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운동가로 주목받고 있는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놓고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 ||
지금 미국에서는 앨 고어 전 부통령(59)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논란은 그가 ‘정치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그의 위선적인 태도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말로는 “환경보호를 위해서 생활습관을 바꿔라”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평가들이나 일부 네티즌은 “입으로만 그럴듯하게 떠들면서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비꼬았다.
고어가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환경운동가로서의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고어의 수상 배경에 대해 노벨위원회는 “정치적 활동과 강연, 영화, 저서 등에 나타난 고어의 강한 의지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사실 고어가 환경운동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올해 초에는 그가 출연한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이 오스카상 2개 부문(장편 다큐멘터리 및 주제가상)을 수상함으로써 더욱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다.
정치인 시절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던 고어는 부통령에 당선되던 1992년에는 <위기의 지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교토의정서 창설을 주도해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앞장섰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강연 및 청문회를 통해 환경문제를 부각시켜 왔다.
이런 까닭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를 가리켜 ‘오존맨’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의에 찬 ‘환경파수꾼’의 모습이 과연 고어의 진짜 모습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부 보수진영을 비롯해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미 그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아예 노벨상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는 고어의 생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먼저 고어가 펼치고 있는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환경운동’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고어는 <불편한 진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에너지 낭비가 심한 백열전구 대신 에너지 효율이 높은 형광등 사용하기, 건조기 대신 빨랫줄 사용하기, 뜨거운 물 사용 줄이기, 태양열이나 수력,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 사용하기, 카풀하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타기, 비행기 여행 줄이기, 최대한 적게 소비하기 등이 그것이다.
실제 많은 고어의 추종자와 환경운동가들은 고어의 이런 생활지침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고어 역시 강연 때마다 “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고어의 얘기는 사실과 달랐다. 그는 ‘전기 먹는 하마’였던 것이다.
현재 내쉬빌, 버지니아에 각각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그는 말 그대로 ‘부동산 갑부’다. 고어 가족이 살고 있는 내쉬빌 저택은 280평 규모에 방이 스무 개, 욕실이 여덟 개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버지니아에 있는 저택 역시 112평 규모에 달한다.
내쉬빌 저택의 전기요금 청구서를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고어 가족의 지난해 전기 사용량은 총 22만 1000kw. 이는 미국 일반 가정의 평균 사용량인 1만 656kw에 비해 스무 배나 많은 수치다. 이를 월 평균 전기요금으로 환산해보면 월 1359달러(약 130만 원)로, 매달 평균 1만 5000~ 1만 8000kw 정도를 사용한 셈이 된다. 이는 미국 일반 가정이 1년에 사용하는 전기량을 불과 한 달 동안 사용한 것이다.
난방비 역시 마찬가지. 지난해 고어는 매달 평균 1080달러(약 99만 원)를 난방비로 지출했으며, 연간 전기료와 난방비를 합친 금액은 3만 달러(약 2800만 원)에 달했다. 또한 고어 저택의 정원에는 대체 에너지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전등과 전기문이 설치되어 있고,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수영장도 있다. 이쯤 되면 과연 이 집이 ‘환경운동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사는 집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
이에 대해 고어 측은 “점차 집안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집안의 모든 전등을 형광등으로 교체했고, 태양열 패널도 설치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전기료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고어 부부가 모두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자택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고어의 생활 태도다. 개인 제트기는 일반 여객기보다 네 배가량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환경오염의 주범. 제트기를 한 시간 띄우는 데 사용되는 연료는 자동차를 1년 굴리는 데 사용되는 연료와 맞먹는다.
이에 관련, 얼마 전 ‘폭스뉴스’는 신랄한 비판을 했다. <앨 고어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폭스뉴스’는 “고어는 지금까지 기후변화 강연을 하기 위해서 이동할 때 주로 제트기를 사용해왔다. 또한 2000년 선거운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대선 운동을 하던 1999년 1월~2000년 1월에는 열여섯 차례에 걸쳐 개인 제트기를 이용했으며, 부통령 재직 당시에는 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2’를 이용하는 일이 잦았다.
고어 가족이 ‘옥시(Oxy) 석유개발회사’의 대주주란 점도 비난의 초점이다. 대체 에너지 사용을 주장하는 환경운동가가 어떻게 석유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 특히 ‘옥시’사는 최근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시추작업을 벌이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7월에는 막내딸 사라의 결혼 전야파티에서 하객들에게 내놓은 비막치어 요리가 구설수에 올랐다. 비막치어는 칠레 및 아르헨티나 인근 해역에 분포하는 ‘보호어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재 고어의 지지도는 노벨상 수상 이후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상태. 이미 일각에서는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으며, 설령 출마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향후 대선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노벨상이라는 날개를 단 고어가 과연 앞으로 정계에 어떠한 바람을 불어 넣을지에 미국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