성공 사례를 만들어서 이 길도 가능하다고 알려야 한다.”
성경륭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준필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 어떻게 봤나.
“속도감 있게 매우 잘했다. 지금 지지율 평균이 70%를 넘는다. 국민들의 반응은 이유가 있다. 지난 보수 정권 10년 동안 국민을 우습게 알고 특정인에게 경도된 국가 운영을 보다 제대로 운영되는 국가를 보기 때문에 좋은 평가가 나온다고 본다.”
―걱정하는 점도 있나.
“이 환호성이 마지막까지 지속될까 고민이 많다. 최저임금제, 비정규직 축소 문제가 나오는데 이건 정부의 지시나 명령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며 정책을 발의할 수는 있다. 정부는 국가 전체 공익의 관점에서 판단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개별 기업 상황은 최저 임금이 1만 원이 아니라 2만 원 줘도 버틸 수 있는 곳이 있다. 반면 1만 원도 힘들 수 있는 곳도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줄이라는 소리는 꽤 많은 기업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업종을 바꾸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 폐업할 수도 있다. AI, 자동화, 로봇을 도입해 인력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은 하이테크 기술 분야의 수요를 약간 늘릴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을 줄이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현재 정부의 압박은 이 과정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촉진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 기술적으로 자동화 발전 수준이 낮고 전환 속도가 더디다면 성공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정책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 할 수도 있다.”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는 건가.
“선의로 행한 정책 결과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두 위원회에는 상호 모순적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정규직을 만들자, 복지를 높인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등등의 혁신은 단지 선포했다고 결과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일련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는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눈을 닦아 봐도 역사 속 시련이나 전략에 대한 고민이 아직 충실하지 못 해 보인다. 모두가 칼을 숨기고 있다가 고용을 줄이거나 자동화할 수 있다. 갑자기 정부가 의지를 보인다고 모든 기업이 정규직 전환으로 비정규직 일체 해소하고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최저 임금을 올리면서 세금 더 내겠나.”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과 고용주들은 결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고용을 줄이고, 자동화로 급격히 전환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려 총 수요를 높이는 조치는 꼭 필요하다.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기술 혁신으로 공급만 늘린다면 물건을 살 사람이 없다. 미국의 대공황은 이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결국 노르딕과 같은 노동자와 고용주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노사관계는 긴장관계지만 적이라고 볼 순 없다. 우리나라 노사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대결만 있었다. 이제는 경영진도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가적인 성과를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노동자가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고 믿는다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있겠나. 지금 같은 위기가 오히려 노사 대화의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망하지 않으려면 대화해야 한다. 먼저 양적인 변화보다 대화로 풀고 합의해서 룰을 정하는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포용국가를 위해 대기업 규제도 필요하지만 예를 들어 유통 회사에서 2주에 한 번씩 쉬는 법안 때문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형마트가 시설이 잘 돼 있고 제품도 많으니까 정부의 적절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규제를 풀면 완전히 무너진다. 재래시장, 소상공인도 혁신 노력을 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시장 소비를 강요할 순 없다. 자발적으로 와서 소비하게 만드는 혁신 노력을 해야 한다. 소비자도 소상공인, 재래시장에서 소비를 해줘야 한다. 이런 시민 교육도 필요하다. 정부 규제 정책, 현지 재래시장의 노력, 시민 교육 등이 맞물려 진행돼야지 하나만 갖고는 어렵다.”
―포용국가위원회에 속했거나 관련 있는 분들이 청와대나 장관 자리를 맡았다. 교수님도 혹시 입각할 일은 없나.
“나는 별로 희망하는 것도 아니고 일이 잘 되도록 의견을 내거나 토론회에 참석할 뿐이다. 각 분야에서 같은 방향을 가진 분들이 많으니까 서로 의견교환을 많이 한다.”
―포용이란 키워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성 교수가 문 대통령과 친분도 있으니 교수님이 여러 인사를 추천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돈다.
“추천한 것은 별로 없다. 이미 잘 활동을 해왔고 눈에 잘 띄는 분들이었다. 적절히 일할 위치에 찾아 간 거다. 특별히 힘도 없는 사람이 추천하겠나.”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이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나.
“두 분은 차이가 많다. 노 전 대통령이 활화산 같은 측면이 있다면 문 대통령은 호수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는 공통점이 많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민주주의 원리를 잘 실천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된다는 생각이 핵심적인 공통점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핵이다. 대북 포용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나는 안보냐, 평화냐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남북관계는 안보평화다. 안보도 중시해야 하고 평화도 중시해야 한다. 안보평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문 대통령은 처음 미국 방문했을 때는 안보와 평화가 균형이 있다가 지금은 안보를 최고 수준으로 하게 됐다.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 핵을 갖고 있지만 시스템에 의해서 관리가 돼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위협이 안 된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 수준은 고도화되어 있지만 국제 협약이나 시스템에 의해서 관리될 수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아주 특별하고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평화 카드를 내려놓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를 가한다면 최고 수준의 평화 카드도 같이 내놓아야 한다.
―북한 때문에 경제 위기도 올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북핵 위협에 맞서 중국의 은행과 기업 등을 제재하는 법안)을 도입하면 지금도 좋지 않은 중국과의 관계가 끝난다. 미국이나 일본에 수출하는 양보다 중국 수출이 더 많다. 사드배치 때문에 현대기아차가 죽 쑤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도입하는 순간 최근 무역 보복보다 훨씬 큰 제재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 장담 못한다.”
―대북 압박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가 지금 북한을 위협할 수 있겠나. 무슨 압박을 더 하나. 실효성이 없다. 안보 태세도 최고로 올려야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평화 카드를 꺼내야 된다. 외교에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을 특사로 보내고 UN을 움직여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평화 전략을 수립해야 된다. 지금은 제재나 안보 대결, 압박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에 획기적인 평화 전략이 나와야 될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포용국가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
“잠시 하고 나왔다. 문제 제기하고, 정책 제안하고 교육 사업도 했다.”
―공약에 반영이 많이 됐나.
“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라는 말은 안 쓰지만 다 포용적인 정책을 하고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를 포용정부라고 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길 희망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