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제자 린치 사망 사건 주도자 도키쓰카제 | ||
도저히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지난 6월 26일 17세의 어린 스모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사망한 선수의 이름은 사이토 다카시로 스모계에 입문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신입 선수였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전통 있는 스모 도장의 하나인 ‘도키쓰카제베야’로 이곳의 책임자는 ‘도키쓰카제 오야가타’다. ‘오야가타(親方)’는 도장의 책임자이자 스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25일 밤 사이토의 두 번째 탈출 시도가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선배들이 무섭다. 스모를 그만두고 싶으니 마중을 나와 달라”고 말했지만 곧 그를 찾으러 나온 선배들에게 붙잡혀 도로 끌려갔다. 그리고 곧 무시무시한 폭행이 이어졌다.
오야가타는 사이토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몇 번이고 내리쳤다.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의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지만 오야가타는 쓰러진 사이토의 얼굴을 발로 짓밟고 욕설을 퍼부으며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를 폭행하도록 지시했다. 사이토는 숙소 뒤로 끌려간 후 30분 이상 금속배트와 각목으로 폭행을 당했다.
다음날에는 사이토를 표적으로 한 부딪히는 연습이 한 시간 정도 계속됐다. 한 스모 전문기자에 따르면 “부딪히는 연습은 프로 선수들조차 보통 5분이 한계다. 입문한 지 반 년 정도밖에 안 된 신입에게 한 시간이나 시키는 것은 이지메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가혹한 훈련을 끝내고 사람들은 사이토를 그대로 남겨둔 채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사이토는 이미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구급차를 부른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이상 지났을 때였다. 결국 사이토 다카시는 6월 26일 오후에 17년의 짧은 인생을 허무하게 마쳤다.
이 사건은 처음에 사인이 급성심부전으로 발표되면서 그냥 사고사로 끝나는 듯했다. 당시 언론들은 나고야에서 열린 스모 경기를 보도하는 데 열중해 이 사건은 <주간겐다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멍들고 부은 아들의 시신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경찰을 통해 부검을 의뢰해 6월 29일 ‘다발성 외상에 따른 쇼크사의 가능성’이 발표되면서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가 막힐 노릇은 오야가타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벌인 은폐공작이다. 그는 사이토의 사망 직후 그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에서 화장하겠다”는 비상식적인 제의를 내놨다. 이를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연습을 하다가 사망한 것”이라고 둘러대기 시작했다. ‘다발성 외상에 따른 쇼크사의 가능성’이 발표된 후 기자들이 오야가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체벌 등은) 절대 없었다”고 주장하며 “사이토는 과거에 마리화나를 피웠다. 입문한 후에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 선배들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며 죽은 사람을 모함하기에 이르렀다.
진실을 감추려는 스승의 추한 행동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7월에 접어들면서 경찰이 스모 도장의 관련자들을 소환하여 조사를 하기 시작하자 오야가타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입단속을 시키면서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는 법까지 철저하게 가르쳤다.
스승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한 제자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경찰에 진술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결국 7월 말 오야가타도 경찰에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월 그는 사죄를 하기 위해 사이토의 부모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는 “맥주병으로 때린 것은 맞지만 금속배트는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며 끝까지 조금이라도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폭력으로 자신의 제자를 죽게 만들고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시도한 오야가타의 범죄가 부패한 스모계의 현실 그대로를 나타낸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도키쓰카제 오야가타와 그의 제자들이 상해 및 상해치사 혐의로 입건될 가능성이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유명 스모 도장의 책임자이자 지도자인 오야가타가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되는 것은 일본의 스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사쇼류의 승부조작 의혹과 꾀병소동과 함께 이름만 남아있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일본스모협회의 무능함, 이번 린치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폐쇄된 세계에서 서서히 곪아가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스모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스모계에 만연한 악습과 폐쇄적인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스모가 일본의 국기로서 다시 국민의 지지와 관심을 되찾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