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은 선수들. 연합뉴스
[일요신문] 대한민국 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을 기점으로 KBO 연간 관중은 500만 명을 넘기기 시작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을 달성하며 야구 국가대표팀의 위상도 더욱 높아졌다. 이 시기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학생들을 ‘베이징 키즈’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야구계는 오랫동안 베이징 키즈의 프로 진출을 기다려왔다. 올해는 1999년에 태어나 2008년 초등학교 3학년이던 베이징 키즈가 대거 프로야구 드래프트에 나서는 해다. 이에 <일요신문>은 어느 때보다 관심도가 높았던 ‘2018 KBO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 다녀왔다. 드래프트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베이징 키즈가 모습을 드러내는 이번 드래프트는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좋은 재능을 가진 유망주가 다른 해에 비해 유독 많이 몰렸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앞서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1명씩을 선발하는 1차 지명으로 10명의 선수가 뽑혔음에도 ‘1차 지명 감’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즐비했다.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직전에는 ‘상위 픽’이 예상되던 경북고 내야수 배지환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해 현장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배지환의 미국 진출 보도는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약 30분 전에서야 보도됐다. 각 구단의 ‘시나리오’가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질문 세례를 받는 김선기.
각 팀 선수 지명이 신속하게 이어졌다. 전체 1번 강백호를 제외하고 ‘고졸 투수’ 지명이 연속되던 분위기에 8순위 넥센이 제동을 걸었다. 넥센은 타임을 요청했고, 상무 소속 ‘미국 유턴파’ 김선기를 지명했다.
각 구단은 선수 지명 직전 ‘타임’을 요청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다. 가장 많은 타임을 요청한 구단은 두산이었다. 두산은 1라운드부터 타임을 불렀다. 3, 4, 5라운드에서도 타임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통합우승으로 10순위로 드래프트를 시작해 선수 선발에 어려움을 겪는 듯 했다.
하지만 팬들과 함께하는 드래프트에서 가장 큰 환호가 터져 나온 구단도 두산이었다. 4라운드 전민재 지명부터 나오기 시작한 환호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두산의 선수 지명에 환호성을 질렀던 야구팬 윤빛나 씨는 “드래프트 현장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중계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함께 현장을 찾은 김다윤 씨도 “두산팬인데 구단에서 자꾸 타임을 불러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며 “개인적인 예상과는 좀 다르지만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야구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드래프트지만 무엇보다 긴장됐을 이들은 다름아닌 지명을 기다리는 선수 본인과 가족들이다. 이날 드래프트에서는 총 964명의 선수가 지원해 100명만이 선발됐다. 현장에는 42명의 선수가 참석했다. 선수의 가족들도 함께해 떨리는 눈으로 드래프트를 지켜봤다.
현장에서 드래프트를 지켜보는 야구팬들. 이종현 기자
지난 7월 고교 야구대회에서 5이닝 14삼진 기록으로 화제가 됐던 세광고 김유신은 1라운드에서 KIA 타이거즈의 선택을 받았다.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총출동해 현장을 찾았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범남 씨는 이날 일정이 끝난 시점에도 아들의 프로 지명이 감개무량한 듯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일단 너무 기분이 좋다”며 “부족한 아들을 뽑아주신 KIA에 감사드린다. 이제 유신이가 KIA의 보물이 돼야 하지 않겠나. 팀에서 잘해서 나라의 보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류미라 씨는 “이 자리에 와있다는 자체가 뜻깊다”면서 “지명 순간에는 ‘그동안 아들이 고생 많았다’는 생각만 떠오르더라. 앞으로 프로선수 김유신을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선수 가족들은 생애 한 번뿐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두산 유니폼을 입은 아들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던 전민재(대전고) 아버지 전용민 씨는 “아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모든 부모 마음은 같다. 아들이 프로에서도 선배들 잘 따르고 부상 없이 선수생활 하길 바란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초등 동창 3인방’ 김태우·이재원·김현 “우리 프로 됐어요” 대구 옥산초등학교 출신 이재원, 김현, 김태우(왼쪽부터). 행사장 한편에는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세 선수가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삼성, LG, 롯데의 선택을 받은 김태우(경북고), 이재원(서울고), 김현(상원고)으로 모두 한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한 친구 사이다. 세 선수는 모두 대구 옥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은 자신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의 프로 지명에도 기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기분이 묘하다”는 김태우는 “초등학교에서 같이 운동하다 고등학교에서 다 갈라졌는데 프로에 함께 왔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며 소감을 전했다. 김현은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프로 무대에서 10년, 20년 오랫동안 야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상] |
“저 아나운서 누구야” 드래프트 진행 맡은 배아현 사원 배아현 KBO 사원. 사진=KBO 제공 그는 “KBO 직원이 KBO 행사를 직접 진행한다는 게 많이 부담이 됐다”며 “너무 긴장이 됐는데 지명 기다리는 선수들 모습을 보니까 더 떨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대학 합격 발표나 입사 발표 때 많이 떨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더라. 선수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큰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축하 인사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상] |
‘마지막 선택의 주인공’ 100번째 지명 받은 강릉고 권민석 두산 베어스에 지명된 강릉고 내야수 권민석.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맨 마지막 100번째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된 강릉고 내야수 권민석의 이야기다. 그는 “이름이 불리자마자 모여있던 친구들이 손바닥으로 저를 마구 때렸다. 축하를 너무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그가 졸업 예정인 강릉고는 오랫동안 고교야구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학교다. 학교가 위치한 강원도는 야구 불모지이기도 하다. 권민석은 강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용인으로 이사를 갔지만 고교에 진학하며 강릉으로 돌아왔다. 이에 그는 “아버지도 강릉고에서 야구를 하셔서 저와 동문이 되고 싶어 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모님 지원과 코치님 지도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두산에서도 열심히 해서 김재호 선배 같은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