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지리적인 특성상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난민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아프리카 난민들에게는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항구에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아프리카 난민들로 늘 북적인다. 이 가운데 어린 소녀들이나 젊은 여성들의 경우에는 난민임을 가장하고 다른 목적을 갖고 입국하는 경우도 많다. 바로 ‘유러피안 드림’을 품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밀입국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소녀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이들 대부분은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꾐에 넘어가 이탈리아의 포주를 소개받고 매춘부로 일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성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소녀들은 큰돈은커녕 되레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으며, 구타를 당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이렇게 매춘부로 전락하는 나이지리아 여성들의 실태를 집중 보도하면서 이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유럽 땅을 밟게 되는지, 그리고 그 종착역은 어디인지에 대해 보도했다.
26세의 페이스가 함부르크 엘베 강가에 서있다. 독일 당국과 인신매매범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얼굴을 숨기고 있다.
나이지리아 남부의 베닌시티 출신인 페이스(가명)의 나이는 올해 26세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그녀는 여권도, 신분증도 없다. 때문에 독일 당국에 발각될 경우에는 강제 추방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현재 페이스는 지역단체의 도움을 받아 베이비시터나 청소부로 간간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천운에 해당된다. 유럽으로 건너온 대다수의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성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슈테른>에 따르면, 지난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넘어온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1만 3000여 명에 달했다. 2017년 상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그 수가 20% 더 증가했다. 이런 까닭인지 현재 이탈리아 길거리의 매춘부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나이지리아 출신이며, 시칠리아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의 경우에는 무려 90% 이상이 그렇다. 매춘부 가운데 가장 어린 소녀의 나이는 고작 13세다. 유엔국제이주기구(IOM)의 카를로타 산타로사는 “가장 추악한 형태의 현대판 노예제도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면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왜 이렇게 멀리 이탈리아로 건너와 강제로 성매매를 하고 있는 걸까. <슈테른>은 함부르크에 머물고 있는 페이스의 증언을 토대로 나이지리아 여성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와 몸을 팔고 있는지를 추적했다.
인구 150만 명인 베닌시티가 고향인 페이스는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문맹이다. 1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도와 시장에서 우유나 땔감 등을 팔던 그녀는 결혼 후 20세에 딸을 출산했다. 하지만 남편이 집을 나가자 홀로 딸을 키우면서 미용 기술을 배워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 가운데 몇몇은 유럽에 딸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서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딸이 돈을 많이 버는 덕분에 그 집에는 TV도 있고, 돈도 제법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페이스의 집에는 TV는커녕 작은 라디오 한 대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베닌시티 주민들에게 유럽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은 이탈리아에 딸이 있는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다. 만일 이탈리아에서 살던 여자가 고향으로 돌아오면 과연 어떤 지역에 투자를 할지도 관심사가 되며, 이들은 값비싼 실크옷을 입고 크림처럼 하얀 피부를 빛내면서 고향 주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페이스는 “그런 여자들이 우리들의 이상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2015년 여름, 페이스는 같은 길가에 살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됐다. 페이스는 “그때만 해도 나는 유럽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동네에서 네일숍을 여는 것이 내 가장 큰 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니다”라며 설득하면서 유럽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염려 말라면서 안심시켰다.
그렇게 해서 둘은 도심 한가운데 대저택에 살고 있는 ‘마마 유위’를 찾아갔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얻길 원하는 여성들을 유럽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마마 유위’는 출국 비용으로 4만 나이라(약 24만 원)를 요구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에서는 오사레틴이라는 이름의 남성이 동석했다. 이 남성은 소녀들을 유럽으로 보내는 일종의 운반책으로서, 소녀들을 이탈리아의 네 도시에 있는 마담들에게 각각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렇게 나이지리아 곳곳에서 모인 소녀들은 페이스를 포함해 모두 열여덟 명이었다. 소녀들의 계약서에는 이탈리아로 가는 여행 경비를 대주는 대신, 이 빚은 앞으로 노동으로 갚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소녀들이 갚아야 할 빚은 무려 3만 5000유로(약 4700만 원)였다. 오사레틴은 “걱정마. 이탈리아에 가면 일자리가 많아. 1년 후면 다 갚을 수 있을 거야. 유럽이야. 돈이라고!”라며 안심시켰다.
페이스와 그녀의 가족들은 3만 5000유로의 크기를 전혀 가늠하지 못했었다. 페이스는 “환전소에 가서 물어봤지만, 환전소에서는 ‘돈을 가져오면 교환해주겠다’는 말만 했다”라고 말했다.
15세의 사라는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동안 ‘지옥’을 경험했다. 어린 소녀들은 나이지리아 남부에서 출발해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간다. 이 가운데 일부는 독일 북부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사실 나이지리아에서 이런 식의 인신매매는 20년 전부터 암암리에 이뤄져 왔었다. 그간 정부가 나서서 계몽운동도 펼치고, 유럽에서 돌아온 여성들의 고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극빈 지역의 여성들은 아직도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고, 또 믿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한 후 유럽으로 가게 된 페이스는 베닌시티의 전통에 따라 부두교 사제 앞에서 맹세 의식을 치러야 했다. 이 의식을 치러야 계약이 최종적으로 성립되기 때문이었다. 2015년 12월, 페이스는 어머니와 친오빠와 함께 아예랄라 신을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향했다. 아예랄라 신은 도덕과 정의를 상징하는 신이다.
의식을 치르기 전에는 손발톱을 자르고 음모의 윗부분을 제모해야 했다. 정갈하게 목욕을 한 후 따뜻한 술을 한 모금 마시자 사제가 도살한 염소의 피를 페이스의 이마에 문질렀다. 페이스는 알몸으로 사제 앞에 허리 숙여 인사를 했으며, 사제의 말에 따라 “저는 유럽으로 갑니다. 모든 지침을 따르고, 3만 5000유로를 갚겠습니다. 경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맹세를 어길 경우, 아예랄라가 가족들에게 죽을 때까지 복수를 할 것입니다”라는 서약을 했다. 이렇게 제모한 음모는 사제가 종이 봉투에 넣어 보관하며, 빚을 모두 갚아야 비로소 이 봉투를 돌려받을 수 있다.
시칠리아섬의 반마피아 검사인 리나 트로바토는 이런 의식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트로바토 검사는 “소녀들은 도망을 칠 경우 가족들이 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맹세를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소녀들은 끔찍한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식의 맹세는 가족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라고 말했다.
페이스가 열여덟 명의 소녀들과 함께 유럽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은 2015년 12월 말이었다. 이 가운데 열두 명은 베닌시티 출신이었으며, 대부분은 페이스보다 나이가 어린 소녀들이었다. 트럭에 몸을 실은 소녀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인접국인 니제르 중앙에 위치한 아가데스였다. 국경 검문소의 경찰들에게 뇌물을 쥐어준 트럭은 무사히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아가데스에 도착하자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리비아로 건너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페이스는 그때만 해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휴대폰을 빼앗겼기 때문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으며,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정해진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아가데스에서 몇 주를 보낸 소녀들은 하염없이 출발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트럭에 올라탄 소녀들은 모래가 흩날리는 사막 위를 한없이 달렸다. 사막 위에는 수십 개의 해골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마침내 트럭이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리비아였다.
리비아는 유럽행 이주민들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이 가운데 다수는 바다를 건너는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하지만 리비아는 다른 의미에서도 이주민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다. 2011년 벌어진 내전으로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이주민을 노예처럼 사고 파는 인신매매단은 무기를 소지한 채 리비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는 아프리카 소녀들을 이탈리아로 보내는 ‘마담 조이’도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마담 조이’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송금 대행을 맡으면서 일종의 여행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왓츠앱’ 메신저를 통해 아프리카 소녀들의 상태를 관리하면서 이탈리아의 마담에게 소녀들의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는 그녀는 가령 ‘소녀들이 아가데스에 도착했다’ ‘무르주크까지 비용을 지불했다’ ‘(유럽으로 가는 항구인) 트리폴리가 열렸다’ 등등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페이스가 리비아의 항구도시인 트리폴리에 도착한 것은 2016년 2월이었다. 리비아의 민병대가 감시하고 있는 수용소에서 소녀들은 한동안 머물면서 배를 타게 될 날을 기다린다. 다른 난민들과 섞이지 않도록 각별히 분리된 칸막이 방에서 몇날 며칠을 보냈던 소녀들은 공포에 떨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이렇게 격리된 생활을 하는 페이스와 소녀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다른 소녀들은 리비아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사라(15)의 경우가 그랬다. 사라가 리비아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사창가였다. 사라는 “그곳에는 스무 명의 소녀들이 있었다. 어떤 때는 서른 명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소녀들은 ‘이탈리아로 건너가기 전에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에 따라 리비아에서 몸을 팔았다. 사라는 “나는 매일 다섯 명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져야 했다”고 말했다. 콘돔을 착용할 경우에는 1.5디나르(약 1300원), 콘돔을 착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2디나르(약 1700원)를 받았다. 그나마 이렇게 번 돈은 모두 마담 몫으로 돌아갔다.
인신매매집단과 민병대들이 리비아 사하라 사막의 국경 근처에 서있다. 국가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렇게 연습기간(?)이 끝난 후 사라는 민병대에게 팔려갔다. 사라는 “나는 부대 전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몸 전체에 습진이 생겼다”라며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성폭행으로 인해 유럽으로 가기도 전에 임신을 하는 소녀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경우에는 ‘작업 불능’ 상태로 간주돼 리비아에서 되팔리곤 한다.
페이스는 리비아에서 5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이탈리아로 가는 배 위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120명이 탈 수 있는 모터 보트에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나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온 소녀들이 빼곡하게 올라탔다. 소녀들은 알라신에게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3일을 항해한 후 배는 마침내 시칠리아섬 카타니아 항구에 도달했다. 가명으로 신고를 마친 페이스는 난민수용소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베르가모로 향했다. 난민수용소 직원은 소녀들에게 “절대 마담에게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되면 성노예로 팔려가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소녀들은 아무도 없었다.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리고 아예랄라 신에게 한 맹세 때문이었다. 베르가모에 도착하자 마담들이 보낸 밀사들이 소녀들을 한 명씩 데려갔다.
트리폴리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사라는 이탈리아로 건너온 후 로마에 있는 마담에게로 보내졌다. 사라는 “집안에는 열 명의 소녀들이 더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라를 비롯한 소녀들은 거리로 나가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는 날이면 몽둥이로 맞곤 했다.
하지만 페이스는 이와 다른 선택을 했다. 매춘부로 일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그들은 너를 노예처럼 부릴 거야. 그들은 킬러도 고용하고 있어”라는 섬뜩한 경고를 들은 후에 도망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결국 약속한 날짜를 미룬 채 몰래 독일로 도망친 페이스는 남부 뮌헨을 거쳐 북부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현재 함부르크의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페이스는 언제 마담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페이스는 “만일 당국에 적발될 경우에는 ‘아쥘(망명)’이라고 한마디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함부르크에 도착하기 전까지 겪었던 충격적이고 위험천만했던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면 그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