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국민의당 임시전국당원대표자대회(임시전당대회)가 열린 가운데 손학규 상임고문이 연설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안철수 대표는 8월 27일 치러진 전당대회 당 대표 수락연설을 통해 “존경하는 손학규 상임대표님께서도 거듭 강조하신 것처럼 선거법 개정과 개헌에 당력을 쏟겠다”며 손학규 고문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그날 늦은 시각 손 고문은 안 대표와 회동을 가졌다. 안 대표는 손 고문 측근으로 알려진 이찬열 의원에게 손 고문과의 회동을 주선해달라고 했다.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손 고문을 만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안 대표는 손 고문에게 ‘제2창당위원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고문 측 관계자는 “안 대표가 손 고문에게 ‘당을 도와 달라’고 했는데 ‘미국 교환 교수 일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기엔 손 고문의 불편한 속내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국민의당 한 보좌진은 “제2창당위원장은 전권 다주고 밀어 붙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권한이 없는 자리라는 말이다. 손 고문이 그 정도 급은 아니지 않냐. 손 고문한테는 실질적인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손 고문은 9월 1일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과 회동을 가졌다. 둘은 국민의당-바른정당 정책 연대에 대해 의견 교환을 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하 최고위원은 손 고문에게 거듭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8월 30일 하 최고위원은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바른비전위원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 가능성을 공론화했고 이에 앞서 국민의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분 양상을 보이자 ‘손학규 당 대표 추대론’을 제안했다.
손 고문과 하 최고위원은 제3세력 중도 통합의 필요성에 상당 부분 공감을 했다고 알려졌다. 하 최고위원은 인터뷰에서 “가볍게 만나 상대 당에 대해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였다”면서도 “손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정치개혁연대에 대해 손 고문이 ‘적극 동의한다’고 했고 정치 혁신을 위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손을 잡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에 대해서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손 고문이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말 미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은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3개월가량 머물 계획이다. 손 고문은 “안보위기 상황인 만큼 미국에서 한반도 관계를 살펴볼 예정이다. 또 실리콘밸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공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대학 측으로부터 정규 수업을 제안 받았는데, 한두 번 정도 특강을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손 고문 측 관계자는 “미국행은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일이다. 연말에 귀국한다고 알려졌는데 정해진 건 없다. 원래는 1년 코스다. ‘한국 정세’ 등 특강 위주로 스탠퍼드에서 강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고문의 미국행에 대해 정가에선 다양한 말들이 나온다. 먼저 손 고문이 ‘안철수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는 향후 손 고문이 또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또 지방 선거 전까지 미국에 머물며 개헌 정국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손 고문은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손 고문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손 고문은 정계 은퇴 선언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힘도 한 번 못 써봤다. 그렇다고 다시 정계 은퇴 선언하기엔 우습고 당장 공간이 없다. 지방선거에서도 쉽지 않을 거다. 할 수 있다면 ‘서울시장’인데, 사실상 싸울 무대가 없다. 앞으로 국민의당에서 지방 선거 결과가 안 좋다든지 안철수 체제가 무너지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 전보다는 이후까지 내다보는 행보가 아닐까 싶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국민의당 보좌진 또한 “손 고문은 지방 선거 이후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깨지면 대안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안철수판’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