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부작용’ 논란으로 많은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일회용 생리대 허가 신고 과정에서 허술하게 관리한 정황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성준 기자
생리대 수입업체 B 사는 2006년 8~9월경 A 생리대의 수입·판매를 위해 식약처에 생리대 성분을 신고했다. <일요신문>은 최근 B 사의 A 생리대 품목 허가·신고·심사 신고서를 입수했다. 이 신고서에는 ‘성상’이라는 항목에서 접착글루 재료의 성상을 가루 상태인 ‘분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A 생리대의 허가 신고서에서는 생리대(전 사이즈, 팬티라이너 모두)에 사용한 재료인 ‘초산 전분’의 성상에 대해 ‘손으로 압축했을 시 전분 특유의 뽀드득 소리가 나는 미세하고 흰 분말로 무미(無味)’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고서는 의약외품 신고 규정에 어긋난 것이다. 신고서에는 ‘원재료’가 아닌 ‘완성된 상태’를 설명해야 한다. 분말 상태의 전분은 접착력을 가질 수 없다. 이 말은 전분에 다른 무언가를 더하거나 열 또는 화학반응 등 다른 처리를 통해 접착력을 가진 글루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생리대의 접착글루는 전분이 아닌 ‘전분+α’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말 상태의 전분은 접착력이 없지만, 여기에 물을 넣고 가열하면 끈끈한 상태의 접착제(풀)가 된다. 따라서 접착글루를 신고하는 경우, 원재료인 전분이 아니라 완성된 성상인 접착글루에 대해 작성해야 하고 전분 외에 들어간 다른 재료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만약 원재료 중 한 가지에 대해서만 신고서에 기입할 경우, 이밖에 다른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검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단독 공개한 생리대 수입업체 B 의 A 생리대 허가·신고·심사 신고서 중 일부. 성상에서는 접착력 재료의 성상을 ‘분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A 생리대 신고서는 16개 항목 가운데 7개 항목밖에 작성되지 않았으며, 이 가운데 ‘확인시험’ 항목에서도 접착글루가 아닌 그 재료 중 하나인 초산전분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접착글루의 경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분의 함량’ 항목이다. 접착제 전체가 100%일 때, 그 재료 중 하나인 전분의 함량이 1%인지 99%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전분을 제외한 99% 또는 1%의 다른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기자가 참고한 ‘의약외품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은 2017년 기준이었다. 당시 허가 및 심사가 됐던 시기는 2006년이었지만, 2006년 규정은 법제처는 물론 식약처 의약품안전정책과나 의약외품안전정책과 중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생리대 유통 관계자에 따르면 2006년 그 당시에도 허가 신고서에는 ‘원재료’가 아닌 ‘완성된 상태’에 대한 성상을 기입했어야만 했다.
이처럼 A 생리대의 오류 투성이인 신고서는 결국 식약처에 제출됐다. 이후 식약처는 이 문제의 신고서를 통과시켰고, A 생리대는 식약처의 허가 아래 시장에 유통됐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사용했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부실하게 작성된 신고서를 왜 묵인하고 넘어갔을까. 이에 대해 식약처 측은 “지난해 이 건에 대해 신고가 들어왔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혐의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다”고 밝혔다. 이는 ‘식약처가 엉터리로 작성된 신고서를 처리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며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이와 관련한 민원 신고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바 있었다. 그리고 식약처의 별도조직인 서울청 산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에 해당 사건이 배정됐다. 이후 이 사건은 담당 검사에게 송치됐고, 서울서부지검이 수사에 나섰지만 수사는 ‘증거 부족’을 사유로 종결됐다. 부실 신고서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를 두고 ‘헛다리 짚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사건 관련자에 따르면 검찰은 접착제의 ‘전분 유무’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B 사에 원료 성분과 관련한 자료를 요구했고, B 사는 이로부터 5~6개월 뒤 즈음 A 생리대의 제조사인 해외 본사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았다.
이 자료는 당시 내부 기밀 문건으로 분류돼 식약처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은 ‘자료에 따르면 접착글루 성분들 가운데 전분이 있었다’는 소견을 검찰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신고서에 있는 ‘전분’이 허위는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내사종결했다.
여기서 허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A 생리대의 허가 신고서가 식약처의 규정에 맞는지에 대해 판단했어야 했는데 엉뚱하게 전분의 유무에 대해서만 확인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식약처로부터 제품의 허가·심사를 받는 것은 해외 본사가 아니라 수입업체인 국내 B 사인데 영국 본사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연합뉴스
결국 식약처는 신고서 처리에서 관리를 소홀히 한 셈인데, 검찰은 한술 더 떠 문제의 본질은 피하고 엉뚱한 ‘전분 유무’에 대해서만 따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유해사범중앙조사단과 서부지검 측에 입장을 물었지만, 양측 모두 상대 측에 문의하라고 할 뿐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B 사 측은 “당시 생리대 A 제품의 해외 본사로부터 관련 서류를 요청해 식약처에 제출했다. 식약처에서 알려주는 대로 그 형식에 맞춰 자료를 제출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식약처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A 생리대는 빙산의 일각일 뿐 타 업체의 다른 생리대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식약처의 소홀한 관리·감독 아래 허가되고 유통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금의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사태가 초래된 것에 대해 식약처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리대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는 비단 A 생리대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생리대들 또한 이런 식으로 관리돼 왔다. 이번 릴리안 사건이 왜 터졌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