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환은 강백호(서울고·kt 지명)와 양창섭(덕수고·삼성 지명)에 이어 드래프트 1라운드 3∼5순위 내 지명이 유력한 특급 유망주였다. 그러나 다른 동기생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대회가 한창인 캐나다에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배지환을 1순위 후보로 고려하던 앞 순위 지명 구단들은 부랴부랴 계획을 수정해야 했고, 후순위 구단들의 지명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드래프트에서 이름도 불리지 않은 선수가 전체 1순위 지명자 못지않은 화제를 모은 이유다.
세계청소년(19세이하)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배지환. 사진=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이튿날 현지 언론에서 좀 더 자세한 소식을 전했다. 애틀랜타 지역지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은 “애틀랜타가 배지환과 계약을 마무리 하고 있다”며 “스카우트들은 내야수인 배지환을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건너간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배지환이 빠른 발과 배트 컨트롤 능력을 가졌다”고 소개하면서 계약금은 약 30만 달러(약 3억 3800만 원)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급 대우는 아니다. 배지환이 국내 구단에 입단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계약금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하루에서 몇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며 “이번 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전 세계 선수가 모이는 미국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털어 놓았다.
그 사이 애틀랜타는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면서 배지환의 입단을 권유했다. 그는 결국 신인 드래프트 당일 오전 KBO에 “미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으니 국내 구단 지명을 받지 않겠다”고 요청했다. 배지환은 “그만큼 오래 고민했다는 의미다. 험한 길을 택했으니, 더 강한 선수가 돼 살아남겠다”며 “빅리그에 올라갈 때까지 버티겠다. 3∼4년 안에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게 목표”라고 단단한 다짐을 표현했다.
# 2000년대 중반부터 거셌던 유망주 해외 유출
배지환 이전에도 국내 무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향한 유망주들이 많았다. 국내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은 두 차례 붐을 이뤘다. 첫 번째가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성공 이후였다. 김선우,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봉중근, 추신수 등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선수들이 아마 야구 무대를 평정한 뒤 연이어 메이저리그로 건너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구단들은 ‘엄선’한 한국 선수에게만 손을 내밀었다. 이들 세대에선 마이너리그에만 머물지 않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성공 확률이 유독 높았던 비결이다.
두 번째는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과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비롯한 국제 대회 신화 이후였다. 실제로 2006년 3명, 2007년 4명에 그쳤던 고교 유망주의 미국 진출이 2008년 6명, 2009년 9명으로 쑥쑥 늘었다. 고교 야구에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탄 선수에게는 어김없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탐내는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구단에 입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그 가운데서도 좋은 대우를 받고 건너가는 선수는 한국에서 약식 입단식까지 치렀을 정도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야구에 점점 더 관심이 많아졌고, 반대로 한국에선 1차 지명이 폐지되면서 고졸 신인들의 계약금 수준이 낮아졌던 시기다.
그러나 그 시기 한국 선수들의 성공 사례는 미국으로 떠나는 유망주 숫자와 오히려 반비례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면서 별다른 희소식 없이 두문불출했다. 갓 고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처우도 열악한 마이너리그에서 고생하다 실패를 맛보기 일쑤였다. 당시 미국으로 떠났다 돌아온 한 선수는 “정말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직접 실감했다”고 털어 놓았을 정도다. 많은 선수가 미국 대륙 곳곳에 흩어진 채 외로운 경쟁을 이어가다 메이저리그 문턱에도 가지 못한 채 방출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동시에 1급 유망주들을 키워 볼 기회를 놓친 한국 구단들은 세대교체에 애를 먹거나 스타플레이어 기근에 시달렸다.
김성민 선수.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 미국 구단의 무분별한 스카우트 전쟁
문제는 그 와중에도 미국 구단들의 무분별한 스카우트 공세는 여전했다는 점이다. 한국 야구 입장에선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2012년 1월에는 결국 상징적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상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왼손 투수 김성민(현 넥센)이 학교를 중퇴하고 메이저리그 구단 볼티모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야구계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유망주 빼돌리기’가 너무 심각하다. 졸업반도 아닌 고교 2학년 선수에게까지 손을 뻗쳤다”며 충격에 빠졌다. 이미 한국에서 많은 기대를 받던 유망주들이 마이너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 하나둘씩 국내로 돌아오고 있던 상황이라 더 그랬다.
KBO와 메이저리그 사무국, 일본야구기구 사이에는 선수 계약 협정서가 존재한다. 다른 리그 선수를 국내 리그로 영입할 때는 규정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국내 선수가 해외로 진출할 때 협상을 앞둔 구단이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협정서 내용은 프로 선수들에게만 해당된다.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트 규정은 KBO 규약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미국 구단이 한국 프로구단의 신인 지명에 앞서 선수와 계약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 지역 선수들에 대해서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약을 미루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 야구계가 더 비난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결국 KBO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공문을 보냈다. ‘각 구단의 한국 아마추어 유망주에 대한 스카우트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항의 서한이었다. 대한야구협회도 ‘지도자 및 선수등록규정 제10조 4항’을 적용해 김성민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 조항에는 ‘협회에 등록된 학생 선수 중 졸업학년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구단과 접촉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해당 선수의 자격을 즉시 유보하고 제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97년 봉중근(LG)이 고교 2학년 때 미국에 진출하고 1999년 김병현과 최희섭이 대학 재학 도중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강화된 규정이다.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던 김성민은 끝내 볼티모어도, KBO 리그도 가지 못한 채 일본 후쿠오카 경제대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다행히 2014년 자격 정지 징계가 해제됐고, 대학 4학년이 된 2016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을 했다. 해외 진출을 하지 않고 아마추어 선수로만 뛰었기 때문에 신인 자격이 인정돼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SK 지명을 받았다. 지금은 넥센으로 트레이드돼 선발진에서 활약하고 있다.
# 점점 늘어나는 ‘해외 유턴파’와 유망주 유출 부작용
너무 많은 유망주를 미국으로 유출시킨 부작용은 2010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국가에서 온 수많은 선수들이 매년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린다. 계약금 1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선수들에게 우선적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미국으로 떠난 선수들 가운데 100만 달러 이상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거의 없다. 특급 대우를 받고 입단했던 이학주(115만 달러)와 김진영(120만 달러)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돌아왔다. 마이너리그는 연봉도 10만 달러 안팎 수준이라 한국에 있을 때보다 처우가 더 좋지 않다. 경제적 손해는 물론 더 귀중한 시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20대 초반을 보낸 이른바 ‘해외 유턴파’ 선수들이 속속 국내 리그 복귀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KBO 규약에는 ‘1999년 이후 해외 진출 선수는 국내 복귀시 2년 동안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아마 선수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막기 위한 예방 장치다. 예를 들어 2018년부터 KBO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면, 해외 프로구단과의 선수 계약이 2016년 1월 31일 이전에 종료돼야 한다는 의미다. 한창 전성기를 보낼 나이의 선수들에게 무적 상태로 보내야 하는 2년의 유예 기간은 적지 않은 손해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이 기간에 국방의 의무를 해결하는 방법을 택한다.
# 류현진 이후 확실히 달라진 흐름
다행히 최근에는 흐름이 변했다. 2010년 이후 고교나 대학 선수들의 해외 직행 사례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LA 다저스 류현진의 성공 이후 학생 선수들의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류현진은 KBO 리그에서 7년을 뛰면서 수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자세와 멘탈을 확고하게 다진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그 결과 빅리그에서도 곧바로 실력을 인정받고 첫 해부터 14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듬해에는 강정호가 피츠버그와 계약해 팀의 주전 내야수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어린 선수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는 마이너리그로 무작정 건너가기보다는 한국에서 ‘프로’ 선수로 먼저 뛰면서 실력을 다지는 게 낫다”는 판단력이 생겼다.
실제로 류현진이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4년간 KBO 리그보다 해외로 먼저 진출한 아마추어 선수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효준뿐이다.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았던 대부분의 유망주가 KBO 리그를 선택했다. 박효준 역시 양키스에서 116만 달러라는 높은 몸값을 받았기에 어려운 결심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배지환의 미국 진출 결정은 더 많은 관심과 우려를 낳았다. 그리 높지 않은 계약금을 감수하면서도 도전 정신을 우선순위에 놓은 한 젊은 선수의 미래에 이목이 집중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유예기간 군필” 해외 유턴파들 여전히 관심 집중 야구인들은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농담을 종종 한다. “야구는 잘하는 선수가 계속 잘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비록 메이저리그 도전에는 실패했다 해도 여러 구단이 ‘해외 유턴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갖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선 해외 유턴파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아마추어 시절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던 유망주들이 미국 구단들의 부름을 받았고,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실전에 나섰던 경험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국내로 돌아오면서 2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야 했지만, 그 시기에 상무야구단이나 경찰야구단에서 경기를 뛴 선수들은 오히려 2군 경험을 플러스 요인으로 평가 받는다.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8순위로 넥센에 지명된 김선기.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지난해는 해외파 ‘빅 3’로 꼽혔던 김진영, 김성민, 신진호가 모두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이름이 불렸고, 텍사스 출신 남윤성도 6라운드에서 SK에 지명 받았다. 2015년 역시 LA 다저스 출신 남태혁이 kt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것을 필두로 정수민, 나경민, 김동엽까지 해외 리그에서 국내로 돌아온 선수 4명 전원이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올 시즌에는 해외 유턴파 선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kt 김재윤과 삼성 장필준은 나란히 기량이 급성장하면서 팀의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해외파 가운데 가장 마지막(9라운드)으로 호명된 김동엽조차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면서 SK 홈런 군단의 주요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올해 드래프트에 나선 또 다른 유턴파 투수 김선기도 ‘빅 3’ 가운데 하나로 분류됐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kt가 서울고 강백호, 덕수고 양창섭과 함께 1라운드 지명 후보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 그랬다. 세광고 출신인 김선기는 2009년 시애틀과 계약한 뒤 2013년 상위 싱글A까지 올라갔지만, 2015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2년간 상무 소속으로 뛰면서 KBO 리그를 간접 경험했다.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으로 여겨졌다.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넥센의 선택을 받았다. 충분히 높은 순위지만, ‘빅 3’라는 기대감에는 못 미치는 순번이었다. 올해 ‘역대급’ 유망주들이 쏟아진 드래프트 시장이 열리면서 많은 구단이 즉시 전력감인 김선기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주역들에 더 많은 점수를 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