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시합에서 가메다 다이키가 상대 선수를 링 밖으로 집어던지려하자 심판이 말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이날 경기는 그야말로 한 편의 싸구려 영화였다. 챔피언 나이토 다이스케와 동급 랭킹 14위인 가메다 다이키(18)의 시합은 3-0이라는 나이토의 일방적인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시합에서 ‘가메다 패밀리’가 보여준 모습은 충격을 뛰어넘어 엽기에 가까웠다.
다이키는 공격다운 공격은 하지 못한 채 방어에 급급했고, 박치기, 팔꿈치로 눈 찌르기, 급소 노리기 등 비신사적인 반칙으로 감점을 받았다. ‘더티 복싱’의 결정판은 마지막 12라운드. 다이키는 상대 선수를 두 팔로 감싸서 공중에 들더니 레슬링하듯 던져버렸다. 그러더니 자포자기한듯 묘한 웃음을 날렸다. 다시 감점.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패배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세컨드로 링 밖에 있던 아버지 시로와 장남 고키가 시합 중에 팔꿈치로 상대 선수의 눈을 못 쓰게 만들고 하반신을 공격하라고 반칙을 지시하는 모습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시합을 관전한 많은 사람들이 “복싱이 아니라 이종격투기를 보는 것 같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본래 가메다 패밀리의 인기의 원천(?)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그들의 거친 언동과 도발적인 퍼포먼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메다 삼형제의 장남인 가메다 고키(20)는 자신보다 윗사람에게 반말을 하거나 감량 중인 상대선수 앞에서 햄버거를 먹는 등의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차남 다이키는 이번 시합을 앞두고 나이토를 바퀴벌레라고 부르는가 하면 “시합에 진다면 할복하겠다”고 호언하는 등 매너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두 형들이 “형제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막내 도모키(16)는 프로 복서가 되기 위하여 현재 멕시코에서 훈련 중이다. TBS 방송은 현지에서 도모키의 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등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형제의 아버지이자 트레이너, 세컨드인 가메다 시로(42) 또한 TV에 출연해 자신을 비난하는 다른 출연자를 협박하거나 부정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집합시켜 위협을 가한 적이 있다. 가메다 패밀리의 ‘개념 상실 퍼포먼스’는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무성한 소문만을 남기고 그대로 묻혀버렸다. 그러나 그 배후에 시합 독점중계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TBS와 가메다 삼형제가 소속된 ‘교에이’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JBC(일본복싱커미션)는 다이키 전에서 가메다 패밀리가 보인 행위에 대한 징계처분을 발표했다. 반칙 시합을 펼친 다이키는 ‘1년 자격 정지’를, 반칙을 지시한 아버지 시로에게는 ‘세컨드 자격 무기한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함께 반칙을 지시한 장남 고키에겐 ‘엄중계고(戒告)’가 내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로는 “(눈이나 하반신을 공격하라고 한) 그 발언은 단지 가메다 집안 고유의 복싱용어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시합으로 가메다 패밀리가 받게 될 타격은 치명적이다. 그동안 그들을 응원했던 복싱 관계자들이나 언론, 유명인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가메다 패밀리의 오만방자함을 눈감아줬던 일본 프로복싱계의 최고 실력자인 ‘데켄체육관’의 혼다 회장이 이번 시합을 계기로 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늘 대중의 관심을 몰고 다니는 가메다 패밀리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 복싱계가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그들의 퍼포먼스가 묵묵히 노력하는 다른 선수들이 받아야 할 관심까지 모두 독점해버렸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게다가 지난해 열렸던 가메다 대 란다에타 전의 판정 의혹에 이어 이번 반칙 시합까지, 복싱계의 인기 회복은커녕 오히려 복싱계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그들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사실 가메다 패밀리의 몰락은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인기에 편승하여 판매 부수를 늘이려던 스포츠 신문들과 그들을 응원하던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산토리’와 ‘나이키’ 등 유명회사와 맺은 스폰서 계약도 이젠 모두 끝난 상태다.
이제서야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파악한 것인지 장남인 가메다 고키는 10월 25일 예정돼 있던 시합을 갑자기 취소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전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들과 가까운 관계자에 따르면 동생 다이키의 시합을 전후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충격을 받은 고키가 자신감을 잃고 “그만 은퇴하고 싶다”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다이키도 사실상 이대로 복싱계를 떠날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있다. 이종격투기 단체인 K-1에서 벌써 다이키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순간 최고 시청률 40.9%를 기록했지만 결국 일본 복싱계 전체와 자신에게 큰 치명타만을 남기고 끝난 이번 시합은 언론의 무분별한 띄워주기로 알맹이 없는 스타가 되어버린 가메다 패밀리의 부풀려진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