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매각 작업을 주도해 온 산업은행은 정치권 등에서 제기한 ‘국부유출’ 프레임에 말려들며 고배를 마셨다. 옛 외환은행, 쌍용자동차 매각 당시 불거진 ‘먹튀’ 트라우마는 외국자본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금호타이어와 관련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행보도 매각 무산에 한몫했다. 이동걸 전임 산업은행 회장은 나름 의욕을 갖고 금호타이어 매각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박 회장에게 ‘판정패’했다.
이동걸 신임 산업은행 회장은 전임자가 매듭짓지 못한 금호타이어 문제를 해결해야 함과 동시에 대우건설 매각이란 중대 과제를 안았다. 2006년 금호그룹에 인수된 대우건설은 2009년 전후 금호 주요 계열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산은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산은은 사모펀드(PEF) ‘KDB밸류제6호’를 통해 대우건설 지분 50.75%를 갖고 있다. 이 펀드의 만기는 오는 10월 도래한다.
금호타이어 문제로 체면을 구긴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을 성사시켜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긴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대기업(대우건설)에 묶인 정책자금을 회수해 유망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에 대한 매각 전 실사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며 “비금융 자회사 정리 방침에 따라 이르면 9월 말 매각 공고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산은은 전임 이동걸 회장 시절부터 매각주간사로 미래에셋대우와 BOA메릴린치를 선정하고, 국내외 인수 후보를 물색해왔다. 시장에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 말레이시아 에너지업체인 페트로나스 등을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인 건축공정총공사도 잠재적인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국내에선 주로 중대형 건설사가 인수 후보로 꼽힌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된 호반건설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계열 가운데는 SK건설, 현대산업개발이 인수 후보로 불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호반건설 등 국내 건설사의 입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이 예상하는 대우건설 매각가는 2조 원 안팎인데 이 정도 자금을 베팅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호반건설의 경우 그동안 인수합병 시장에서 유력 인수 후보로 도전했다가 막판에 번번이 발을 빼 ‘간만 보고 나갔다’는 평가를 받아온 터라 신뢰에 의문을 사고 있다.
그나마 SK 정도가 자금력을 갖췄지만 이미 SK는 시공능력평가 10위인 SK건설을 갖고 있다. SK가 시공능력평가 3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해도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산업개발은 박근혜 정부 당시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고문이 대우건설 사장에 내정되면서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이후 박 전 고문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인수설은 가라앉은 상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75 에 위치한 대우건설 전경. 임준선 기자
산은은 2010년 금호로부터 주당 1만 8000원에 대우건설을 사들였는데 현재 주가는 7000원대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2014년부터 주택 사업 호조로 흑자 전환했고, 올해는 영업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경영지표상 향후 주가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은 셈이다. 더구나 미래에셋은 지난해 산은으로부터 옛 대우증권을 성공적으로 인수한 바 있다. 대우건설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대우건설 실세인 이훈복 전무가 고려대 동문으로 가깝다”며 “차기 사장을 원하는 이 전무에게 박 회장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은 대우건설 인수전 참여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이미 매각주간사로서 산은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매각 대상에 대해선 인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산은 관계자도 “사모펀드로 매각될 경우 ‘먹튀’ 논란 등 경영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건설업을 잘 알고, 회사를 장기적으로 이끌 기업이 인수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미래에셋이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할 경우 금산분리법을 위배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면 지분을 쪼개는 방식으로 다수의 투자자를 모집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분을 우회 확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리스크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산은과 미래에셋의 ‘빅딜설’을 주장하고 있는 세력으로 이른바 ‘대우맨’들을 꼽는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우맨’들은 특유의 조직 문화를 고수하며, ‘비대우’ 출신 오너(혹은 경영인)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해외 자본 혹은 재벌 오너가 들어와 대우건설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비대우맨’인 박창민 사장이 나간 뒤로 남은 ‘대우맨’들이 조직을 장악했다”며 “매각이 지연되거나 매각 과정에서 논란이 생길수록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구일지 봐야 한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