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사진=연합뉴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 기본정책의 방향을 대통령에게 제시하고 제도의 발전 방법을 모색하는 조직이다. 과학계의 ‘싱크탱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전 정권까지만 해도 명예직으로 알려져 왔다. 염한웅 부의장 역시 ”봉사직에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며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끄는 ‘컨트롤 타워’로 급부상했다. 지난 6월 5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자문 및 조정 기구는 모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통합됐다. 유사한 위원회와 회의가 난립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계 단일 종합조정기구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어 실무는 부의장 몫이다. 부의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차관급 신설 조직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정제한 자료와 안건을 토대로 과학계와 문재인 대통령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장관급 차관’ 조직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장관 참석 국무회의 자리에 앉는 유일한 차관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강하다. 본부는 연간 20조 원에 육박하는 R&D 예산 심의와 조정 권한을 갖는다. 기획재정부의 R&D 예비 타당성 조사권한도 이양 받았다. R&D 지출한도도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설정하는 권한을 갖게 됐다. 염한웅 부의장은 이런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자료를 받아 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실권자가 된 셈이다.
문제는 염한웅 부의장의 2회에 걸친 음주 운전 이력이다. 염 부의장은 2003년과 2007년 각각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면허 취소 당했다. 2003년엔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다 차에서 잠들어 적발됐다. 2007년엔 음주단속에 걸렸다. 이런 인사가 과학계의 중추를 담당한다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일었다.
청와대는 염한웅 부의장의 음주 이력을 알고도 인사를 강행했다. 청와대는 인사에 앞서 염 부의장의 음주 이력을 파악했다. 염 부의장은 “청와대에서 음주운전 전력을 알고 있었다”며 “임명에 앞서 나에게 음주 운전 이력을 물었다. 난 ‘음주 운전이 문제가 된다면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했지만 별 문제 없이 임명됐다”고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자리는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음주 운전 2회는 청와대 인사에서조차 임용될 수 없는 조건이다. 현재 청와대 내부 인사규정에 따르면 음주 운전 2회 이상 적발은 신규 임용 배척사유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자리가 별다른 검증 절차가 필요 없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느슨한 인사 기준을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염한웅 부의장 인사 논란 배경으로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의 ‘포항공대 라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보좌관은 포항공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뒤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연구교수직을 수행하다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에 올라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 6월 20일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염한웅 부의장의 이력은 문미옥 보좌관의 과거와 맞닿아 있다. 염 부의장은 1989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91년 포항공대 물리학과 석사 학위를 땄다. 문 보좌관이 1987년 포항공대 물리학과에 입학해 학부생이던 시절 염 부의장은 같은 과 조교였다. 이들의 인연은 또 한번 이어졌다. 2001년 염 부의장이 연세대 물리학과 부교수일 때 문 보좌관 역시 연구교수로 함께 근무했다.
염한웅 부의장은 문미옥 보좌관의 포항공대 라인 인사 감싸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염 부의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포항공대 석사 과정 조교일 때 문 보좌관은 같은 과 학부생이었다. 공대에선 조교가 채점만 할 뿐 학부생과 교류할 일이 별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활동할 때 최재성 전 위원이 조직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일을 하면서 처음 문 보좌관을 만났다. 그때 문 보좌관이 ‘자기가 학부생일 때 내가 조교였다’고 말해서 그제야 알게 된 사이”라며 “연세대에서도 근무 시기가 겹치지만 연구실이 각각 달라 서로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날 추천한 사람은 문 보좌관이 아니라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쪽”이라고 말했다.
염한웅 부의장의 이러한 해명에도 문미옥 보좌관을 향한 포항공대 라인 인사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역시 문미옥 보좌관과 함께 1987년 입학한 포항공대 1기 출신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문 보좌관의 추천으로 장관 후보자에 올랐다. 박 후보자는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지낸 이력과 최근 이승만 독재를 옹호하는 등 ‘뉴라이트’ 논란으로 과학계 등의 ‘자진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